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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샤이 보수

고정애 정치부 차장

고정애
정치부 차장

영국 BBC의 선거 방송은 정확성으로도 이름 높다. 그러나 몇 차례 망신당한 적이 있으니 대표적인 사례가 1992년 총선이다.

못지않게 정확성을 자랑하는 빅벤의 오후 10시 타종에 맞춰 BBC는 “보수당이 질 수 있다”고 보도했다. 38~39%를 득표, 1%포인트 차로 노동당에 뒤진다는 전망이었다. 보수당도 노동당도 과반에 못 미치는 ‘헝(hung) 의회’가 되거나 마거릿 대처와 존 메이저로 이어져온 보수당의 13년 치세가 끝날 수 있다는 얘기였다.

투표함 속 세상은 딴판이었다. 결국 보수당이 압승했다. 21석 우위였다. 조사업체들로선 이만저만한 망신이 아니었다. 공동 조사위를 꾸렸다. 여러 요인을 발견했는데 그중 하나가 보수당 지지자 중 일부가 지지 성향을 드러내길 꺼렸다(shy·샤이)는 점이었다. 이른바 ‘샤이 토리’ 요인이다. 숨은 표다. 토리는 보수당의 별칭이다. 조사위는 8.5%의 오차 중 2%가 여기서 기인했다고 판단했다. 출구조사도 예외는 아니었다.

영국에선 2015년 총선 때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선거 전 여론조사가 대부분 박빙 승부를 예고했다. BBC가 그나마 출구조사를 통해 보수당이 316석을 얻어 승리하겠다고 전망했다. 실제론 330석(전체 650석)을 획득, 보수당 단독 정부를 구성했다. 보수당엔 성가였지만 조사업체들엔 낭패였다. 전문가들이 ‘샤이 토리’ 현상을 다시 입에 올린 이유였다.

다시 조사위가 꾸려졌다. 결과적으론 증상은 같았지만 원인이 달랐다. 이번엔 응답자 집단(표본)이 잘못됐다고 나왔다. 보수당 지지자들이 실제보다 적게 들어가 있었다. 대신 샤이 토리 요인은 없었다고 판단했다.

자초지종이야 어찌됐든 이 문구는 이듬해 대서양을 건넜다. 여론조사에서 열세이던 도널드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에 대한 해석으로다. 이젠 태평양마저 건너 우리나라에서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이른바 ‘샤이 보수(保守)’ 논란이다.

지금대로면 우리는 끝내 샤이 보수가 있는지, 있다면 얼마나 있는 건지 확신할 수 없을 게다. 업계 차원의 공동 연구가 미비해서다.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더 안타까운 게 있다. 보수 정당 일부에서부터 번져가는, ‘샤이 보수’의 존재를 기정사실화하며 이들이 종국엔 자신을 지지할 것이라고 자만하는 태도다. 자기 혁신 노력은 턱 없이 부족한데도 말이다.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샤이 보수마저 등돌리게 할 오만함이다. 보수 유권자로 남아 있기에도 면구한 시절이다.

고정애 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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