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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우의 블랙코드] 빈둥거림의 경쟁력

최민우 문화부 차장

최민우
문화부 차장

KBS ‘유희열의 스케치북’이 폐지설에 휩싸였다. 15일 한 인터넷 매체는 “‘스케치북’이 시즌제 프로그램으로 전환된다”며 사실상 폐지 수순을 밟는다고 보도했다. 이건 단지 TV 예능 하나가 없어지는 게 아니다. ‘이소라의 프로포즈’ ‘윤도현의 러브레터’ 등 20년 넘게 이어져 온 정통 음악프로그램의 명맥이 끊긴다는 의미다. KBS는 부랴부랴 “사실 무근이다. 계속 간다”는 공식 입장을 내놓았다. 하지만 높은 제작비, 저조한 시청률 등 사정은 여전히 녹록지 않아 보인다. 담당 김호상 CP는 “요즘 시청자들은 오롯이 음악만 듣는 걸 지나치게 한가하게 여긴다”고 토로했다.

올해 들어 화제의 방송콘텐트는 단연 tvN 설민석의 ‘어쩌다 어른’이다. 강연 프로그램으로는 이례적으로 시청률 8%를 상회했다. 대통령 탄핵 정국과 국정교과서 논란으로 역사에 대한 관심이 새삼 환기된 데다 설민석의 스타성, 한국사 수능 필수과목 지정 등이 맞물린 덕이다. 여기에 달라진 시청 패턴도 한몫했다. “TV를 보면서 실컷 낄낄대 놓곤 오히려 찜찜해한다. 이렇게 시간을 허비하는 건 죄악이라며 놀면서도 지식·교훈 등 뭔가 남는 게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근 교양예능·정치예능이 인기있는 이유”(성기완 계원예술대 교수)라는 진단이다.

언제부터 우린 노는 걸 폄하했을까. 근면·성실을 최고의 덕목으로 여긴 근대화의 산물일 것이다. 여기에 스마트 세상은 걸을 때도, 밥 먹을 때도, 심지어 잘 때도 우리를 가만히 두지 않는다. 낙오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쉬지 않고 뭔가를 해야만 한다는 강박의 일상화다.

그런데 혹시 아는가. 우리 뇌는 아무 것도 안 하고 멍 때릴 때조차 스스로 움직인다는 사실을. 2000년대 초반 미국 뇌과학자 마커스 라이클 교수는 인간이 아무런 인지 활동을 하지 않을 때 더 활성화되는 뇌의 특정 부위를 발견하고, 이 두뇌 회로를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efault mode network)’라 명명했다. 역할은 창의성과 자아 성찰 지원. “문제를 안고 잠이 들었다가 답을 안고 깬다”는 속설을 과학적으로 입증한 셈이다. 통찰력의 근원이 휴식이라는 역설이다.

최근 미니멀 라이프가 트렌드다. 집안에 쓸모없는, 아니 설레지 않는 물건은 과감히 처분하라는 주문이다. 버려야 공간도 마련된다. 비움과 채움의 조화다. 마찬가지로 주말 하루쯤 뒹굴대도 괜찮지 않을까. 우두커니 음악만 들어도 된다. 멍 때림은 이제 낭비가 아닌, 시간의 여백이다. 빈둥거림은 최고의 창의성 훈련일지 모른다.

최민우 문화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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