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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전 대통령은 반드시 '포토라인'에 서야하는 걸까

헌정 사상 첫 ‘파면’ 대통령이 된 박근혜 전 대통령이 21일 검찰의 조사를 받습니다. 그의 혐의는 최순실씨와 공모해 뇌물을 받은 혐의 등 13가지에 이릅니다.
  
서울중앙지검 청사 현관에는 벌써 방송카메라 거치대와 사진기자용 사다리(일명 게다스)가 줄줄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박 전 대통령이 카메라 플래시 세례를 받으며 걷는 길인 ‘포토라인’이 생긴 겁니다. 
 
그리고 바닥에는 노란 테이프를 붙여 폭 70cm 정도의 삼각형을 만들어 놨습니다. 박 전 대통령은 여기에 멈춰서서 질문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 노란 테이프 위에는 ‘PHOTO 한국카메라기자협회’라고 적혀 있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21일 소환 조사를 받게 될 서울중앙지검 정문 앞 모습. 사진기자와 방송 카메라기자들이 자리 선점을 위해 간이식 사다리를 놓고 포토라인을 표시해놨다. 송승환 기자

박근혜 전 대통령이 21일 소환 조사를 받게 될 서울중앙지검 정문 앞 모습. 사진기자와 방송 카메라기자들이 자리 선점을 위해 간이식 사다리를 놓고 포토라인을 표시해놨다. 송승환 기자

취재 기자의 역할은 박 전 대통령의 검찰 출두 당일 수행됩니다. 신문사와 방송사, 통신사 등 검찰 출입을 하는 언론사들 사이에서 2~3명을 미리 뽑아 공통 핵심 질문을 던집니다. 이들의 손에는 각 방송사들이 전달한 와이어리스(무선) 마이크 십수개가 마치 ‘사각 폭탄’ 처럼 들립니다. 포토라인은 이처럼 ‘약속된 취재’가 벌어지는 현장입니다.
  
그런데 박 전 대통령은 이미 형량이 확정된 범죄자인 것일까요? 범죄 혐의가 드러나 재판 중인 주변 인물들과 ‘공모 관계’에 있다곤 하지만 그의 신분은 아직 피의자입니다. 
 
포토라인은 ‘세상에 물의를 일으켜 곧 처벌받을 자’를 ‘심판’하는 장소처럼 비춰집니다. ‘무죄 추정의 원칙’에 어긋나 피의자에 대한 인권침해 요소가 큽니다. 피의자의 동의 없이 얼굴이 공개되니 초상권 침해 우려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박 전 대통령을 포토라인에 세울 수 있는 것은 국민의 알 권리 차원에섭니다. 법적 근거가 아예 없는 것도 아닙니다. 법무부에서 만든 ‘인권보호를 위한 수사공보준칙’ 18조를 먼저 보겠습니다.


소환 대상자가 공적 인물로서 소환 사실이 알려져 언론에서 확인을 요청하거나 촬영 경쟁으로 인한 물리적 충돌이 예상되는 경우 소환 전후에 걸쳐 소환 일시 및 귀가 시간, 죄명 등의 정보 공개를 허용할 수 있다.
 
그리고 이같은 공적 인물의 얼굴을 촬영해 공개할 수 있도록 한 이 준칙 23조도 보겠습니다.
 
공적 인물인 피의자에 대한 소환 또는 조사 사실이 알려져 촬영 경쟁으로 인한 물리적 충돌이 예상되고 피의자가 동의하는 경우에는 검찰청 부지 내의 청사건물 이외 구역에서 소환 또는 귀가 장면에 한하여 제22조 제1항(수사 과정의 촬영 등 금지)을 적용하지 아니할 수 있다.
 
포토라인이 등장할 수 있는 경우를 다시 정리해 보면 일단 피의자가 ‘공적 인물’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또 이를 취재하려는 언론사들의 촬영 경쟁으로 ‘물리적 충돌’이 예상돼야 합니다. 포토라인이 그려져야 할 위치는 ‘검찰청사 건물 안은 안되니, 청사 부지 내 다른 구역을 찾아봐라’로 해석됩니다.


박 전 대통령을 위한 포토라인이 청사 건물 바로 바깥 현관에 마련된 이유가 여기 있는 겁니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검찰에 출두한 수많은 ‘거물급 인사’들은 이처럼 모두 청사 바깥 어딘가에서 기자들의 질문을 받았습니다.
 
노태우 전 대통령도 1995년 11월 1일 대검찰청에 출석하면서 포토라인에 섰습니다. 주변을 둘러싼 취재진에겐 ”국민들에게 죄송합니다”라고 말한 뒤 조사실로 올라갔습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비자금 사건과 관련해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대검찰청에 출두하고 있다. 중앙일보

노태우 전 대통령이 비자금 사건과 관련해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대검찰청에 출두하고 있다. 중앙일보

반면 전두환 전 대통령은 자신의 연희동 집 앞에서 그 유명한 ‘골목 성명’을 발표하고 고향인 경남 합천으로 내려갔다가 이튿날 새벽 강제 연행돼 안양교도소로 압송됐죠.
1995년 12월 2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 앞에서 대국민 성명을 발표하는 전두환 전 대통령. 중앙일보

1995년 12월 2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 앞에서 대국민 성명을 발표하는 전두환 전 대통령. 중앙일보

1995년 12월 2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 앞에서 대국민 성명을 발표하는 전두환 전 대통령. 중앙일보

1995년 12월 2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 앞에서 대국민 성명을 발표하는 전두환 전 대통령. 중앙일보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9년 4월 30일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 사저에서 청와대 경호차가 제공한 42인승 리무진 버스를 타고 대검찰청에 도착해 포토라인에 섰습니다. “(사저에서 출발할 때) 왜 국민들에게 면목 없다고 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엔 “면목 없는 일이지요”라고 짧게 답한 뒤 조사실로 향했습니다.
2009년 4월 30일 오후 1시30분 노무현 전 대통령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혐의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소환 조사를 받기 위해 김해봉하마을에서 버스로 대검찰청에 도착해 포토라인에 섰다. 중앙일보

2009년 4월 30일 오후 1시30분 노무현 전 대통령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혐의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소환 조사를 받기 위해 김해봉하마을에서 버스로 대검찰청에 도착해 포토라인에 섰다. 중앙일보

우리나라 포토라인은 사실 ‘질서 유지’라는 순수한 목적을 위해 태어났습니다. 과열된 취재 환경 속에서 ‘불의의 사고’를 예방하는 것이 첫번째 미션이었습니다.
 
1993년 검찰에 출두하던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사진기자의 카메라에 부상을 입는 일이 계기가 됐습니다. 당시 한국사진기자협회와 한국방송카메라기자협회가 취재 질서와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약속의 선으로 포토라인을 선포해 제작했습니다. 그 뒤로 ‘PHOTO LINE’이란 글자와 함께 폭 48㎜의 접착 테이프가 생겨났습니다.
 
초기엔 검찰 청사 내에 포토라인이 그려졌다고 합니다. 하지만 피의자 인권 문제로 청사 바깥으로 이동하게 됐습니다. 언론의 취재 편의를 고려하면서도 책임을 피할 수 있는 묘수를 낸 것이었죠. 
 
이번 ‘최순실 게이트’ 특검 때도 이런 점을 고려한 이규철 특검보의 발언(지난해 12월 24일)이 있었습니다. 최순실씨를 소환 조사할 때 포토라인에 세우지 않은 것과 관련해서였습니다.


"저희들이 알고 있기에는 일단 구속된 피의자 또는 피고인에 대해서는 포토라인에 세우는 부분이 인권침해의 여지가 있다고 해서 사실상 정지시키는 부분은 거의 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기존 선례도 그렇고요. 그래서 본인도 포토라인에 정지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에 원래 관련 규정에 따라서 그대로 처리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실제로 미국이나 영국 등 영미권 국가에서는 우리나라처럼 피의자를 법원의 선고 전에 먼저 세워 촬영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프랑스에서는 주요 피의자가 검찰청사 등으로 들어가는 차량 정도를 찍는 게 전부입니다. 일본에 우리의 포토라인과 비슷한 문화가 있다고 하는데, 피의자가 공적인 책임 차원에서 자체적으로 기자회견을 여는 수준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포토라인은 검찰이 부르면 죄인이고 영장 청구하면 유죄라는 인식과 그걸 놓치지 않고 특종 경쟁을 하는 언론이 빚어낸 ‘진풍경’임은 분명합니다. 
 
여기엔 검찰의 책임도 적지 않습니다. 피의자 인권을 이야기하지만 과거엔 수사 편의나 여론의 흐름에 따라 주요 소환자의 공개 여부를 입맛대로 결정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당연히 언론들의 항의가 빗발쳤습니다. 이같은 이해관계 충돌에 ‘국민의 알 권리’가 결합하면서 포토라인이라는 ‘약속’이 생겨난 것입니다.
   
박 전 대통령이 21일 검찰에 출두하면 검찰 조사를 받는 4번째 전직 대통령으로 기록됩니다. 포토라인에 서는 것을 기준으로는 3번째입니다.  
3월 12일 서울 삼성동 자택에 도착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자신의 지지자들과 밝게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3월 12일 서울 삼성동 자택에 도착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자신의 지지자들과 밝게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검찰은 박 전 대통령이 모든 혐의를 부인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국민의 시선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박 전 대통령은 헌법재판소로부터 대통령직 파면 선고를 받고 자택으로 들어간 뒤 청와대 대변인이었던 민경욱 자유한국당 의원을 통해 “시간이 걸리겠지만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고 믿고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가 포토라인에 서서 다시 '불복의 메시지'를 전할지 궁금합니다.
 
윤호진 기자 yoong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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