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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문재인과 안희정

신용호 정치부 부데스크

신용호
정치부 부데스크

안희정 충남지사를 처음 만난 건 2005년 4월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동업자’라 부른 그였지만 정권을 잡은 후 곤욕을 치렀다. 대선 과정의 허물을 뒤집어쓰고 1년을 감옥에서 보냈다. 출소 후엔 스스로 정치권과 거리를 뒀다. 그해 3월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원이 된다. 사실상 칩거였다. 그래도 세상은 그를 실세로 봤다. 당시 여권에선 “VIP가 중요한 일은 희정이와 상의한다”는 말이 많았다.

그런 그를 인터뷰하겠다며 고려대로 갔다. 하루 허탕을 쳤다. 이틀째 교정을 서성이다 그를 만났다. 나이 마흔의 실세, 수수한 점퍼 차림이었다. 인터뷰 제안에 “지금 정치에 대해 말할 입장이 아니다”며 고사했다. 설득도 하고 사정도 했다. “자신에게 관심을 갖지 말아달라”며 요지부동이었다. 실패였다. 대신 발걸음을 돌리려는 기자에게 차 한잔하자고 했다. 중앙도서관 앞 야외휴게실 ‘깡통’에서 믹스 커피를 마셨다. “정치권에 들어가면 얘기를 많이 나누자”며 미안함을 표했다. 한 20분 그를 봤다. 강한 눈빛만큼 성격이 단호하다는 게 첫인상이었다. 하지만 따뜻함도 있는 사람이었다.

그를 잘 아는 지인들은 안희정을 ‘사나이’라고 한다. 승부욕이 강해 끝을 보는 스타일이기도 하다. 일화가 있다. 2002년 노무현 캠프가 있던 여의도 금강빌딩 3층에는 당구장이 있었다. 거기를 그냥 못 지나쳤다. 그런데 실력이 점수로는 150인데 항상 200을 놓고 쳤다고 한다. 후배들은 “희정이 형과 당구 치는 날은 봉 잡은 날”이라고 했다. 더군다나 돈을 잃어도 상대가 주는 ‘뽀찌’를 받지 않는 사나이였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처음 만난 건 2010년 5월이었다. 노무현재단 이사장이었다. 부산에 있는 그에게 전화로 “‘인간 문재인’을 주제로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했다. 당시 야당에선 선거만 있으면 그의 이름이 나왔다. 정치를 하라는데 그는 숨기만 하던 시절이었다. 예상 밖으로 그는 대뜸 “부산에 오세요”라고 했다. 법원 앞에 있는 법무법인 부산으로 갔다. 변호사 일보다 노 대통령 추모 1주기 준비에 바빴다. 역시 궁금한 건 ‘정치를 할 거냐 안 할 거냐’였다. 그는 “체질에 맞지 않는다”고 했다. “정말 안 할 거냐”는 물음에 “정치를 안 하니 내가 괜찮게 보일 뿐 정치를 하면 (기존 정치인과) 금방 똑같아질 것”이라고도 했다. 그땐 진심이었다. 1시간20분 정도 인터뷰를 했다. 노 전 대통령 얘기가 나왔을 땐 눈에 눈물이 맺히는 사람이었다. 순수한 사람이란 첫인상이 강렬했다. 하지만 1년여 후 그의 말과 생각이 바뀌었다.

문재인은 『운명』이란 책을 쓰고 정치를 시작했다. 정권교체라는 명분을 마다할 수 없었다는 게 그의 논리다. 공교롭게 안희정도 당시 “(대선 출마는) 그분의 운명”이라고 했다. 실제 그는 지금 달라져 있다. 그 사이 대선에도 나섰고 야당 대표도 지냈다. 측근들은 “정치인 문재인은 강해졌고 신념을 가지게 됐다”고 입을 모은다. 대선 재수생으로 권력의지가 강력해졌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는 요즘 “(내가) 대세는 대세”라는 말도 하고 다닌다.

권력의지가 강해진 문재인과 사나이 안희정이 이제 피할 수 없는 승부를 벌이게 됐다. ‘노무현의 친구’와 ‘노무현의 동업자’가 정면충돌하게 된 거다. 노무현 정권의 핵심이었던 그들의 지금 상황이 아이러니하다. 다만 두 사람이 노무현 정권 5년 동안 사이가 좋은 건 아니었다. 둘이 대놓고 얼굴을 붉히진 않았지만 ‘문재인의 부산파’와 ‘안희정 등 386 참모’ 사이의 갈등은 적지 않았다. 민주당 경선이 본격화하면 둘은 치열하게 싸울 것이다. 사실상의 본선이란 얘기가 나오는 싸움이다.

대개 선거로 부딪친 사람들은 선거 후엔 원수가 되는 게 이 판의 생리다. 서로 차별화도 해야 하고 검증도 철저히 해야 한다. 네거티브도 선거의 기술이다. 그래서 궁금한 게 승부도 승부지만 승부가 난 후 둘의 관계다. 패자가 승자의 선대위원장이 될 수 있을까. 노 전 대통령은 생전 “경선에서 후보가 결정되면 당연히 진심으로 돕는 게 정당 정치의 핵심”이란 말을 했다. 노무현의 친구와 동업자의 대결은 어떤 결과를 맺을지 지켜볼 일이다.

신용호 정치부 부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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