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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아닌 길을 간다, 이번엔 바이칼호 700㎞

 
모든 것이 꽁꽁 얼어붙은 바이칼 호수 위 700㎞ 거리를 홀로 걷는 모습을 상상해본 적이 있는가.

그 외롭고도 위험한 도전에 나선 한국인 여성이 있다. 키 158㎝, 몸무게 60㎏의 여성 산악인 김영미(37·영원무역). SNS에선 ‘비박(bivouac) 소녀’로 통한다. 에베레스트(8848m)를 비롯한 세계 7대륙 최고봉 등정, 로체(8516m) 등정, 네팔 암푸(6840m) 세계 최초 등정을 통해 얻은 별명이다. 비박은 ‘등반 중 예상치 못한 곳에서의 야영’을 뜻하는 말로 그만큼 험난한 여정을 상징한다.

김씨가 새롭게 도전하는 비박지는 히말라야 최고봉이 아니라 거대한 얼음 위다. 탐험의 영역을 수직 등반에서 수평의 얼음 사막으로 옮긴 것. 이는 국내 최초의 시도로 김씨는 17일 장도에 오른다.

바이칼은 시베리아 남동쪽에 있는 호수로 직선 길이는 636㎞에 달한다. 최저 기온 영하 30도, 강풍이 불면 체감온도는 영하 40도까지 내려간다. 텐트를 칠 때는 스크루(얼음에 박는 등반기구)를 박아서 단단히 고정시켜야 할 만큼 매서운 바람이 분다. 김씨는 지난 2004년 남극 빈슨 매시프(4892m)를 등반할 때 영하 37도를 경험했지만 긴장되긴 마찬가지다. 추위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은 보온 의류와 4㎏ 무게의 텐트 그리고 매트리스 2장뿐이다. 김씨는 “냉동실이 영하 20도라는데, 냉동실보다 더 추운 공간을 걷는 느낌이 어떨지 기대된다”며 웃었다.
 

그는 식량과 장비, GPS 전자장비 등 총 90㎏의 짐을 썰매에 싣고 하루 30㎞씩 25일을 전진할 계획이다. 운 좋게 빙판을 만나면 아이젠을 끼고 걷고, 눈길을 만나면 산악스키나 설피를 신고 걸어야 한다. 지난해 같은 코스를 걸었던 러시아인은 ‘허리까지 빠지는 눈길도 있었다’고 등반기에 적었다. 히말라야 원정처럼 이미 알려진 루트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온전히 혼자 길을 찾아야 한다. 중간 보급도 없다. 혹한이 모든 것을 꽁꽁 얼려버리기 때문에 밥 지어먹고 라면 끓이는 건 불가능하다.

더욱이 짐의 무게는 원정의 성패와 직결된다. 김씨는 36㎏의 식량을 건조·동결시켜 11.5㎏으로 줄였다. 매일 오전 7시에 출발해 점심은 ‘행동식’(조리하지 않고 먹는 비상식량)으로 해결한 후 저녁은 건조식을 데워 먹을 계획이다. 텐트를 치는 데 1시간30분, 철수하는 데 1시간30분을 뺀 나머지는 오직 혼자 ‘걸어야’ 한다. 가장 큰 걱정은 변비다. 추운 날씨와 힘든 행군은 장 운동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김씨의 사전 훈련에는 ‘규칙적으로 먹고 화장실 가는 일’도 포함됐다.

“혼자 걷고 혼자 말해야겠죠. 그러다보면 또 다른 나를 만나지 않을까요.” 한계에 임박한 순간, 유령과 대화를 나눴다는 산악인의 증언은 종종 있다. 김씨는 “진정한 고독의 순간 또 다른 나와 대화가 시작된다는 산악인들의 말을 믿는다”며 “혼자 텐트를 쳐놓고 커피 한잔 마시며 바이칼의 별을 바라보는 순간이 기다려진다”고 했다.

김영미씨는 ‘박영석 사단’ 중 유일하게 탐험을 이어가고 있는 대원이다. 박영석(2011년 작고) 대장의 서울 망원동 아파트에서 동고동락하던 그의 후배들은 히말라야 원정 중 대부분 사망하거나 생업을 찾아 산악계를 떠났다. 이번 원정도 ‘산악인은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간다’는 박 대장의 신념을 따라 감행한 일이다. “제가 ‘박영석 장학생’입니다. 7대륙 최고봉 등반 경비를 대장님이 사비로 지원해줬죠.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부을 겁니다.”

김영주 기자 humanest@joongang.co.kr 사진=강레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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