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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소영의 컬처 스토리] 인공지능 번역과 ‘컨택트’의 외계 언어 해독

문소영 코리아중앙데일리 문화부장

문소영 코리아중앙데일리 문화부장

방대한 한문 사료 『승정원일기』를 한글로 번역하는 작업에 올해부터 인공지능(AI)이 투입된다고 한다. AI는 초벌 번역만 한다지만 그것만으로도 앞으로 45년 걸릴 번역 기간을 18년으로 줄일 수 있으리라 한다. 무척 반가운 뉴스다. 하지만 반신반의하게도 된다. 과연 큰 시간적 격차만큼 사고방식과 문화 배경의 격차가 있는 먼 과거의 글을, 그것도 표의문자인 한자로 써진 것을 AI로 번역하는 게 쉬울까. 지난달 개봉한 SF영화 ‘컨택트’(원제 Arrival)에서 외계인 언어를 해독하는 것에 버금가게 어려울 것 같은데.
 
‘컨택트’에서 외계인은 손으로 먹물 같은 것을 뿜어 허공에 문자를 그리는데, 마치 서예가가 멋들어지게 일필휘지하는 것 같았다. 게다가 그 외계 언어는 과거·현재·미래의 시제가 동사로 구분되지 않는 표의문자라고 하니 한자가 연상되기도 했다. 주인공 언어학자는 열린 마음으로 그 언어를 탐구하고 흡수하다가 점차 시간의 선형적 흐름의 한계를 벗어나 비선형적으로 과거·현재·미래의 사건들을 동시에 인식하게 된다. 언어의 형식이 단지 생각의 표현뿐만 아니라 생각하는 방식 자체를 결정한다는 ‘사피어 워프 가설’에 따른 SF적 상상이다.
 
영화 ‘컨택트’의 한 장면.

영화 ‘컨택트’의 한 장면.

20세기 초에 나온 이 가설은 후대에 반박도 많이 당했지만 완전히 무시되지도 않는다. 언어가 사고방식에 결정적이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다는 견해가 많은 것이다. 이건 나 자신도 실감한 것이다. 같은 글을 영문과 국문으로 모두 쓸 때가 종종 있는데, 같은 내용인데도 언어 구조와 단어가 다르기 때문에 내 생각의 전개도 미묘하게 달라지고, 따라서 문장과 단락의 구성도 달라지게 된다. ‘컨택트’의 언어학자가 외계 언어를 해독하는 과정에 외계인처럼 비선형적으로 사고하게 되면서 다시 그들의 말을 더 제대로 해독하게 되었듯이 번역가는 원저자의 언어적 사고방식대로 생각할 수 있어야 완전한 번역이 가능하다. 그런데 그것이 사실상 어렵기에 번역은 어쩔 수 없이 ‘제2의 창작’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AI는 어떨까. 『승정원일기』 번역에는 인공신경망 번역기술이 적용된다고 한다. 『승정원일기』 중 기존에 인간 연구원들이 번역해 놓은 영조 때 기록 20만∼30여만 문장 원문과 번역문을 입력한 후 이것을 바탕으로 AI가 기계학습을 통해 번역 모델을 생성하게 하는 것이다. 결국 『승정원일기』의 원저자인 옛 사람들보다는 현대 연구원들의 사고방식을 따르게 되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데이터가 점점 쌓여 가는 와중에 혁명적인 학습으로 옛 사람들의 사고에 근접하게 될까. 
 
문소영 코리아중앙데일리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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