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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린 눈 비비며 논문 20편 쓴 외과 전공의

하루 평균 40명의 환자를 챙겨야 했다. 쏟아지는 업무 탓에 쉬거나 잠을 잘 여유도 없었다. 하지만 시간을 쪼개가며 연구와 사랑에 빠졌다. 졸린 눈을 비비고 전공 서적을 뒤지면서 이어진 4년의 ‘연애’는 20편의 논문으로 돌아왔다. 단순히 양만 많은 건 아니다. 연구 논문은 모두 학계에서 인정받는 SCI(과학기술논문 색인지수)급 학술지에 실렸다.
‘인간 승리’의 주인공은 삼성서울병원 외과 전공의(레지던트) 4년차인 김서기(31·사진)씨다. 그는 논문을 처음 학술지에 게재한 지 2년 만인 이달 초 스무 번째 연구 결과를 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대형병원의 외과 전공의들이 논문 한두 편 게재하기도 벅찬 걸 감안하면 기적인 셈이다. 그는 15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병원 동료들은 부러워하기보단 논문을 왜 그렇게 많이 썼냐며 의아해 하는 분위기”라며 웃었다.

“전공의를 시작한 뒤론 여자친구가 없어요. 연구가 제 여자친구이자 취미인 셈이죠.” 김 전공의는 양질의 논문을 쏟아내는 비결을 연애에 빗대 설명했다. 관심있는 상대에 다가가는 것처럼 논문의 시작도 주제에 대한 자연스러운 호기심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 끈기와 인내심이 있어야 연애든, 논문이든 성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사실 그가 의사라는 직업, 외과란 전공을 택한 이유도 ‘연구를 하고 싶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는 “내가 직접 수술을 하면서 인체 조직을 떼내고 그걸로 연구도 할 수 있는 외과가 좋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열정만으로 연구에서 성과를 내긴 어렵다. 병원 시스템과 스승의 도움이 그의 의지를 북돋아줬다. 병원 유방내분비외과장인 김지수 교수는 평소 애정어린 조언과 질책을 아끼지 않는다. 김 전공의는 “연구에 관심이 많은 스승과 제자가 만나 시너지 효과가 났다. 병원도 휴일이나 퇴근 후엔 연구 시간을 보장해주고 자료 검색·통계 작성 등도 체계적으로 지원해줬다”고 말했다.

그는 이달 말 레지던트 과정을 수료한다. 하지만 더 큰 꿈을 위해 의사 가운은 잠시 벗기로 했다. 대신 다음달부터 한국과학기술원(KAIST) 의과학대학원 박사과정에 뛰어든다. 익숙한 외과 진료가 아니라 세포 배양 등 생물학을 기초부터 배우는 것이다. 그는 “새로운 지식을 쌓은 뒤 병원으로 돌아와 갑상샘암을 치료하는 전문의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그의 최종 목표는 뭘까. “갑상샘암은 아직 연구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과잉 진료 등 논란이 많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갑상샘암 진단과 치료의 국제적 기준을 마련해보고 싶습니다.” 

정종훈 기자 sake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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