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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강수의 직격 인터뷰] 헌법재판관들, 이제 역사와 국민만 보고 결정문 써야

헌법재판소 이강국 전 소장
서울 재동의 헌법재판소 건물 꼭대기 층에는 무궁화 문양 9개가 돋을새김돼 있다. 헌법재판관 9명을 상징한다. 하지만 현재 재판소장은 공석이다. 헌재의 아홉 심장 중 한 심장이 멎는 바람에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은 8인 심리로 파행 운영되고 있다. 다음달 13일이면 이정미 소장 권한대행마저 퇴임해 7인 심리 체제가 된다. 파행의 파행이다. 국가적 위기 상황에 헌재마저 헌법 111조(‘헌법재판소는 재판관 9인으로 구성한다’)를 위반하고 있다. 이강국 전 헌재 소장은 “지금 돌아가는 국내 판세를 보면 꼭 구한말 조선 같다”며 “헌재가 기각이든 인용이든 신속히 결정을 내려 국론 분열의 혼돈을 수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터뷰 내내 이번 탄핵심판의 의미와 헌재 결정 이후 후유증 극복 방안 등을 논리 정연하게 풀어 냈다. 2013년 퇴임 후 인터뷰를 고사해 온 그는 “탄핵 사건 재판이 막바지로 치닫는데도 여전히 부정확한 정보나 자료 등 ‘페이크 뉴스’가 난무해 한마디 했다”고 말했다.
이강국 전 헌법재판소장은 지난 13일 인터뷰에서 “이번 대통령 탄핵심판 결정문은 후손들이 역사책처럼 보게 될 것”이라며 “재판관들이 결정 시 개인적 인연에 구애받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 최정동 기자]

이강국 전 헌법재판소장은 지난 13일 인터뷰에서 “이번 대통령 탄핵심판 결정문은 후손들이 역사책처럼 보게 될 것”이라며 “재판관들이 결정 시 개인적 인연에 구애받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 최정동 기자]

대통령 탄핵심판이 8인 재판부로 운영되고 있는 상황을 어떻게 보나.
“대통령 탄핵심판은 사안의 중대성에 비춰 재판관 9인 전원이 심리하고 결정하는 것이 원칙이다. 이번 사건에선 난감한 상황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탄핵심판 개시로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되고 국무총리가 권한을 대행하는 등 비정상적 통치시스템이 작동 중인데 헌재마저 비정상적 법치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다만 헌법재판소법에 의하면 탄핵심판 사건도 재판관 7인 이상이 출석하면 사건을 심리할 수 있고 그중 6인 이상의 찬성이 있으면 인용 결정을 할 수 있다. 따라서 최대다수의 재판관들이 확보된 상태에서 심리하고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다. 국정의 공백과 혼란을 줄이기 위해 인용이든 기각이든 가부간에 최대한 신속하게 결정을 내리는 게 맞다. 3·13 이전에 결정이 나야 한다. 상황이 어려울수록 대도(大道)와 정도(正道)를 걸어야 한다.”
이번 탄핵심판에선 절차적 정당성보다 신속한 결정이 중요하다는 의미인가.
“물론 헌법 위반 8개, 법률위반 5개 등 탄핵 사유 전체를 하나하나 시간을 갖고 검증하고 조사하는 게 좋다. 하지만 그(지체되는) 사이에 멍드는 건 대한민국이고 국민이다. 일본 아베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한테 달려가 저 난리(※친분을 쌓음)고 북한이 탄도미사일 발사하니깐 즉석에서 기자회견도 하는데 우리는 지금 뭘 하고 있나. 지금 돌아가는 판세를 보면 구한말 같다. 4대 열강에 휩쓸려 조선이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면서 나라 구실 제대로 못하고 고생하던 때가 100여 년 전이다. 그런 불행이야 다시 없겠지만 선진국 문턱에서 손 놓고 미국·일본이 어떻게 하는지 쳐다만 보고 있어서야 되겠나.”
이정미 권한대행마저 3월 13일 퇴임해 7인 재판부가 되면 문제가 뭔가.
“헌재가 어떤 결정을 내리더라도 결정의 대표성과 정당성을 두고 논란과 분쟁이 야기될 게 불을 보듯 뻔하다. 헌재 결정이 왜곡될 수 있다는 의미다. 그에 따른 심각한 국론 분열의 후폭풍이 걱정된다.”
박한철 전 소장 후임 임명이 어렵다면 대법원장 지명 몫인 이정미 대행 후임이라도 속히 임명해 탄핵심판 장기화에 대비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문제는 양승태 대법원장이 이 대행 후임을 지명한다고 해도 인사청문회, 국회 동의를 거치는 데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다. 지금은 여야가 유불리를 놓고 불꽃 튀는 논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라 합의가 쉽지 않을 것이다. 새 재판관이 투입된다 해도 사건 파악에 애로가 있지 않겠나.”

지금은 구한말 조선과 흡사
4대 열강 각축에도 수수방관
7인 재판부 결정 정당성 논란
3·13 이전 선고가 바람직

 
헌재가 탄핵심판 마무리 수순에 돌입한 듯한 인상이 짙다. 3·13 이전 헌재 결정이 가능한가.
“헌재가 변론을 종결하면 재판관 평의를 거쳐 통상 2~4주 후 선고하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중차대한 사건의 경우 정하기 나름이다. 평의는 아침 9시30분쯤 시작해 늦으면 밤 10시를 넘기기도 한다. 먼저 주심 재판관이 보고를 하면 나머지 재판관들이 질문이나 주장을 하면서 치열한 공방을 한다. 어떤 때는 살벌한 장면도 연출된다. 평의가 끝나면 모두가 파김치가 되어 인근 식당에서 막걸리를 한잔씩 하면서 서로간의 감정과 피로를 풀기도 한다. 평의에서 결론이 도출되면 결정문 작성에 들어간다. 이때 극도의 보안이 필요하다거나 재판관 일부가 이의나 문제를 제기하는 경우에는 헌재 소장이 선고 직전에 다시 긴급 평의를 연다. 통합진보당 해산 사건 때 결정 당일 오전에 결정문이 확정됐다는 게 이상한 것만은 아니다.”
이번 헌재의 탄핵 결정은 재판관 실명제 부담 때문에 8대 0, 7대 0 등 전원합의 형태로 나올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미국 연방대법원의 1954년 ‘브라운 대 교육위원회’ 사건 판결은 흑인민권운동 관련 기념비적 판결로 꼽힌다. 공립학교의 인종차별에 따른 흑백분리 교육이 시발점이었다. 공수부대가 투입돼 스쿨버스를 호위하고 학교 를 보내는 일까지 벌어졌다. 미 대법원장이 그 사건 진행 중에 표결을 한참 미루며 반대의견을 표명한 사람을 설득해 9대 0으로 만들었다는 비화가 『지혜의 9기둥』이라는 책에 나온다. 그것의 사실 여부를 떠나 우리 헌재가 전원일치의 의견을 도출하기 위해 그렇게까지 노력할 필요가 있을까. 역사적 사건에선 소수 의견도 제시되는 게 맞지 않나 싶다.”
헌재는 미국으로 치면 연방대법원 역할을 하는 건가.
“그렇다. 두 사법기관의 역할이 비슷한 측면이 많다. 2010년 헌재 소장 때 미국 존 로버츠 대법원장을 예방할 일이 있었다. 연방대법원을 다룬 『지혜의 9기둥』을 읽고 갔다. 대법원장에게 ‘책을 보니 대법원이 다수 의견을 만들기 위해 군사작전 하듯이 하더라. 누구한테는 공작을 하고 누구한테는 이런 구절 판결문에 넣어 주겠다고 설득하기도 했다는데 사실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책의 저자가 로클럭을 지낸 두어 사람 구워삶아 자료 구해 쓴 것이니 너무 믿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한 기억이 난다.”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기각 때 헌재가 밝힌 위반의 중대성 기준은 뭔가.
“그건 계량적인 게 아니다. 헌법재판관들이 오랜 경험과 능력에 기반해 국내외의 여러 가지 자료를 보고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할 문제다.”
요새 헌법재판관들의 임명 배경과 출신지 등을 분석해 탄핵 기각 가능성을 점치는 일도 벌어진다. 시중에 나도는 탄핵 기각 괴담에 대한 견해는.
“재판관들이 자신을 추천 또는 임명한 사람의 입장에 설 것으로 생각하는 것 자체가 선입견이다. 헌법재판관들은 국회·대법원장·대통령이 3명씩 지명하지만 최종 임명권자는 대통령이다. 누구에 의해 추천, 임명됐느냐에 연연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 대통령에게 유리한 결정을 해야 한다면 재판을 왜 하나? 공적인 소명과 직무의 적정성을 먼저 따져야지 개인적인 인연에 구애받아서는 공직자가 제대로 일을 하겠는가. 이번 현직 대통령 탄핵심판 결정은 오래오래 역사적 사실로 남을 것이다. 후손들이 역사책을 보듯이 결정문을 볼 것이다. 재판관들은 역사가 자신을 어떻게 평가할지 직시하고 국민의 입장을 제대로 파악해 최선의 결정을 내릴 것으로 본다. 헌재는 이런 중차대하고 국론이 분열될 수 있는 상황에서 오로지 역사와 국민, 두 가지만 보고 심판에 임해야 한다.”
헌재 결정에 불복하려는 움직임도 일부 감지된다.
“국론 분열이 극대화됐을 때 그걸 통합할 수 있는 건 헌재의 결정뿐이다. 단심이라서 결정이 한번 내려지면 누구든 어찌할 수 없다. 승복하고 평상으로 되돌아가는 것 외에 다른 도리가 없다. 헌법이 설정해 놓은 국가위기관리 시스템의 요체는 국회가 ‘현직 대통령 탄핵소추’를 의결해 헌재로 넘기면 헌재가 사법적 통제 절차를 거쳐 심리·평의·결정선고 순으로 종결하는 것이다. 그것이 헌재의 중요한 존재 이유 중 하나다.”

소수 의견 제시되는 게 좋고
탄핵 요건 중대성은 계량 안 돼
재판관들 종합적 판단에 좌우
‘제왕적 대통령제’도 개선해야

 
대통령 탄핵심판이 형사 재판이 아니라는 건 무슨 뜻인가.
“헌법재판소법에 보면 헌재 재판은 민사소송에 관한 법령을 준용하게 돼 있는데 추가로 대통령 탄핵의 경우 형사소송에 관한 법령을 준용하게 돼 있다. ‘적용’하는 것이 아니고 ‘준용’하는 것이다. 따라서 형사소송법처럼 엄격한 증거를 요구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형소법에는 자백에 대한 보강증거 원칙이 있다. 아무리 피고인이 법정에서 자백을 해도 보강증거가 있어야 유죄를 선고한다. 반면 헌재는 자백만 있으면 객관적 사실을 인정할 수가 있다.”
박 대통령 같은 탄핵 사례가 이전에 있었나
“지금까지 국회에서 발의된 탄핵 소추안은 10건이다. 그중 탄핵소추가 의결돼 헌재로 간 건 노무현 전 대통령과 박 대통령 사건 두 건이 전부다. 전두환 전 대통령 시절 유태흥 대법원장에 대한 탄핵 소추안은 부결됐고 그와 별개로 검찰총장과 검사들에 대한 7건이 발의됐으나 이 또한 부결로 종결됐다.”
헌재가 삼성 이재용 부회장 등 기업 총수들은 증인으로 채택하지 않았는데.
“검찰이나 특검에서 조사한 자료가 다 헌재로 온다. 기업 총수들까지 불러서 물어볼 이유가 어딨나. 내가 헌재 소장에 있었더라도 그랬을 것이다.”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 이후 점점 심해지는 국론 분열과 대립, 어떻게 풀어야 하나.
“요즘 촛불집회와 태극기집회에서 보듯 이념적, 세대 간, 지역 간의 분열과 대립도 더욱 심해졌다. 여기에 더해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회의와 정당·국회에 대한 무용론·해산론까지 횡행한다. 사회적 갈등과 대립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보수와 진보의 대립이 인류 역사의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그러나 한국적 현실도 직시해야 한다. 지금과 같은 이념적 분열과 대립은 국가발전을 가로막는다. 위험한 병리현상일 뿐이다. 정치지도자들도 우리 사회의 갈등과 대립을 정치적·정략적으로 악용하지 말고 국가발전의 동력으로 전환시킬 수 있도록 소통과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때다.”
헌재 소장과 대법관 재직 시 가장 기억나는 사건은.
“대법관 재직 시인 2005년 범죄 등에 이용되지 않는 한 개명허가를 폭넓게 인정하도록 한 사건이다. 그 당시 개명허가신청은 관할 법원장들의 각각의 기준에 따라 허가율이 30~80%까지 차이가 많았다. 이번 대통령 탄핵 사건에 관련된 인물 중 일부가 여러 차례 개명했다는 보도를 접하고 씁쓸하기도 했다.”
급부상한 개헌에 대한 견해는.
“지난 30년간 6명의 대통령 전원이 예외 없이 비극적으로 또는 명예롭지 못하게 임기를 마치게 된 것은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 때문이다. 국가 통치 권력을 사유화한 권한남용에서 비롯된 부분이 크다. 압축개발 시대에 일시적으로 필요했던 제왕적 대통령제 대신 분권형 대통령제나 이원정부제, 의원내각제 등 분권적 제도를 도입하자는 주장이 대세다. 아울러 선거제도, 공천 문제 등 정당의 민주적 운영방안도 함께 검토돼야 한다. 개헌 과정에 시민이 직접 참여하는 길도 열려야 한다.” 
 
이강국(72·사시 8회)은 …
1972년 판사로 임관해 대법관과 법원행정처장·헌법재판소장을 지냈다. 선친인 고(故) 이기찬 변호사, 아들 이훈재 판사까지 3대가 법조인이다. 2013년 헌재 소장 퇴임 후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위한 봉사에 기여하겠다”며 2년6개월간 법률구조공단에서 650여 건의 무료법률 상담을 했다. “공직생활 동안 서류나 기록으로만 접했던 서민들의 억울함과 서러움·분노 등을 생생하게 보고 들어서 보람찼다”고 한다. 같은 해 9월부터 서울대 법대 일반대학원에서 초빙석좌교수로 ‘헌법판례연구’ 강좌를 맡았다. 현재 법무법인 한결의 고문으로 있다. 개인적으로 ‘통일 시대 헌법과 헌법재판 연구소’를 창립·운영하고 있으며 수차례 정치권의 영입 제의를 고사하고 헌법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글=조강수 논설위원
사진=최정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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