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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구 칼럼] 폭풍우 뒤의 격랑, 국민 분열의 위기

이홍구전 국무총리·중앙일보 고문

이홍구전 국무총리·중앙일보 고문

국가적 재앙이라 할 수 있는 대통령 탄핵 사태가 일단 마무리되었다. 많은 국민이 안도의 숨을 내쉬었으리라. 우리 스스로의 위기 관리 능력, 즉 민주적 헌법 절차에 따른 국정 혼선의 마무리를 짓는 어려운 시험을 넘긴 것은 생각할수록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대한민국 헌법은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낸 국가 운영의 기본 규칙이다. 우리의 기억 속에는 권위주의 시대를 넘어 평화적 민주화에 성공한 1987년, 우리가 뽑은 국회에서 개정한 헌법을 국민투표로 확정 짓던 장면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이 헌법을 지키고 따르겠다는 것은 국민이 함께한 약속이며 동시에 각자 자신과의 약속이기에 이를 지킨다는 것은 당연한 국민의 도리다. 그러나 30년이 지난 지금, 국민들의 의견과 정서가 심각하게 갈라지고 흥분이 고조된 상황에서, ‘약속은 지켜야 한다’는 공공윤리를 따르려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평화적으로 인내하며 기다렸던 우리 국민의 성숙한 자세는 칭찬받아 마땅하다.
 
다만 폭풍우가 지나고 나면 세찬 파도가 밀려올 수 있다는 자연의 이치를 기억해야 한다. 근자의 국제 정세, 특히 한반도를 위협하는 전쟁의 먹구름이 심상치 않음은 모두가 우려하는 현실이다. 이럴수록 민주적 절차에 맞춰 힘과 지혜를 모아 당면한 위기에 대처해야 한다는 합리적 판단이 주류를 이루고는 있지만 탄핵 정국이 점화한 흥분과 울분을 쉽게 가라앉히기 힘든 것이 개방사회의 특징이며 인간의 한계다. 우리의 역사를 뒤돌아보면 국난에 처할 때마다 가장 심각했던 위험은 국민 분열이란 망국병이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그러기에 지금과 같은 어려운 고비일수록 무분별한 소영웅주의가 만연되지 않도록 민주공동체 유지의 필수요건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민주국가는 다원적 사회로 획일적이지 않은 여러 세력과 집단이 평화적으로 공존하는 체제를 이른다. 국가적 의사결정의 원칙은 ‘다수에 의한 통치, 소수의 권리 보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이번처럼 많은 국민이 광장에 모이게 되면 소수는 보이지 않고 다수는 더 크게 확대되는 다중의 역학이 작용하기 쉽다. “우리가 사랑하는 민주주의, 그 요체는 자신의 생각과 같지 않은 다른 사람의 의견을 존중하는 데 있다고 믿는다”는 이정미 재판관 퇴임사의 한 구절이 바로 여러 집단과 의견의 집합체인 민주공동체의 운영 원리를 적절히 지적하고 있다.
 
지난 30년 한국 민주주의 제도화 연구에 앞장서 온 최장집 교수의 근저 『양손잡이 민주주의』는 광장민주주의가 빠져들 수 있는 위험에 경고를 보내고 있다. 촛불집회 참석자, 곧 탄핵 지지자들이 이번 결과를 갖고 보수 소멸의 대승리로 오해하거나 확대해석한다면 민주주의의 도약이 아닌 기형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는 지금의 시점에 참으로 시의적절하다는 생각이다.
 
그것은 탄핵 정국이 만들어낸 광장의 열기가 곧장 대선 정국으로 이어져 국민 화합보다는 분열의 심화를 초래할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정치·경제·사회·문화·기술 등 모든 영역에서 대전환의 시대를 맞고 있다. 어떤 민주사회이든 보수와 진보는 있게 마련이나 보수와 진보 모두 시대의 변화에 맞춰 새로운 개혁이 있어야만이 건전한 민주사회가 지탱될 수 있을 것이다.
 
선거는 통합보다도 대결과 분열을 조장하기 쉬운 생리를 갖고 있다. 분열의 심각도는 선거의 주요 쟁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불과 50여 일 후에 치러질 19대 대통령 선거에선 최대 쟁점으로 국가 안보가 자리 잡고 있다. 무엇보다도 사드 배치에 대한 찬반론은 국민을 극명하게 둘로 갈라놓을 수도 있을 것이다. 촛불집회와 태극기집회가 대통령 탄핵 여부를 놓고 갈렸다고 하지만 사드 배치를 둘러싼 국가 안보 정책, 특히 한·미 동맹에 대한 입장 차이도 보다 근원적인 대결 요인이었다는 측면을 부인할 수 없다.
 
4월 중에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미·중 정상회담이 예정돼 있지만 과연 사드 배치 문제 등 한반도 및 동아시아에서의 전략적 균형의 문제, 북한 핵에 대한 공동 대처 문제 등이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따라서 사드 배치 등 안보 문제가 대선에서 국민 분열을 초래하는 최대 쟁점이 될 가능성에 대한 정치권의 현명한 준비가 시급히 요구되는 것이다.
 
탄핵 과정의 흥분이 가시기도 전에 예외적으로 행해지는 이번 대통령 선거는 준비 기간이 매우 짧은 만큼 후보와 정당들에는 강력하고 자극적인 발언의 유혹이 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번 선거의 최대 쟁점인 국가 안보는 나라의 운명과 국민의 생명을 담보하는 것으로 대중적 인화성이 매우 높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지금은 나라와 민주주의의 안정을 위해 책임지는 자세가 필수다.
 
이홍구 전 국무총리·본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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