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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서 보물찾기 하듯 미식 체험…내 맘대로 움직이는 '셀프 푸드투어'

대학시절 배낭여행 이후 8년 만에 간 프랑스 파리였다. 친구들은 겨울에 유럽 가면 볼 게 없다고들 했지만 상관 없었다. 볼 게 없으면 먹으면 되니까. 그런데 무엇을 먹을까. 검색엔 별로 소질이 없는데 아무 거나 먹긴 싫고. 간만에 혼자 여행하려니 막막했다.
 
힌트를 얻기 위해 현지 푸드투어를 검색해봤다. 과연 미식의 도시답게 셀 수 없이 많은 푸드투어들이 있었다. 하루쯤 투어를 신청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문제는 가격. 구성이 좀 괜찮다 싶으면 90유로(약 11만원)를 훌쩍 넘었다.
 
온라인 사이트에서 35유로에 판매되는 테이스팅 패스포트. [사진 르푸드트립 홈페이지 캡처]

온라인 사이트에서 35유로에 판매되는 테이스팅 패스포트. [사진 르푸드트립 홈페이지 캡처]

 
그러다 1인 35유로(약 4만 3000원)라는 파격적인 가격의 푸드투어를 발견했다. 좀 더 알아보니 2016년 서비스를 시작한 신생업체였다. 가격이 저렴한 이유는 ‘프랑스 요리’보다는 디저트나 음료를 체험하는 코스인 데다, 가이드가 없는 셀프 투어이기 때문이다. 이용 시간에 제한이 없다는 점과 ‘테이스팅 패스포트(Tasting Passport)’라는 이름의 안내 책자를 나눠준다는 점이 다른 셀프 투어와 달랐다.
 
파리를 ‘맛 보는 여권’이라니 설레는 이름이다. 하지만 돈을 내고 투어를 신청하는데 셀프는 또 무슨 말이며, 한국어로 쓰인 후기 한 줄 찾을 수 없는 신생 투어를 정말 믿어도 될까. 샹드마르스 공원 인근의 핫플레이스 6곳을 소개하는 테이스팅 패스포트 ‘핀느부쉬(Fine Boucheㆍ미식가)’편을 발급받아 직접 사용해봤다. 총 4종류의 여권 중 핀느부쉬를 선택한 이유는 숙소와 가까워서다.
 
2월 10일 오후 4시, 에펠탑 인근 그레넬 거리의 와인숍 ‘레 쁘띠 도멘느(Les Petits Domaines)’로 향했다. 구매한 테이스팅 패스포트에 실린 6곳 중 하나로, 그 곳에 가면 여권을 받을 수 있을 거라 했다(테이스팅 패스포트는 온라인으로 신청 및 결제를 한 뒤 현지 가게에서 직접 받는 시스템이다). 게임의 첫 번째 퀘스트를 받은 느낌이었다. 가게는 파리 지하철 8호선 ‘에꼴 밀리떼르’ 역에서 도보로 약 7분 거리. 오늘 투어할 6곳의 숍도 모두 근처에 모여 있다. 이 역에서 가장 먼 가게까지도 12분 남짓 걸렸다.
 
찾아가기 전 구글맵 스트리트뷰를 통해 '레 쁘띠 도멘느' 외관을 확인했다. 별다른 특징 없는 검정색 간판이 달린 작은 가게였다. [사진 구글맵 캡처]

찾아가기 전 구글맵 스트리트뷰를 통해 '레 쁘띠 도멘느' 외관을 확인했다. 별다른 특징 없는 검정색 간판이 달린 작은 가게였다. [사진 구글맵 캡처]

'레 쁘띠 도멘느'의 내부. 프랑스 각지의 소농장에서 올라온 와인들로 가득 차 있다. 주인 이자벨은 벽에 붙은 지도를 이용해 와인 생산지의 위치와 기후, 역사 등을 설명해준다. 

'레 쁘띠 도멘느'의 내부. 프랑스 각지의 소농장에서 올라온 와인들로 가득 차 있다. 주인 이자벨은 벽에 붙은 지도를 이용해 와인 생산지의 위치와 기후, 역사 등을 설명해준다.

 
레 쁘띠 도멘느는 멀리서 한눈에 알아볼 만큼 큰 가게는 아니지만 구글 지도를 따라가면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주인 이자벨(50)이 반갑게 맞아줬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여행객임을 알아챈 것 같다. 그녀에게 받은 테이스팅 패스포트는 실제 여권보다는 약간 큰 사이즈의 소책자로, 찾아가야 할 가게의 위치를 표시한 지도와 함께 특징, 오픈 시간, 주인의 약력 등이 프랑스어와 영어로 기재돼 있었다. 마지막 장에는 원형 스티커 형태로 된 쿠폰 6개가 있다. 이 쿠폰을 주면 각 가게의 시그니처 메뉴를 맛 볼 수 있다고 했다.
 
지도상에 찾아갈 맛집의 위치와 동선이 표시된 테이스팅 패스포트. 매겨진 순서와 동선은 권장사항일 뿐 이용자가 원하는 대로 방문하면 된다.

지도상에 찾아갈 맛집의 위치와 동선이 표시된 테이스팅 패스포트. 매겨진 순서와 동선은 권장사항일 뿐 이용자가 원하는 대로 방문하면 된다.

 이자벨은 영어가 아주 유창하진 않았지만 의사소통에는 문제가 없었다. 그녀는 어떤 와인을 마셔보고 싶은지, 오늘 기분은 어떤지 꼼꼼하게 물었다. “금요일이니 레드 와인이 당기는데 많이 달지 않고 비가 올 것 같은 날씨에 어울렸으면 좋겠다”고 대답하자 잠시 고민하더니 한 병을 꺼내 왔다. 이자벨은 “슈베르니 지역에서 20년 넘게 유기농 재배를 하고 있는 작은 농장에서 온 와인”이라고 소개했다. 레 쁘띠 도멘느는 프랑스 소규모 농장에서 유기농으로 생산되는 와인만을 취급하는 곳이었다.
 
이자벨이 추천해 준 슈베르니 소농장의 레드와인. 한 병을 다 비웠다.

이자벨이 추천해 준 슈베르니 소농장의 레드와인. 한 병을 다 비웠다.

 
그녀는 간간이 들어오는 손님들을 상대하면서도 한국에서 온 여행객과 부지런히 대화를 나눠주었다. 이곳을 다녀간 손님 중에는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 ‘라르페주(L‘Arpege)’의 소믈리에도 있었다. 그는 이자벨의 오랜 단골이라고 했다. 현지 와인 매니아들의 사랑을 받는 작은 가게에서 주인과 와인 잔을 기울이며 1:1로 소통하는 경험은 이보다 3~4배 비싼 럭셔리 푸드투어에서도 할 수 없지 않을까. 어느덧 1시간이 훌쩍 지나버렸다. 가이드가 함께 하는 단체 투어였거나 시간 제한이 있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푸드투어를 이어가기 위해 5시 반쯤 와인숍을 나서는데 종일 어둡던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우산을 살까 잠시 고민하다 호텔로 향했다. 가지 못한 푸드투어 코스가 5곳이나 남아 있었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파리에 머무는 기간 중 언제든 찾아가도 되기 때문이다.
 
테이스팅 패스포트 프로그램에 시간 제한이 없다는 건 하루에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니다. 쿠폰은 책자를 발급받은 날짜로부터 6개월까지 유효하다. 체험해 본 바로는 테이스팅 패스포트의 가장 큰 장점은 이것이었다. 체류 기간 동안 다른 관광 동선에 맞춰 맛집을 방문할 시점을 안배할 수 있다는 점. 35유로를 내고 파리 시내 곳곳에 누군가 나를 위해 숨겨둔 보물을 찾는 기분이었다. 모바일 게임 ‘포켓몬고’를 해본 적은 없지만 이런 맛에 하나 싶었다.
 
이 장점을 최대한 활용해 3일에 걸쳐 조금씩 쿠폰을 소진했다. 11일엔 팔레루아얄 근처로 친구를 만나러 가기 전 카페 ‘블루 올리브(Blue Olive)’에 들러 커피를 한 잔 마셨다. 12일엔 관광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메르베이유 드 프레드(Merveilleux de Fred)’를 찾았다. 메르베이유는 초콜릿이나 크림으로 감싼 머랭 쿠키에 다양한 맛의 무스를 올린 작은 케이크다. 한국에서는 파는 곳이 거의 없지만 프랑스에선 매우 유명한 디저트다.
 
프랑스의 몇 안되는 독립적인 푸아그라 생산 브랜드인 '라 메종 뒤베르네'의 매장. 파테, 테린, 샤퀴테리 등 다양한 가공품도 판매한다.

프랑스의 몇 안되는 독립적인 푸아그라 생산 브랜드인'라 메종 뒤베르네'의 매장.파테, 테린, 샤퀴테리 등 다양한 가공품도 판매한다.

액상프로방스 지역의 대표적인 간식이자 특산품으로 유명한 칼리송을 파리에서 맛 볼 수 있는 '르 쁘띠 뒥'. 액상프로방스에서는 아몬드 모양으로 생산되지만 오리지널 칼리송은 정사각형 모양이라고 한다. 그 외에도 누가, 비스킷 등 다양한 선물용 과자들이 있다.

액상프로방스 지역의 대표적인 간식이자 특산품으로 유명한 칼리송을 파리에서 맛 볼 수 있는 '르 쁘띠 뒥'. 액상프로방스에서는 아몬드 모양으로 생산되지만 오리지널 칼리송은 정사각형 모양이라고 한다. 그 외에도 누가, 비스킷 등 다양한 선물용 과자들이 있다.

 
13일은 파리에 온 이후 처음으로 해가 쨍 뜬 날이었다. 숙소에서 유람선 바또무슈 승강장까지 걸어가보기로 했다. 도보로 30분 정도 걸리는 거리라 중간에 들릴 장소가 없었다면 지하철을 탔겠지만, 푸아그라를 파는 ‘라 메종 뒤베르네(La Maison Dubernet)’와 프랑스 남부지역의 선물용 과자 '칼리송(Calisson)을 파는 ‘르 쁘띠 뒥(Le Petit Duc)’이 동선 안에 있었기 때문이다. 시식해 본 푸아그라가 맛있어서 통조림을 하나 사고, 르 쁘띠 뒥에서 파는 과자들을 종류별로 다 먹어본 뒤 한국에 가져갈 선물을 샀다. 직원들은 하나같이 친절했고 테이스팅 패스포트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아직 이용자가 많지 않아 한 달에 5~6명 정도 찾아온다고 했다.
 
테이스팅 패스포트를 든 손님이 등장하면 각 가게의 직원들은 보다 적극적으로 설명하고 체험을 돕는다. '칼리송'을 처음 먹어본다고 말하자 로즈, 피스타치오, 오렌지 등 다양한 맛의 칼리송을 하나씩 꺼내주는 '르 쁘띠 뒥'의 직원. 

테이스팅 패스포트를 든 손님이 등장하면 각 가게의 직원들은 보다 적극적으로 설명하고 체험을 돕는다. '칼리송'을 처음 먹어본다고 말하자 로즈, 피스타치오, 오렌지 등 다양한 맛의 칼리송을 하나씩 꺼내주는 '르 쁘띠 뒥'의 직원.

 
애로사항도 있었다. 12일 방문했던 디저트 가게 ‘에피쓰리 핀느 리브 고슈(Epicerie Fine Rive Gauche)’는 테이스팅 패스포트에 적힌 영업시간을 확인하고 갔음에도 문이 닫혀 있었다. 문 앞에 ‘개인적인 사정으로 14일까지 휴업한다’는 공지가 하나 붙어있을 뿐. 이 부분에 대해 업체 ‘르 푸드트립’에 문의하자 “각 매장의 개인적인 사정을 미리 보고받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면서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4월부터는 맛집 리스트 25개를 통합한 여권을 만들어 이용자가 그 중 6~12개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2016년 한 해 동안 테이스팅 패스포트의 고객은 약 300명. 아직 아시아 지역에 널리 알려지지 않아 다른 도시에서 온 프랑스인이나 유럽 여행자들이 주로 이용했다. [사진 르푸드트립]

2016년 한 해 동안 테이스팅 패스포트의 고객은 약 300명. 아직 아시아 지역에 널리 알려지지 않아 다른 도시에서 온 프랑스인이나 유럽 여행자들이 주로 이용했다. [사진 르푸드트립]

 
‘한 끼 식사로 삼을 만한 것도 없는데 무슨 푸드투어냐’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테이스팅 패스포트는 해외 여행자가 스스로 알아내기 어려운 메뉴와 장소를 제안해준다는 데에 의미가 있다. 르푸드트립의 공동창업자 중 한 명인 마틴 에르벨린(25)은 “우리는 한국을 포함해 아시아 전역을 6개월 동안 여행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의 여행 취향을 연구했다”면서 “젊은 여행자들은 이미 알려진 관광명소를 찾기 보다는 잠시라도 현지인들과 같은 생활을 해보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테이스팅 패스포트가 현지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맛집이나, 해외에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프랑스의 미식을 소개하는 데에 주력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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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갓 2년 차에 접어든 르푸드트립은 지속적으로 서비스를 보완ㆍ발전시키고 있다. 파리를 시작으로 리옹에서도 테이스팅 패스포트를 판매하기 시작했고, 스페인 진출도 준비하고 있다. 맛집 리스트는 매년 봄을 기준으로 업데이트된다.
푸드투어 관련 자세한 내용은 홈페이지(le-food-trip.com), 파리 관광 정보는 프랑스 관광청(kr.france.fr), 파리관광안내사무소(ko.parisinfo.com)에서 확인할 수 있다.
 
글·백수진 기자 peck.soo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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