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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나라서 살면 안 되나요” 임 카롤리나의 눈물

14일 안산에서 만난 고려인 4세 임 카롤리나(왼쪽)와 3세 박 빅토리아. 고국에 융화되지 못하고 ‘경계인’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표정이 어둡다. [사진 김춘식 기자]

14일 안산에서 만난 고려인 4세 임 카롤리나(왼쪽)와 3세 박 빅토리아. 고국에 융화되지 못하고 ‘경계인’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표정이 어둡다. [사진 김춘식 기자]

“우즈베키스탄으로 돌아가기 싫어요. 무슨 방법이 없을까요.”

지난해 10월 경기도 안산에 거주하는 고려인을 위한 쉼터로 문을 연 고려인문화센터(안산시 선부동)에서 지난 14일 만난 임 카롤리나(17·여)의 얼굴에 걱정 어린 표정이 역력했다. 올 초 엄마(43)가 “7년 뒤인 2024년 만 24세가 되면 너는 한국을 떠나야 한다”고 청천벽력 같은 사실을 알려줬기 때문이다.

카롤리나의 증조부는 1930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이후 가족을 따라 연해주로 이주했다. 엄마는 고려인 3세여서 재외동포비자(F4)를 갖고 있지만 미성년자인 카롤리나는 2013년 입국할 때 동반비자(F1)를 받았다. 우즈베키스탄 국적자여서 만 24세가 되면 강제로 출국해야 한다.

실제로 ‘재외동포의 출입국과 법적 지위에 관한 법률’(재외동포법)에 따르면 고려인은 3세까지만 ‘재외동포’로 인정해주고 4세부터는 ‘외국인’으로 분류한다.

낯선 한국 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해 온 카롤리나는 “요즘 내 미래가 너무 불안하다”고 호소한다.

고려인 4세인 김 율리아(18·여)의 사정은 더 딱하다. 당장 내년에 출국해야 한다. 엄마가 소지한 비자가 취업비자(H2)이기 때문이다. H2비자 소지자의 동반비자는 만 19세까지만 체류가 허용된다. 율리아는 “한국에서 친구들과 함께 지내고 싶다”며 울먹였다.

고려인이 F4비자를 받으려면 본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거나 한국에 입국해 3년 이상 제조업(20만 명 이하 도시에서만 가능) 분야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어야 한다. 율리아의 엄마는 이 두 가지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 상태다.

카롤리나와 율리아 같은 고려인 4세 청소년은 안산 센터에만 400여 명이 있다. 전국적으로는 1000명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국내 거주 고려인은 안산에 1만여 명을 포함해 전국적으로 7만여 명인 것으로 센터 측은 파악하고 있다.

카롤리나와 달리 박 빅토리아(17·여)와 이 세르게이(17)는 고려인 3세여서 F4비자를 받아 만 24세 이후에도 국내 체류가 가능하다. 같은 고려인이지만 3세냐 4세냐에 따라 ‘동포’와 ‘외국인’으로 자격이 갈리는 셈이다.

고려인 1세는 1864년부터 연해주로 이주했다. 연해주에 삶의 터전을 어렵게 개척했던 고려인은 1937년 옛 소련의 독재자 스탈린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당했다. 올해는 강제 이주 80주년이다. 소련 붕괴 이후 ‘잘사는 할아버지의 나라’ 한국에 속속 입국했다. 하지만 고려인 후손들은 여전히 경계인이자 이방인처럼 살고 있다.

고려인이 재외동포로 인정된 것은 1992년 재외동포법이 제정되면서다. 하지만 법 시행령에 ‘부모 또는 조부모 중 한 명이 대한민국 국적(45년 정부 수립 이후)을 보유했던 자’로 제한했다. 45년 정부 수립 이전에 외국으로 나간 고려인을 1세로 간주하면서 고려인 4세는 재외동포로 인정하지 않았다.

경계인 취급을 받으니 보육비 지원 등 기본적인 사회복지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 시간제근로나 제조업 등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다. 임금 체불과 부당한 대우도 받는다.

김영숙 고려인동포문화복지지원센터 사무국장은 “고려인 4세들을 무조건 추방하지 말고 고국에서 살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며 “재외동포법 개정이 힘들다면 고려인에게 영주권 기준이라도 완화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임채완(전남대 명예교수) 재외동포연구원 원장은 “고려인도 동포인데 현행 재외동포법에서는 ‘외국인’으로 취급한다. 교육·복지 서비스 제공의 근거가 될 ‘귀환법’ 제정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임 원장은 “고려인들은 대부분 고국인 한국에 뿌리내리고 싶어 한다. 고려인을 통 크게 포용하면 저출산 시대에 인구문제 완화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안산=임명수·김민욱 기자 lim.myoungsoo@joongang.co.kr
사진=김춘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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