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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아침] 오리 한 줄

오리 한 줄
- 신현정(1948~2009)


 
저수지 보러 간다

오리들이 줄을 지어 간다

저 줄의 말단(末端)이라도 좋은 것이다

꽁무니에 바싹 붙어 가고 싶은 것이다

한 줄이 된다

누군가 망가뜨릴 수 없는 한 줄이 된다

싱그러운 한 줄이 된다

그저 뒤따라 가면 된다

뒤뚱뒤뚱하면서

엉덩이를 흔들면서

급기야는 꽥꽥대고 싶은 것이다

오리 한 줄 일제히 꽥 꽥 꽥


아, 이런 시를 만나면 출근하던 회사도 학교도 아내 심부름도 기꺼이 깜박 잊을 듯. 무슨 뜻인지 모른다 쳐도 얼마나 즐거운 ‘꽥꽥’이겠나. 그렇게 꽥꽥꽥(언론자유!)거리며 저수지 쪽으로 행진하는 오리 한 줄, 저 천진한 줄의 꽁무니에 따라붙어 깔깔깔 캴캴꺌 벌레 먹은 이빨도 다 내놓고 웃으면서, 자꾸만 흘러내리는 바지도 추켜올리면서, 콧물도 훌쩍거리면서 덩달아 따라가는 게 인간적이다. 시치미 떼고 오리처럼 똥도 쪼끔 누고, 오줌도 찍 누고, 오리처럼 밥 먹고 오리처럼 낮잠도 고요히 좀 주무시고. 한 사나흘만 그러고 나면, 겨드랑이에 아무도 몰래 쪼그만 날개도 돋을 거라. 싱그러울 거라. 그거로 아직 날 수야 없겠지만. 뒤뚱뒤뚱!

<김사인·시인·동덕여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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