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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탈리 칼럼] 보복의 지정학

자크 아탈리 아탈리 에 아소시에 대표 플래닛 파이낸스 회장

자크 아탈리
아탈리 에 아소시에 대표
플래닛 파이낸스 회장

앵글로색슨 민족들은 자기들만은 어떤 벌도 받을 리가 없다고 믿는다. 권세가 하늘을 찌르던 지난 시대에서부터 대물림한 결점들 가운데 하나다.

그들은 무슨 일을 하건 다른 사람들도 자신들이 드는 것과 같은 무기를 쓸 수 있을 거라고는 절대 생각하지 못한다. 사실 이 게임의 이론은 전략적·지정학적 실제에서와 마찬가지로 약자 입장에선 강자가 쓰는 무기를 가져와 득 될 일이 전혀 없다고 보고 있다. 건건이 대응해서는 안 되고 골리앗에 맞섰던 다윗의 경우처럼 특수한 접근법을 찾아내야 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다.

지금 영국인들의 모습도 이와 다르지 않다. 유럽인들이 자신들의 대륙으로 향하는 시장을 먼저 차단하고 나설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미국인들도 마찬가지다. 세계 다른 국가들이 미국에 투자하고, 돈을 맡기고 인력을 보내는 일을 거절하고, 더 나아가서는 그들 나라의 국민이 미국 휴가나 근무도 거부할 수 있다는 것은 예상하지 못한다.

두 나라 모두 상대국들은 자신들을 너무나 필요로 하는 나머지 그들의 일방적 행동을 순순히 받아들일 것이며, 타협안을 받아주십사 간청해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트럼프가 기대하는 게 특히 이 부분이다. 비즈니스 전략에 능한 이로서 그는 이러한 조치를 단독으로 실행할 경우 챙길 수 있는 이득이 있으리라는 것을 안다. 다른 나라들이 미국 상품을 수입하고 미국의 경제 적자를 메워 주는 동안 그는 자신의 나라에 일자리를 나누어 줄 것이다.

그러나 앵글로색슨 민족들의 예상이 빗나간다면, 다른 나라들이 그들의 위세에 굴복하지 않는다면, 전 세계 다른 국가들이 그들과 같은 무기를 들고 나선다면 어찌 될 것인가.
다른 나라들이 그 익숙한 정신적 의존에서 벗어난다면 앵글로색슨 민족의 상대국들(특히 무역 비중이 가장 높은 유럽과 중국)은 이들에 맞서기 위해 자신들이 준비한 무기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가공할 만한 극한의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리라.

일례로 영국의 양보를 끌어내고자 하면 유럽 국가들이 유럽연합 조약에서 적합한 조항들을 찾아와 그것을 근거로 영연방의 산업과 금융상품 유입을 차단하는 것으로 족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트럼프가 이제 막 꺼내 든 보호무역 조치에 대항해 유럽과 중국이 결속, 미국에 맞서 동일 조치를 실행하는 것만으로 미국 경제는 붕괴되고도 남을 것이다. 이것이 무슨 의미인가. 미국 시민들의 유럽과 중국 입국을 금지하는 것이다. 세계 다른 나라들로 재수출을 목적으로 하는 유럽과 중국 기업의 미국 투자를 금지하는 것이다. 유럽과 중국 은행들의 미국 국고 공사채 매입을 금지하는 것이다.

유럽과 중국이 불안으로 동요하기보다는 신뢰할 수 있는 방식으로 균형 잡힌 보복 조치를 내세워 메이와 트럼프를 위협해야 하는 시기가 왔다. 이 조치에 신빙성이 있다면 메이와 트럼프는 억만장자 친구들의 조언대로 물러설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들이 귀 기울이는 상대는 이들뿐이다.

더하여 이와 같은 정책을 바라고, 구상하고, 실행할 수 있을 만큼 의지가 단호한 사람들이 유럽에 필요할 것이다.

자연히 지정학적 자멸에 준하는 연쇄 보복이라는 리스크는 작지 않을 것이다. 보호무역주의는 자칫하면 민족주의나 전쟁으로 치달을 수 있다. 유럽이나 중국이 그런 조치를 하지 않는다면 이 자멸적인 악순환이 누구에게도 득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될 수 있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역사는 최소 두 번의 사례에 걸쳐 이를 증명한다. 보편 계몽 사상과 다시 찾은 인본주의에 대한 견해들이 빛을 보기 시작했던 18세기 말부터 이미 우리는 민족주의로의 대폭발을 목격한다. 그 신호 중 하나가 이탈리아어 오페라의 금지였다. 이렇게 유럽에서 우리는 독일어와 프랑스어 오페라를 무대에 올렸다. 이후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세계화로의 대전환 국면이 다시 찾아온다. 쥘 베른이 『80일간의 세계 일주』를 쓴다. 비행기·전보·전화가 등장한다. 온 세상이 쉽게 가 닿을 수 있는 곳이 된다. 그러나 세계는 1914년부터 냉전시대 종말까지 75년간의 야만을 겪게 된다. 이 야만은 주로 정체성의 추구, 타인과 그 타인에 의해 초래될 수 있는 위험에 대한 두려움과 연관돼 있다.

그러나 이렇다고 해서 단호한 정책의 실행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잘못해서 최악으로 가는 경우 한물간 권력이 가져갈 그 한 가지 이득을 위해 우리 자신이 희생되는 상황이 될 수 있다. 확고한 정책을 세운다는 것은 연쇄 보복을 저지하고, 법의 규칙에 어긋남이 없이 제어 가능한 세계화로 돌아오기 위한 조건을 갖추는 것이다.

덧붙이자면 권력의 고삐를 아마추어에게 넘겨줄 때는 아닐 것이다. 비단 프랑스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자크 아탈리 아탈리 에 아소시에 대표 플래닛 파이낸스 회장

◆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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