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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복지도 몰랐던 ‘71세 장발장’

지난 14일 광주광역시 동구의 한 시장에서 김치 한 봉지를 훔쳤다가 적발된 최모(71)씨는 경찰에서 “배가 너무 고파 훔쳤다”고 말했다. 구청이 나서서 조사한 결과 최씨는 앞서 몇 끼를 제대로 먹지 못했다. 시장을 지나다 허기가 져 충동적으로 김치에 손이 갔던 것이다. 그의 통장 잔액은 1만원. 시장에서 허드렛일을 해서 번 돈과 기초연금 20만4010원이 수입의 전부다. 최씨는 광주의 한 모텔 방에서 월세를 내고 1년째 ‘달방’을 살고 있다. 한 달에 모텔비 15만원을 내고 5만원 정도로 버틴다. 그래서 시장통에서 1000~2000원짜리 밥으로 연명하기 일쑤였다.
 
그는 결혼한 적이 없어 가족도 없다. 게다가 청각장애까지 있다. 그는 기초수급자·법정장애인(장애수당)·긴급복지지원 대상이다. 다행히 기초연금은 받고 있지만 나머지 복지 지원에 대해선 전혀 모른다. 그래서 빵이 아니라 김치를 훔친 ‘현대판 장발장’이 됐다. 이 사건이 나고 나서야 정부가 나섰고 월 42만8000원의 긴급생계비를 6개월 지원하기로 했다. 한 사회복지기관에선 20일 저녁 도시락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박모(68)씨는 서울의 한 찜질방에서 4년째 살고 있다. 사업에 실패하고 가족에게서 버림받아 혼자 산다. 막노동을 해 생계를 유지하는 그는 지난해 11월 국민연금공단 지사를 찾았다. 기초연금을 받기 위해서였다. 겨울 시즌에 접어들면서 일거리가 줄어든 데다 주위 동료가 기초연금 제도를 알려줘 신청서를 내고 월 20만4010원을 받고 있다. 연금공단 지사 관계자는 “박씨가 그때까지 기초연금 제도를 몰랐다가 안내를 받고 찾아왔다”며 “기초연금은 소급되지 않아 원래 받을 수 있었던 65~67세에 해당하는 금액은 지급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뒤늦게 기초연금 수령을 시작한 김병국(82)씨도 “기초연금이란 제도를 몰랐는데 친구들과 얘기하다 우연히 알게 됐다”고 말했다.
 
행정 전산망이 세계 수준급이라고 자랑하는 한국에서, 그것도 올 예산(400조7000억원)의 32.4%를 복지에 쓰는데도 배가 고파서 김치를 훔치는 일이 벌어지는 이유는 뭘까. 바로 기초연금·긴급복지지원·기초생활보장제도 등의 주요 복지제도가 ‘본인 신청주의’를 원칙으로 하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본인이 알아서 신청하되 혹시 주변에서 딱한 사정을 알게 되면 도와주는 형태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자료:보건복지부

자료:보건복지부

몰라서 혜택 못 받는 복지 … 긴급지원예산 작년 122억 남아 
지난 15년 동안 각종 선진국의 복지를 이식하면서 모양새를 그럴 듯하게 갖췄지만 실제론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기초연금은 지급 목표인 소득하위 노인 70%를 늘 채우지 못한다. 김승희 자유한국당 의원이 복지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기초연금을 받는 65세 이상 노인의 비율은 2014년(제도 시행) 66.8%에서 지난해에는 65.6%로 오히려 떨어졌다. 지난해 기초연금 대상이면서 이를 받지 못한 노인이 10만5868명에 달한 것이다. 중병에 걸리거나 실직·사업 실패 등으로 생계가 어려워질 경우에는 긴급복지지원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역시 매년 예산을 다 못 써 불용액이 생긴다. 지난해 122억원(국비 기준), 2015년 65억원이 남았다.
 
암·뇌질환·심장병 등 4대 중증질환과 중증화상의 의료비가 소득의 30%를 넘을 경우 2000만원까지 지원되지만 이 역시 환자가 직접 신청해야 한다. 내년에는 모든 질병으로 확대할 예정이지만 역시 활용률이 문제다. 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지금처럼 정보 전산화가 잘돼 있고 나날이 발전하는 상황에서 복지 당사자가 신청하지 않으면 지원하지 않는 것은 행정편의주의적 발상”이라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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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건호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도 “복지 대상에 들지 않을 거라고 미리 짐작해 신청하지 않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기초연금 같은 수당은 모든 노인에게 보편적으로 지급하고 긴급지원 같은 선별적 복지는 지역 공동체의 이웃들이 사각지대를 챙기는 형식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김미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부원장은 “서구 복지 선진국에서도 본인이 신청해야만 복지를 제공받는다”며 “신청주의 원칙을 유지하되 읍·면·동 사회복지 공무원을 늘려 사각지대를 발굴하는 게 맞다”고 말한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김호·정종훈 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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