
전수경 화가
심판정의 건너편 벽면이 TV방송을 통해 비쳐지면서 눈이 번쩍 뜨였다. 재판이 중계되는 동안 그곳이 어떠한지 좀체 알 수 없었다. 재판관들이 앉아 무엇을 보는지 늘 궁금했다. TV 영상을 보니 그 건너편 벽에 대형 그림 한 점이 버티듯이 걸려 있었는데, 그것은 하동철의 ‘10개의 빛의 계단’이다. 무지개 빛깔의 스펙트럼이 기하학적으로 제시된 추상화다. 하필 왜 이 그림이 그곳에 걸렸을까?
대부분의 법원은 한 손에 칼을, 그리고 다른 손에 저울을 든 유스티치아(Justitia)상(像)을 세운다. 그리스 로마신화에 나오는 정의의 여신이다. 정의(Justice)의 어원도 여기에서 비롯됐다. 인간의 선악을 분별해 복과 재앙을 내리는 법의 집행자로서의 여신이다. 서가에 꽂힌 미술사 책을 찾아보니 법과 정의를 상징하는 그 여신상은 역사에 따라 이미지가 변해 왔다고 한다.
고대 그리스에선 강력한 법 집행을 위해 칼만 든 형상이 주류였다. 로마 시대에는 ‘법 앞에 평등하다’는 형평성이 추가돼 한 손에 칼, 다른 한 손엔 저울을 들기 시작했다. 15세기 이후 유스티치아 여신은 눈을 가리기 시작했다. 근세에 이르러 눈에 보이는 편견에 얽매이지 않는 공정한 심판이 강조된 까닭이다. 이처럼 법원의 이미지는 칼, 저울, 눈가리개라는 세 가지의 구체적 사물로 구성된다. 그 상징물들은 각각 엄격, 공정, 무사(無私)를 의미한다.
화가인 나의 눈에는 어떤 구체적 상징물보다 헌재의 추상화가 훨씬 더 진화한 모습으로 다가왔다. 이 그림은 눈부신 빛이 오로라처럼 반사되는 10개의 계단들이 데칼코마니와 같이 좌우대칭이다. 10은 신의 수이자 완전수를 의미하고 10간(十干)을 상징하기도 한다. 법의 완전성을 지향하는 법정의 모습과 일치된다. 9개의 재판관석 중 헌재 소장의 정가운데 자리 위 단정한 금빛 무궁화 문장이 부처의 이마에 박힌 백호(白毫)처럼 전체 공간을 포맷하고 좌우의 균형을 잡는다. 그림과 무궁화 문장은 정면을 응시하며 좌로도 우로도 치우침이 없을 것을 함께 웅변하는 듯했다.
![하동철의 ‘10개의 빛의 계단’ 탄핵 심판정 맞은편의 이 그림은 어두움을 꾸짖는 하늘의 빛을 정면 응시하면 눈이 멀 수 있다는 메시지 아닐까. [사진 법률신문사]](http://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703/21/6b1affbc-5949-4aaa-a12f-a13f4c6f1b65.jpg)
하동철의 ‘10개의 빛의 계단’ 탄핵 심판정 맞은편의 이 그림은 어두움을 꾸짖는 하늘의 빛을 정면 응시하면 눈이 멀 수 있다는 메시지 아닐까. [사진 법률신문사]
하늘의 빛은 사물의 모습을 온전하게 밝히는 한편 그것을 정면으로 응시할 때 눈이 멀어진다. 그래서 빛에 대항하기보다 그것이 비추는 대로 따라갈 때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있다. 공평무사하게 심판한다 하더라도 심판관이 인간인 한 일말의 한계는 있을 것이다. 땅과 하늘을 이어주는 이 빛의 계단은 아무리 공정하다고 생각되는 세상의 법칙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에만 맡기지 말고 하늘의 뜻을 의식하라고 촉구하는 듯하다.
무궁화 문장을 마주하고 선고를 기다리던 사람들은 각자의 믿음대로 판결이 날 것을 기대했다. 탄핵청구인과 변호인의 설전이 오갔다. 이들 모두 각각 바라는 대로 노력했고 마음을 모으며 재판관의 판결을 기다렸다. 무엇이 됐든 사건과 사실에 대한 믿음이 이들을 사로잡았다. 그들과 그들의 등 너머에 있는 빛의 그림을 바라보면서 재판관은 대통령을 파면한다고 선언했다. 그의 판결이 자신의 신념마저 넘어서는 올바른 것이었는지 여부를 그 순간 그 그림은 지켜보았을 것이다.
전수경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