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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맘 다이어리] 할머니는 안돼

이경희키즈&틴즈팀장

이경희키즈&틴즈팀장

막내가 유치원을 옮겼다. 옆 동네 병설유치원에 덜컥 붙어서다. 직접 찾아가 접수하고 추첨해야 했던 큰아이 땐 옆 동네엔 지원할 생각도 못했는데, 올해부터 온라인 접수·추첨으로 바뀐 덕을 톡톡히 봤다.
 
병설유치원은 다소 엄격했다. 아이는 입학 다음 날부터 교문에서 보호자와 헤어져 스스로 교실까지 걸어가야 했다. 학교가 넓어서 교문부터 교실까지 한 150m는 될 것 같은데, 약 1m짜리 어린이에겐 얼마나 광활하겠는가. 교문 앞에 딱 멈춰 선 아이를 두고 난감해 하던 차에 마침 출근 중이던 다른 반 선생님이 손을 잡고 함께 가줬다.
 
유아가 새로운 환경, 새 선생님, 낯선 친구들과 적응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하루 한 시간씩만 적응 수업을 하고 교문 앞에서 기다리는 엄마 품으로 곧장 달려가는 반일반 친구들과 달리, 아이는 오후 5시에야 외할머니의 손을 잡고 집으로 간다. 맞벌이 자녀를 위한 에듀케어반에 다니기 때문이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반일반 친구들이 돌아가면 종일반 교실로 옮겨 동화도 듣고, 급식도 먹고, 이도 닦고, 낮잠도 잔다. 병설유치원이라 초등학생 언니·오빠들과 똑같은 식단에 적응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워킹맘이 해줄 수 있는 건 많지 않다. 나는 아이가 잠들기 전에는 가급적 얼굴을 보여주는 걸 새 유치원 적응 기간의 최대 목표로 삼았다.
 
그날 밤에도 퇴근하자마자 옷도 못 갈아입고 아이를 재웠다. 녀석은 “유치원 안 가고 싶어”라고 한 100번쯤 읊조리며 울다 잠들었다. 안고 토닥이며 진정을 시키고 보니 한 시간이 훌쩍 흘러간 뒤였다. 저녁을 굶은 것도 그제야 생각났다. 이정미(55) 전 헌법재판관이 헤어롤 두 개를 머리에 단 채 출근한 것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말이다.
 
다음 날 아침, 아이는 눈 뜨자마자 “유치원 안 가고 싶어”라고 말했다. 왜 아이들은 자는 동안 잊어버리지도 않나. 할 말을 찾고 있는데, 친정 엄마가 반색하며 말했다.
 
“잘됐다! 그럼 할머니가 유치원 갈게. 네가 할머니 대신 청소하고 빨래하고 집에서 살림하면 되겠다! 할머니는 유치원 진짜로 가고 싶은데!”
 
그러자 아이는 “할머니는 이불이 작아서 안 돼!”라며 단박에 거절했다.
 
유치원 적응 2주 차. 이제 아이는 정문에서부터 가방을 메고 혼자 씩씩하게 걸어간다. 나는 담장 너머에서 나란히 150m를 걸어간다. 마침내 진짜로 헤어져 아이는 교실로 들어가고, 나는 지하철로 달려간다. 아직 친구를 사귀지 못한 아이는 “유치원에서 혼자 놀았다”고 말하고, “매운 고기를 먹었다”며 자랑한다. 나는 이 원고를 마감하느라 잠들기 전에 달려가리라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다. 그래도 안심이다. 아이는 그날 이후 두 번 다시 “유치원 안 가고 싶어”라는 말은 꺼내지 않았고, 머잖아 친구가 생길 테니까.
 
이경희 키즈&틴즈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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