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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김일성 탄핵 시도한 ‘8월 종파사건’ 실패

북한에선 최고지도자에 대한 ‘탄핵’을 꿈도 꿀 수 없다. 평양에서 발간된 『조선말대사전』(2007년판)은 탄핵을 “죄상을 들어서 시비를 가리며 책망하거나 규탄하는 것”이라고 규정한다. 하지만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나 이른바 ‘선대 수령’인 김일성·김정일과 연관시키는 건 최고의 불경에 해당한다.
 
물론 수령에 대한 도전이 없던 것은 아니다. 서휘(직업총동맹위원장)를 비롯한 김일성 반대세력은 1956년 8월 노동당 위원장 김일성의 해임을 시도했다. 당시 당중앙위 전원회의에서 시도된 탄핵 기도를 북한은 ‘8월 종파사건’이라고 부른다. 중국과 소련의 지원을 각각 받은 연안파와 소련파, 그리고 국내 공산당 세력이 규합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북한에서는 이후 종파사건의 여독을 청산한다며 김일성 축출을 주도했던 세력을 권력에서 철저히 제거했다. 북한에서 시도된 처음이자 마지막 탄핵 사건으로 불린다.
 
북한에서 수령은 체제를 움직이는 절대적 권력이다. 『정치사전』(1970년)에서는 “수령의 사상을 지도적 지침으로 하여 혁명과 건설을 수행하며…하나와 같이 움직이는 체제”라고 규정하고 있다. 김일성 생일 하루 전날인 74년 4월 14일 공표된 ‘당의 유일사상체계 확립의 10대 원칙’은 “수령의 권위를 절대화하여야 한다”면서 “수령의 교시 집행에서 무조건성의 원칙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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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국방위원장은 80년대 중반 이후 ‘주체사상’과 ‘혁명적 수령관’을 설명하며 수령은 무오류하고 완전하며 유일한 존재라고 강조했다. 주민들에게 이를 받아들일 것을 요구하고 생활 속에서 실천할 것을 강요한다.
 
하지만 이런 원칙에서 이탈하는 사태가 발생해 북한 당국이 속을 태우기도 한다는 게 고위 탈북 인사들의 지적이다. 김일성·김정일이 직접 만난 인물을 일컫는 이른바 ‘친견인사’도 그중 하나다. 수령이 결정해 방북 초청을 하거나 회담한 인물은 북한 인사나 관영매체들이 비난하지 못하는 게 관행이었다. 하지만 2002년 5월 방북해 김정일과 회담한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해 북한은 입에 담기 힘든 폭언을 퍼부어왔다. 수령이 사람을 잘못봤다는 고백인 셈이라 북한 당국도 곤혹스러운 일이란 얘기다.
 
박용한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 park.yong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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