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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 곳곳 엉뚱한 번역 … 스미스, 주어생략 이해 못해 ”

‘“이제 너희 걱정은 다 잊어버렸다. 완전히 자리를 잡았구나.” 장인이 수저를 들며 한마디 했다.’
 
지난해 5월 소설가 한강(47)에게 영국 맨부커인터내셔널상을 안긴 장편 『채식주의자』의 한 대목이다. 이 작품의 영어번역으로 상을 공동수상한 영국인 데버러 스미스(29)는 ‘문제의 대목’을 다음과 같이 영어로 옮겼다.
 
‘‘Now you’ve forgotten all your worries,’ my father in-law pronounced, taking up his spoon and chopsticks. ‘Completely seized the moment!’’
 
데버러 스미스

데버러 스미스

한국어 원문 첫 문장 ‘이제 너희 걱정은 다 잊어버렸다’의 생략된 주어가 영어판에서는 ‘you’로 되살아났다. 과격하게 채식주의자로 돌변한 딸 영혜와 그로 인해 골치 썩는 사위를 장인(영혜의 아버지)이 도닥거리는 장면인데, 웬만한 한국어 독해력 소지자라면 쉽게 알 수 있는 ‘생략 주어(=장인)’를 스미스는 엉뚱하게도 너희, 즉 영혜와 사위로 둔갑시켰다. 왜 이런 ‘사고’가 발생한 걸까.
 
스미스의 한국어 장악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라는 게 고려대 불문과 조재룡 교수의 진단이다. 스미스의 한국어가 서툴러서 생긴 오역(誤譯)이라는 얘기다. ‘채식주의자 영어 번역’ 논란 2라운드다. 『채식주의자』 영어 번역 논란은 지난 1월 문학평론가 정과리씨가 처음 제기했다.
<중앙일보 2017년 1월 10일자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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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소설 『채식주의자』 영어 번역 논란이 또 불거졌다. 문제를 제기한 평론가 조재룡씨. [사진 김경록 기자]

한강 소설 『채식주의자』 영어 번역 논란이 또 불거졌다. 문제를 제기한 평론가 조재룡씨. [사진 김경록 기자]

번역가로도 활동하는 조 교수는 중편 ‘채식주의자’ 전체를 영어판은 물론 재불 번역가 정은진씨의 불어 번역판과도 비교했다.
 
스미스 영어번역의 문제점을 A4지 15쪽 분량에 조목조목 짚은 ‘번역은 무엇으로 승리하는가?’를 이번 주 시판되는 계간 문학동네 봄호에 발표한다.
 
지난 3일 고려대 연구실. 조 교수는 “지난해 수상 당시 의미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일단 번역의 승리라고 말해주곤 했다”고 밝혔다. 엄밀하게 말하면 번역판이 수상을 한 것이라는 의미였다. “정작 어떤 번역인지 직접 확인해봐야겠다는 생각에 영어·불어판본을 대조해보니 첫 세 페이지쯤에서 스미스가 전체적으로 한국어 해석에 어려움을 겪었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그 키워드로 들여다 보니 주어가 생략된 문장의 번역이 상당 부분 잘못됐더라는 것. “한국어를 번역하는 외국인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문장의 생략된 주어 찾기에서 스미스는 번번이 실수했다”고 지적했다.
 
조 교수는 “주어를 잘못 짚는 단순 오역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있다”고 했다. “이러한 실수로 인해 텍스트의 특수성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점이 좀 더 심각한 문제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가령 주인공 영혜는 한국적 가부장제에 짓눌린 수동적이고 몽환적인 캐릭터다. 한데 스미스의 번역에서는 능동적이고 이성적인 여성으로 그려졌다는 지적이다. 주어를 혼동하거나 구문을 잘못 해석한 탓이다.
 
조 교수는 “요즘은 작품의 문체나 특수성을 살리기 위해 원문을 어느 정도 독창적으로 옮기는 ‘언술번역’이 일반적”이라고 소개했다. “그렇더라도 스미스는 너무 나간 것 같다”고 지적했다. “한국어 문법, 통사, 구문, 어휘 등에 대한 장악력에 신경쓰기보다 원문에서 느껴지는 이미지에 맞도록 낱말을 배치하는데 집중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없는 문장을 덧붙이는 등 창조적 변용을 가했다는 지적이다. 그러다보니 문장이 유려한 ‘스미스의 채식주의자’는 탄생했는지 몰라도 한국어 원본과는 너무도 다른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조 교수는 “이번 글이 비판이 목적은 아니다”라고 했다. “오히려 한국문학 발전을 위해 제2, 제3의 스미스가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려면 “스미스가 큰 일을 했다고 해서 한국문단이 이런저런 역할을 몰아주려 할 게 아니라 또 다른 스미스가 나올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했다. 가령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문법책 확충이 그런 일이다.
 
“외국 문학의 한국어 번역은 토씨 하나까지 엄격하게 비판하면서 스미스 번역은 무조건 떠받는 건 다소 위선적이며 이중잣대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글=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사진=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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