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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히틀러 이후 70년 … 독일인은 어떻게 가장 매력적인 국민 됐나

1970년 12월 빌리 브란트 당시 서독 총리는 폴란드 유대인 위령탑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그 이후에도 피해자들에 대한 독일인들의 사죄는 계속됐다. [중앙포토]

1970년 12월 빌리 브란트 당시 서독 총리는 폴란드 유대인 위령탑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그 이후에도 피해자들에 대한 독일인들의 사죄는 계속됐다. [중앙포토]

제2차 세계대전은 1950년대의 독일 지식인들에게 큰 고민을 안겼다. ‘2차대전을 전후해 독일이 저지른 잘못을 답습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였다. 독일 지식인들이 주목한 것은 2차대전을 일으킨 장본인인 아돌프 히틀러가 독일에서 투표와 선거를 통해 합법적으로 집권했다는 사실이다. 독일은 1933년 국민투표를 거쳐 당시 총리인 히틀러가 대통령직을 겸하도록 허용했다. 1년 전인 32년 히틀러가 이끄는 나치당은 총선에서 이겨 제1당이 돼 히틀러가 총리에 올랐다.

독일의 지성들은 “히틀러의 집권과 독주를 견제하지 못한 데는 유권자이기도 한 시민들 책임이 크다”고 자성했다. 이런 반성에서 시민교육의 중요성에 눈을 뜨게 됐다. 정진영(국제정치학) 경희대 부총장은 “전후 독일 지식인들은 민주주의라는 제도를 갖추는 것 못지않게 그 제도를 운영하는 시민의 역량도 중요하다는 교훈을 얻었다”고 해석했다.

독일에서 시민의식의 성장은 독일이 피해를 준 이웃 국가 국민을 향한 사죄로 이어졌다. 1970년 빌리 브란트 당시 서독 총리는 폴란드 유대인 위령탑을 방문해 그 앞에 무릎을 꿇었다. 독일 최고 지도자들의 사죄와 반성은 그 이후로도 계속 이어져 앙겔라 메르켈 총리도 2013년 유대인 수용소를 찾아 희생자들 앞에 사과했다.
독일에서 시민교육이 활발해진 것은 76년부터다. 이 해에 보수·진보 진영을 대표하는 정치인·지식인들이 ‘이념과 정파를 뛰어넘는 시민교육 3원칙’에 합의했다. 조그마한 시골도시인 보이텔스바흐(Beutelsbach)에 모여 합의에 성공해 ‘보이텔스바흐 협약’으로 불린다. 협약엔 ▶강압적인 교화(敎化)와 주입식 교육을 금지하고 학생의 자율적 판단을 중시하며 ▶논쟁적 주제는 수업 중에 다양한 입장과 논쟁 상황이 그대로 드러나도록 하고 ▶학생의 상황과 이해관계를 고려해 스스로 시민적 역량을 기르도록 돕는다는 게 핵심이다.

시민교육의 핵심 목표는 ‘선입견이 없는 (사람)’이란 의미를 가진 ‘Unvorein genommen’이란 단어로 압축된다. 최근 서울에서 열린 심포지엄 참석차 한국을 방문한 커스틴 폴 요하네스구텐베르크대 교수는 “21세기 민주주의의 핵심은 서로 다른 다양한 의견이 한데 어우러지도록 조화시키는 점에 있다”며 “상대를 인정하고 열린 마음을 갖는 것이 시민교육의 출발”이라고 말했다. 시민교육은 이후 90년 독일이 통일한 뒤 사회 통합을 이루는 데에도 기여했다. 수십 년간 서로 다른 정치체제에서 살아온 서독과 동독 주민 간의 화합을 이끄는 성과를 낳았다.
 
사회 이슈 다루는 시민대학, 독일에 1000곳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주최 ‘인성콘서트’에서 다니엘 린데만이 독일의 시민교육 방법에 대해 말하고 있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주최 ‘인성콘서트’에서 다니엘 린데만이 독일의 시민교육 방법에 대해 말하고 있다.

JTBC 비정상회담에 출연하는 독일 출신 다니엘 린데만(32)은 통일 이후에 학교를 다녔다. 그는 학창 시절의 시민교육 수업을 잊지 못한다. 학년별로 주제는 달랐지만 일주일에 두 번은 토론수업을 했다. 학교 측이 미리 주제를 알려주면 학생들은 자료조사를 하고 수업에 임했다. 린데만의 기억에 가장 선명히 남은 수업은 고등학교 1학년 때의 ‘민주주의 대 사회주의’ 토론이었다. 토론은 몇 주 동안 이어졌다. 교실의 모든 학생이 참여해 양 체제를 놓고 논쟁을 벌였다.

 
“애덤 스미스와 마르크스의 사상에서부터 현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논리까지 친구들과 정말 열정적으로 토론했어요.” 이 수업의 특징은 특정 관점에만 머물지 않고 반대 입장으로 바꿔가며 토론한다는 점이었다. 상대의 논리도 공감할 수 있는 여지를 갖기 위해서다. 린데만은 “같은 학생이 지난주에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논리를 폈다면 이번 주엔 사회주의를 옹호하는 방식이었다”며 “다양한 관점을 취하면서 각 체제의 장단점을 파악할 수 있는 기회가 된 것 같다”고 회상했다. 그는 특히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체제 중 무엇이 우월한지를 주입식이 아니라 스스로 느끼고 판단하는 방식으로 배웠다”고 설명했다.

독일에선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고교 졸업 때까지 시민교육이 이뤄진다. 공식 교과목명은 ‘정치교육(Politische Bildung)’이지만 내용은 영미권의 시민교육(Civic Education)과 유사하다. 독일에서 시민교육 과목명에 ‘정치’가 들어가는 이유는 ‘시민이야말로 정치의 주체’라 보기 때문이다. 린데만은 “민주주의는 엘리트 정치인의 통치가 아니라 시민의 능동적 참여를 통한 협치(governance)를 지향한다. 정치교육의 핵심은 협치를 이뤄낼 수 있는 바른 시민을 양성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독일 시민교육의 특징은 우선 논쟁이 되는 사회 이슈를 많이 소개한다는 점이다. 특정 이슈에 대해 다양한 주장을 소개하고 각 주장의 토대가 되는 논거들을 상세히 수록한다. 모리츠 디스터베르크 출판사가 출간한 중2 교과서를 들춰 보자. ‘지역사회와 민주주의’라는 제목의 단원에서 주정부의 사립 음악학교 지원에 대한 찬반 의견을 다룬다. 사립 음악학교를 정부가 지원하는 것이 옳으냐, 지원 여부를 주민이 투표로 결정할 것이냐 아니면 의회에 맡길 것이냐 등 다양한 토론 주제가 등장한다. 각각의 관점에서 볼 때 지방정부는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이 최선이냐도 다룬다. 교사는 학생들이 ‘정부의 역할은 무엇인가’를 놓고 열띤 찬반 논쟁을 펼치도록 유도한다. 학생들이 학교를 벗어나 주의회와 주정부 청사를 방문해 현장학습을 하도록 교육이 설계돼 있다.

독일 시민교육의 또 다른 특징은 한국인에게 익숙한 객관식 평가가 없다는 점이다. 린데만은 “객관식은 소위 ‘출제자의 의도’에 자신의 생각을 맞추는 평가 방식”이라며 “결론이 중요한 게 아니라 본인만의 답을 얻어 가는 문제 해결 과정이 중요하기 때문에 모든 평가는 서술형”이라고 말했다.

독일의 시민교육은 성인이 된 이후에도 이어진다. 정치·사회·환경·노동 등 실생활과 밀접한 이슈의 강의가 개설된 시민대학과 정치교육원이 전국에 1000여 개에 달한다.

이런 교육기관들은 주민들이 겪는 지역 현안을 다룬다. 자동차회사인 벤츠와 포르셰의 본사가 있는 슈투트가르트에서 ‘중앙역 지하화’를 놓고 주민 간에 의견이 크게 엇갈렸다. 그러자 그해 10월 슈투트가르트 시민대학은 이 문제를 주제로 공개 토론하는 수업을 열었다. 수업엔 시민 200명이 참여했다. 중앙역 지하화를 찬성·반대하는 전문가가 먼저 논거를 제시하면 수강생들끼리 자신의 논리를 다듬어 토론에 참여했다. 다그마 쾨트너 슈투트가르트 시민대학장은 “성인 시민교육을 다루는 기관은 실생활과 밀접한 이슈를 연구 주제로 삼기 때문에 시민 참여도가 높다”고 소개했다. 그는 “특강에는 정부·의회 인사들도 참여하며 수업에서 제시된 의견이 정책에 반영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시민교육은 어릴 때 반짝 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평생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2014년 기준으로 슈투트가르트에선 전체 주민 60만여 명 중 약 4만여 명이 시민대학이 개설한 시민교육에 참여했다.
 
“한국, 사회 갈등 비용 연 최대 246조원”
시민의식의 성장은 독일이 글로벌 리더로 부상하는 데도 큰 역할을 했다. 2015년 난민 사태 때 독일 시민들은 넓은 포용력을 보였다. 폐쇄적 입장을 보인 다른 유럽 국가들의 모범이 됐다. 한국 국민에게도 독일의 이미지는 좋다. 본지가 2015년 시민 3068명에게 ‘가장 매력적인 국민과 그 이유’를 물었다. 그 결과 독일인(23.6%)이 압도적 1위였다. 성숙한 시민의식과 관용 정신이 그 이유였다. 김종영 서울대 기초교육원 교수는 “포용과 신뢰 등 독일 시민에 대한 좋은 이미지 덕분에 독일 제품에 ‘ 프리미엄’이 붙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은 시민교육이 전무한 상황이다. 학교에서 창의체험활동의 일환으로 다루고 있으나 정식 과목으로 채택되지 않고 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2007년 초등학생의 시민의식을 조사한 적이 있다. ‘사회생활에 필요한 질서와 규칙을 학교에서 배우고 실천하느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응답한 학생이 18.4%에 그쳤다. 영국(54.3%)·프랑스(63%)의 3분의 1 수준이었다. ‘타인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법을 학교에서 배우고 실천한다’는 학생이 한국은 15.9%에 그쳤다. 영국·프랑스에선 각각 60%였다.

성인이 된 뒤에도 이 같은 상황은 크게 변하지 않아 사회 전체가 치러야 할 비용은 커진다. 한국은 ‘사회갈등관리지수’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중 27위다(2011년). 폴란드·체코·슬로바키아 등과 비슷하다. 삼성경제연구소는 한국에서 사회적 갈등으로 인한 경제적 비용을 연간 82조~246조원으로 추산했다.

윤석만 기자 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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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와 기사를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