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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인정받고 싶은 욕심에 변론 … 법은 약자 위해 존재해야”

법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15일 개봉한 영화 ‘재심’(김태윤 감독)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이 영화는 2000년 전북 익산 약촌오거리에서 발생했던 택시 기사 살인 사건을 다룬다. 살인 사건을 목격한 10대 현우(강하늘)는 살인자 누명을 쓰고 10년간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다. 이 사건의 실체를 알게 된 변호사 이준영(정우)은 현우에게 재심(再審)을 제안한다. 이준영이란 이름은 실제 사건을 맡았던 박준영(43·사진) 재심 전문 변호사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개봉 직전 만난 박 변호사는 살짝 상기된 얼굴이었다. “영화가 꼭 흥행해서 많은 사람들이 이 사건에 관심 가져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가 사건을 맡은 건 2010년이었다. 10대 최모 군이 수사 과정에서 불법 체포와 감금, 폭행을 당한 끝에 허위자백을 했고 10년형을 살았다는 합리적 의심, 심지어 진범임이 유력한 용의자까지 나타났는데도 무마됐다는 사실이 그에겐 충격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처음부터 공익적인 마음으로 사건에 임한 건 아니라고 했다. “영화 속 이준영이 대형 로펌 대표의 환심을 사기 위해 이 재판을 맡았다면, 저는 재판부의 환심을 사기 위해 사건을 맡았다”고 했다. 전남 완도 출신인 그는 대학을 1년 만에 중퇴하고 사법시험에 합격해 변호사가 됐다. 인맥·경력·학벌이 없어 사건 수임이 쉽지 않았다.

“능력을 인정받아야겠구나, 의미 있는 사건에서 의미 있는 결과를 내고, 그걸 알려야 내가 살겠구나 싶었어요.”

국선 변호를 주로 맡았던 그는 사건을 수임해주는 재판부의 눈에 띄고 싶어 더 열심히 일했다.
영화 ‘재심’에서 살인 누명을 쓴 현우(강하늘·왼쪽)와 변호사 이준영(정우)의 대화 장면. [사진 오퍼스픽쳐스]

영화 ‘재심’에서 살인 누명을 쓴 현우(강하늘·왼쪽)와 변호사 이준영(정우)의 대화 장면. [사진 오퍼스픽쳐스]

지극히 현실적이던 그가 공익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아이러니하게도 국선 변호 때문이었다. 자기 방어권이 미약한 사람들의 고통과 불합리한 시스템을 알게 됐고, 재심 사건도 잇따라 맡게 됐다. 약촌 오거리 사건을 비롯해 지적장애인에게 살인범 누명을 씌웠던 전북 삼례 나라슈퍼 강도 사건 등을 모두 무료 변론했다. 재심에 집중하기 위해 ‘돈이 되는’ 다른 사건은 아예 받지 않았다. 지난해 파산 직전까지 갔지만 ‘스토리펀딩’을 통해 박 변호사의 사연을 접한 시민들이 5억원을 모아줬다. “소시민의 연대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는 그는 지난해 약촌 오거리 살인 사건, 삼례 나라슈퍼 사건 재심을 모두 무죄로 이끌어냈다. 2015년 제3회 변호사공익대상을 받은 박 변호사는 ‘바보 변호사’‘국민 변호사’란 별명이 붙었다.

6년 동안 매달린 사건을 영화로 본 심정은 어땠을까. 그는 장의사 일을 했던, 지금은 고인이 된 아버지 얘기를 꺼냈다.

“아버지나 저나 남의 불행을 먹고 사는 직업이잖아요. 하지만 아버지께선 그 불행을 배려할 줄 아셨어요. 반나절 쓰는 상여도 정성스럽게 꾸몄고, 저수지에 떠오른 신원 미상의 시신도 거둬들였어요.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제가 아버지처럼 최군의 고통을 배려했었나 반성하게 되더라고요. 지금은 아니지만, 개인적인 욕심으로 이 사건을 시작한 게 너무 미안했어요. 영화를 본 날 저녁에 최군에게 전화했어요. 정말 미안했었다고.”

그가 재심을 통해 깨달은 건 “법은 약자를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강자는 자신들의 권익을 지위와 재력을 이용해 스스로 지키지만 약자에겐 아무도 없다는 것. 약자를 보호하지 못하는 사회는 정의롭지 못한 사회라는 것 등을 말이다.

그는 현재 최군의 잃어버린 10년에 대한 국가 배상 소송과 4건의 새로운 재심 사건을 준비 중이다. 시민들이 후원에 나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약촌 오거리 사건이 무죄 판결을 받았다고 끝난 게 아니에요. 진범에 대한 1심 재판이 진행 중이고, 최군이 억울한 옥살이를 하게끔 만든 경찰, 검사, 판사, 국선변호사 모두 반성하거나 사과하지 않았으니까요.”

글=김효은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hyoe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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