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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기의 시시각각] 환상 속에 갇힌 대선주자들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동북아 안보 지형이 꿈틀거리는 현장에서 한국 대선주자들이 각자의 나침반을 꺼내 보이고 있다. 지난 주말 미국의 틸러스 국무장관이 일본으로 들어와 한국을 거쳐 중국을 빠져나가는 사이 4당의 경선 참여자들이 나라의 살 길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안타깝게도 미·중·일이 그려내는 현실 지도와 한국 주자들의 나침반은 따로 놀고 있었다. 5000만 명의 선두에 서서 한국인을 안내하겠다는 사람들의 나침반은 대부분 고장 났다. 고장 난 나침반은 우리를 죽는 길로 안내할 것이다.
 
어제 베이징에서 틸러슨과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악수하며 찍은 사진의 표정은 차갑게 굳어 있다. 평양의 후견국과 서울의 동맹국이 회담을 마치고 내린 정세 판단은 “한반도 긴장이 위험한 수준에 이르렀다”(틸러슨)는 것이다. 한반도의 긴장을 완화하려 만났는데 긴장이 더 높아졌다는 얘기로 들렸다. 그들의 차갑고 굳은 표정은 평양이든 서울이든 여차하면 칠 수 있다는 힘의 충돌을 함축한다.
 
반대일 수도 있다. 두 사람은 남중국해, 대만, 무역투자 같이 북한의 핵·미사일보다 중요한 이른바 핵심이익에 대해 논의했을 것이다. 하지만 발표된 내용은 없다. 한국 내 사드 배치 문제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는 걸까. 체스판 위에서 핵심이익과 부차적 이익을 거래하지 않았을까. 한국이라는 파이를 적절하게 나눠서 관리할 방안을 도출하지 않았을까. 예를 들어 중국은 사드를 던져주는 대신 미국한테 남중국해를 양보받는 식으로. 힘과 이익은 미·중 국가게임의 유일한 판단 기준이다. 과거의 우적(友敵) 관념은 없다. 현재의 조건과 미래의 지향이 있을 뿐이다.

한국의 대선 무대로 돌아와 보자. 정권교체 가능성이 큰 더불어민주당의 주자들은 적폐 청산이라는 과거 문제에 집착한다. 사드 배치에 대해선 이재명이 “위험하고 도움이 안 되니 배치하지 않겠다”고 반대했다. 그는 반미 정서가 팽배한 민주당에서 용감한 지도자라는 소리를 들을지 모른다. 그러나 내겐 한국인을 절벽으로 인도할 위험한 지도자 같다.
 
문재인의 나침반 역시 과거를 맴돌고 있다. 사드 문제에 대해 그는 계속해서 “차기 정권에 넘기라”고 주장한다.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민노총·전교조의 눈치를 보기 때문일 것이다. 이들은 문재인의 최대 정치적 자원이다. 반미 전통이 뿌리 깊다. 친일·독재·외세라는 과거 코드가 문재인의 안보적 상상력을 고갈시킨 듯하다. 사드에 어정쩡한 입장이 계속되면서 미·중의 의문도 커간다고 한다. 미국은 문재인을 기회주의자로, 중국은 그를 다루기 쉬운 인물로 얕잡아 보고 있다는 것이다.
 
자유한국당 예비 경선장은 어떤가. “주홍글씨 낙인이 찍히더라도 박근혜를 끝까지 지키겠다”는 김진태의 연설이 휩쓸었다. 한국의 대선주자들은 영향력 있는 상당수가 비현실적인 환상의 세계, 과거 코드에 사로잡혀 있다. 그들이 갖고 있는 나침반을 믿을 수 없다.
 
엄지손가락 크기에 뭉툭하게 생긴 레밍(Lemming) 이야기를 아실 것이다. 북유럽의 툰드라 지역에 서식하는 설치류. 수년마다 크게 증식하여 이동하는 바람에 별명이 ‘나그네 쥐’다. 우두머리를 따라 움직이는데 절벽이나 바다를 만나 떼죽음을 당해도 질주를 멈추지 않는다고 한다. 리더의 미덕은 열심히 일하는 데 있지 않다. 인간성이 좋다거나 진정성이 있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다. 길을 보여줘야 한다. 집단의 살 길을 찾아내 구성원을 설득하고 안내해야 한다.
 
레밍의 교훈은 현명한 리더를 뽑야야 한다는 것이다. 어리석고 판단력이 흐릿한 리더는 곤란하다. 공동체를 자멸로 인도하거나 붕괴시킬 수 있다. 다행히 한국은 민주주의가 활발하다. 우매한 리더를 언제든지 다시 끌어내릴 수 있는 안전장치가 작동되고 있다. 그렇다 해도 현직 대통령을 파면시키고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새 대통령을 선출하는 일은 매우 위험하고 고통스럽다. 비용도 많이 든다. 자주 할 일은 못된다.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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