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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유부녀 성혜림이 5호댁 간다는 말에 깜짝 놀라”

지난 13일 북한 간첩으로 보이는 여성 두 명에게 피살된 김정남의 어머니 성혜림(1937~2002)의 단짝 친구 김영순(80·사진)씨의 목소리는 떨렸다. “울었어요.” 중앙일보와 15일 통화에서 그가 건넨 첫마디였다.

그는 “뉴스를 보며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속으로 ‘혜림아, 너는 나보다 운명이 기구하구나’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쓸쓸히 타지에서 죽은 것도 모자라 정남이까지 피살됐으니, 내 가슴이 너무 아프다. 인간의 생명을 이렇게 가벼이 여기는 김정은은 지구상 최악의 폐기물”이라고 했다. 그는 “정남이를 직접 본 적은 없지만 혜림이 생각을 하면 남 같지 않다”며 한숨을 쉬었다. “(김정일의 이복형제인) 김평일처럼 아예 납작 엎드려서 완벽한 저자세로 살지 않았기에 그런 꼴을 당한 게 아닌가 싶어 마음이 아프다”고도 했다.

김씨는 친오빠가 6·25전쟁에서 서울을 점령했던 105탱크사단의 장군이었다. 북한에서 특권층으로 살면서 평양 소재 종합예술학교 무용학부 1기생으로 ‘전설의 무희’로 불리는 최승희(1911~67)에게 춤을 배웠다. 배우였던 동갑내기 성혜림과는 학교에서 만나 10대 시절부터 단짝으로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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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초 러시아 모스크바에서의 성혜림. 13일 말레이시아에서 피살된 김정남의 생모다. [중앙포토]

1970년대 초 러시아 모스크바에서의 성혜림. 13일 말레이시아에서 피살된 김정남의 생모다. [중앙포토]

일과를 마치고 학교 앞에서 함께 ‘오징어 덴푸라(튀김)’를 먹는 게 큰 즐거움이었다고 했다. 성혜림에 대해 그는 “키는 1m61㎝에 당시로선 서구형 큰 키의 미인이었고 웃을 때 보조개가 쏙 들어가고 눈꼬리가 올라가는 게 참 예뻤다”고 회고했다.

졸업 후에도 둘은 자주 왕래했다. 성혜림은 배우로, 김씨는 무용가로 명성을 쌓아 나갔다. 그러다 69년 7월, 평양시 창전동 김씨의 아파트로 성혜림이 찾아왔다. “영순아, 나 5호댁 간다”는 성혜림의 말에 김씨는 깜짝 놀랐다. ‘5호댁’은 당시 북한에서 김일성의 직계가족이 사는 곳을 칭했다. 김일성 일가에 시집을 간다는 의미였다. 당시 성혜림은 조선작가동맹위원장 이기영의 장남인 이평의 부인이었고, 김정일보다 다섯 살 연상이었다. “이평이는 어떻게 하고”라는 질문이 불쑥 나왔다. 이평씨 얘기가 나오자 성혜림은 답이 없었다. 김씨는 더 묻지 않고 이렇게만 말했다고 한다. “오늘이 너랑 나랑 보는 마지막 날이네.” ‘5호댁’에 들어가면 외부 세계와는 철저히 단절되는 게 북한 사회였기 때문이다.

김씨는 “당시 김일성은 북한에서 신(神)이었으니까, 혜림이가 참 대단하다, 잘됐다고만 생각했다. 김정일이 영화광이었으니 혜림이가 당선(선택)된 거 같다고만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후 성혜림은 71년 김일성의 장손을 낳아 ‘정남’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장군복을 입혀 첫돌을 성대히 치렀다는 소문을 들었다.

하지만 본처가 있던 김정일은 성혜림의 존재를 숨겼고, 그의 존재를 아는 친구들의 입을 막으려 했다. 김영순의 집에도 어느 날 갑자기 국가안전보위부 요원들이 들이닥쳤다. 그렇게 그는 정치범이 수감되는 함경북도 요덕수용소로 끌려가 9년을 복역하고 나왔다.

세상도 달라져 있었다. 김정일이 성혜림을 버리고 재일동포 출신 고용희에게 열을 올린다는 소문이 돌던 때였다. 고용희는 84년에 아들 김정은, 89년에 딸 김여정을 낳았다. 성혜림은 유선암을 앓다 러시아에서 2002년 사망했다. 그의 묘는 모스크바 근교 트로예쿠롭스코예 공동묘지에 있으며 비석엔 ‘묘주 김정남’이라고 쓰여 있다고 한다.

요덕수용소 생활 후 김영순씨는 탈북을 결심했다. 오랜 기간 준비를 거쳐 2002년 탈북했다. 중국을 거쳐 2004년 한국에 입국했다. 스승 최승희를 기리는 활동을 하며 지난 2006년엔 뮤지컬 ‘요덕 스토리’의 안무도 맡았다. 성혜림이 러시아에서 사망했다는 것도 나중에 알았다고 했다. 그는 “결국 김정일에게 다른 여자(고용희)가 생겼으니 혜림이가 러시아에서 얼마나 쓸쓸하고 마음이 아팠겠느냐”고 되물었다. 그런 뒤 “그저 평범하게 살았으면 더 행복했을 텐데. 어린 시절 함께 덴푸라를 먹으며 즐거워했던 혜림이가 그립다”고 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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