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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화에 아버지 이름 … 나도 모르게 썼어요

고양 오리온의 포워드 이승현. 폐암 진단을 받고 투병 중인 아버지 이용길씨의 영문 이름(아래 작은 사진)을 농구화에 적은 채 코트를 누빈다. 올시즌을 마친 뒤 군에 가는 그는 입대 전에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겠다는 각오다. 오른팔을 들어 하트를 그리고 있는 이승현. [고양=김춘식 기자]

고양 오리온의 포워드 이승현. 폐암 진단을 받고 투병 중인 아버지 이용길씨의 영문 이름(아래 작은 사진)을 농구화에 적은 채 코트를 누빈다. 올시즌을 마친 뒤 군에 가는 그는 입대 전에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겠다는 각오다. 오른팔을 들어 하트를 그리고 있는 이승현. [고양=김춘식 기자]

프로농구에서 선두싸움이 치열하다. 선두 안양 KGC인삼공사 를 지난 시즌 챔피언결정전 우승팀 고양 오리온 이 바짝 뒤쫓고 있다. 만년 하위권에 머물다가 어느새 ‘봄 농구’의 단골손님이 된 오리온은 ‘에이스’ 이승현(25·오리온)의 활약을 앞세워 뒤집기 우승을 노린다.
 
한국 프로농구의 간판 포워드가 된 이승현도 어느새 프로 3년차다. 데뷔 시즌에 신인상을 받았고, 2년차엔 챔피언결정전 최우수선수상(MVP)을 받았다. 그런데 이승현에겐 3년차인 올 시즌이 그야말로 다사다난하다. 시즌 시작 전부터 그의 심기를 복잡하게 만드는 일이 벌어졌다. 개막 직전 아버지의 암 투병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마음고생이 심했다. 시즌 중간엔 부상으로 3주간 코트에 서지 못했다. 지난해 12월엔 승리를 자축하다가 얼굴에 폭죽을 맞는 사고를 당했다. 지난달엔 외국인 선수에게 인종차별 발언을 했다는 오해를 사면서 비난의 포화에 휩싸였다. 그리고 이번 시즌이 끝나면 군에 입대한다. 15일 고양체육관에서 만난 이승현은 “3년차에 너무 많은 일들을 겪었다. 10년, 20년이 지나도 잊지 못할 시즌이 될 것 같다”고 푸념했다.
 
유도를 하다가 농구인 출신인 부모님 영향으로 초등학교 5학년 때 농구를 시작한 이승현은 학창 시절 큰 부상 없이 선수생활을 했다. 그는 “통뼈라서 다칠 일이 거의 없었다”고 자랑했다. 하지만 그런 자랑은 아마추어에서나 통했다. 지난 1월 12일 전자랜드전 도중 왼쪽 발목을 다쳤다. 3주 넘는 치료와 재활을 거쳐 코트로 돌아왔다. 복귀 후 4경기에서 평균 4.7득점에 그쳤다. 그는 “운동하면서 가장 오래 기간 쉬었다. (포스트시즌 진출이 걸린) 순위 경쟁으로 중요한 시기라 미안했고, 그래서 마음이 급했다”고 고백했다.
 
이승현은 ‘초심’에서 부진 극복의 실마리를 찾았다. 그는 중·고교 시절 하루 1000개가 넘는 슛을 던질 만큼 악바리였다. 겨우 추스린 몸을 이끌고 남보다 먼저 훈련장에 나왔다. 또 동료들보다 슛 한 개라도 더 던지려고 했다. 그리고 지난달 15일 삼성전에서 개인 최다인 33점을 넣고 자신감을 회복했다. 그는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뒤쳐지지 않으려고 했을 뿐이다. 잘하기 위해선 남들보다 더 많이 뛰어야 한다”고 말했다.
 
겸손하지만 악착스러운 모습. 어쩌면 모순적인 두 모습을 이승현이 한 몸에 갖게 된데는 실업농구 선수 출신인 아버지 이용길(59)씨와 어머니 최혜정(52) 씨의 영향이 컸다. 어머니 최씨는 이승현이 농구를 시작했을 때부터 아들의 새벽운동 파트너를 자처했다. 아버지 이씨는 아들 경기라면 빼놓지 않고 경기장을 찾았다. 그런 부모님이 잇따라 암 진단을 받았다. 최씨는 다행히 완치됐다. 하지만 이씨는 회복이 어려운 폐암 말기였다. 그래도 이씨는 통원치료 중에도 아들 경기를 빼놓지 않고 찾는다. 
이승현 선수 농구화

이승현 선수 농구화

이승현은 최근 자신의 농구화에 아버지의 영문이름인 ‘yong gil(용길)’이라고 적었다. 그는 “지난 11일 전자랜드전 때 테이핑을 하고 난 뒤 아버지 이름을 적었다. 뭔가 의식한 건 아닌데 그렇게 됐다”고 설명했다. 쾌유에 대한 실낱 같은 기대였을지 모른다. 아버지에 대한 그의 태도도 바뀌었다. 그는 “원래 톡(메신저)을 하다가 대화가 끝나면 나가거나 지우는데, 아버지와 대화는 모두 남기고 있다. 그리고 힘들 때마다 읽으면서 힘을 얻는다. 매일 한 번씩 전화드리는 습관도 생겼다”고 말했다. 
이승현

이승현

이승현은 원래 다음 시즌 후 입대할 계획이었지만 “지금 갈 수 있으면 가라. 내 걱정 말고 잘 갔다오라”는 아버지 말에 올 시즌 후로 계획을 바꿨다. 군 입대 전 마지막 시즌. 우승에 대한 이승현의 간절함도 그만큼 크다. 다사다난했던 세 번째 시즌을 활짝 웃으며 마무리하고 싶은 마음도 크다. 이승현은 “어머니는 ‘경기에서 네가 잘할 때 가장 기쁘다’고 자주 말씀하신다. 꼭 그렇게 하겠다. 그리고 아버지가 쾌차하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승현은 아버지의 쾌유를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우승이라고 믿고 있다.
 
고양=김지한 기자 kim.jihan@joongang.co.kr
사진=김춘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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