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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자의 미모맛집] ⑩ 정성껏 비빈 밥에 육회 한 줌 ‘화룡점정’

'비빈 밥'에 고명과 육회를 얹은 뒤 데워 먹는 익산 진미식당 육회비빔밥.

'비빈 밥'에 고명과 육회를 얹은 뒤데워 먹는 익산 진미식당 육회비빔밥.

비빔밥은 ‘비빌 밥’과 ‘비빈 밥’으로 나눌 수 있다. 요새 우리가 먹는 비빔밥은 정확히 말해 비빌 밥이다. 큰 그릇에 흰 쌀밥을 담고 그 위에 갖가지 나물을 얹는다. 여기에 먹는 사람이 고추장 한 숟가락을 넣고 직접 비벼 먹는다.

한데 비빔밥의 원형은 이렇지 않았다. 비빔밥이라는 이름이 처음 등장한『시의전서』를 보면 비빔밥은 주방에서 한차례 비벼서 나오는 ‘비빈 밥’의 형태였다고 분명히 적혀 있다. 해방 전까지만 해도 밥에 반찬을 넣고 고추장 양념에 비빈 뒤 고명을 얹어주는 방식이 주를 이뤘다고 전해진다. 지금까지도 황해도 해주와 전북 익산에 ‘비빈 밥’이 내려오고 있다.

원조 비빔밥을 먹으러 휴전선을 넘어갈 순 없으니 익산으로 갈 수밖에 없다. 다행히 70년 역사의 진미식당(063-856-4422)이 고집스럽게 버티고 있다. 최근 TV에 소개되면서 ‘전국 몇 대 비빔밥’이니, ‘이색 비빔밥’이니 하고 주목 받고 있지만 원래부터 유서 깊은 집이다. 진미식당의 2대 사장 원금애(82)씨가 익산을 대표하는 전통문화 보존명인으로 이름을 올린 것만 봐도 그렇다.  
 
전북 익산 황등면에 자리한 진미식당. 일흔을 넘긴 노포다.

전북 익산 황등면에 자리한진미식당. 일흔을 넘긴 노포다.

익산시 황등면은 예부터 채석장으로 유명했다. 지금도 6개의 채석장이 남아 있고, 석재가공 공장이 70여 개에 이를 만큼 화강암 석재산업이 발달했다. 우시장도 활발했다. 황등면에 유동인구가 많은 것은 당연했다. 특히 장날이면 우시장에서 나온 쇠고기와 그 부산물로 만든 국밥 또는 비빔밥에 육회를 얹은 비빔밥이 잘 팔렸다고 한다.

황등육회비빔밥은 이렇게 서민의 음식으로 발전했다. 비빔밥으로 유명한 진주·해주·전주·안동 등은 모두 대도시이거나 반가의 고장이었다. 이들 지역의 비빔밥이 고관대작들이 즐긴 별미였다면, 황등비빔밥은 새벽부터 장터에서 치열하게 하루를 시작한 이들의 허기를 달래주는 고마운 한 끼니였다.

황등면이 대표적인 비빔밥의 고장이 될 수 있었던 건 진미식당 덕분이라 할 수 있다. 진미식당은 1대 사장 고 조여아씨가 시장통에 처음 문을 열었고 그의 딸 원금애씨가 물려받았다. 가업은 어느덧 3대째에 이르렀다. 원씨가 아들 이종식씨에게 식당을 물려줬다. 원씨는 손이 모자랄 경우에만 가끔 나선다.
소고기국에 토렴한 밥을 비비는 모습. 주문이 들어가면 주방에서 한 그릇씩 밥을 비빈다. 비빈 밥에 고명과 육회를 얹은 뒤 데워서 내준다.

진미식당은 전통 방식을 고집하고 있다. 손님이 주문을 하면 주방에서 이종식 사장이 고슬고슬하게 지은 밥에 삶은 콩나물을 넣고 사골국물에 여러 차례 토렴을 한다. 그 모습이 꼭 밥을 헹구는 것 같다. 여기에 양념고추장, 고춧가루, 참기름 등을 넣고 비빈다. 대단한 주방 도구가 동원되는 것은 아니다. 그냥 숟가락으로 슥슥 비빈다. 다음엔 밥그릇을 가스레인지에 올리고 당근과 상추·시금치 나물·김 가루·황포묵, 그리고 황등비빔밥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소고기 육회 한 줌 얹어 살짝 달구면 황등육회비빔밥(8000원, 특 1만원)이 완성된다.
8000원짜리 비빔밥이 이렇게 화려하다. 함께 내주는 선지국이 구수하다.

8000원짜리 비빔밥이 이렇게 화려하다. 함께 내주는 선지국이 구수하다.

 
비빔밥에서는 묘하게 정겨운 맛이 난다. 엄마가 어린 자녀에게 소화 잘 되라고 쇠고기국을 적셔주는 그 진솔하고 소박한 맛이 비빔밥 안에 버무러져 있다. 또 고기국물에 토렴한 고소한 밥과 통통한 쇠고기 박살이 입에서 묘하게 어우러진다. 함께 내주는 고소한 선지국도 맛있다. 매운 양념이 전혀 들어가지 않은 선지국이 비빔밥과 놀라운 합을 이뤄낸다. 
육회는 쇠고기 상박살을 쓴다. 식감이 쫄깃쫄깃하다.

육회는 쇠고기 상박살을 쓴다. 식감이 쫄깃쫄깃하다.


황등비빔밥은 손이 많이 가는 것이 흠이다. 손님이 많을 때는 수십 분을 기다려야 한다. 입맛이 둔한 사람은 ‘식당에서 비벼주나 대충 비벼 먹으나 별 다를 게 있나’ 하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이종식 사장은 “우리가 비벼서 내주는 것이 훨씬 맛있기에 이 방식을 고집한다”고 말한다. 
 
 글·사진=최승표 기자 sp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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