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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아침] 참회록

참회록
- 윤동주(1917~45)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ㅡ만 24년 1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왔던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

ㅡ그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던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 온다.


윤동주는 여전히 피 흐르는 우리의 상처다. ‘이다지도 욕됨’으로부터 그를 지켜줄 나라는 어디에도 없었다. 아비 노릇을 참칭하며 창씨를 강요하던 군국 일본은 젊은 그를 후쿠오카 감옥으로 잡아가 군수 의약품용 생체실험으로 죽였다. 바로 오늘이 그의 기일이다. 이 시는 유학을 위해 창씨개명이 불가피하던 1942년 1월 말의 시이자 조국에서 남긴 마지막 작품이다. 슬픔 속에서 그러나,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으며’ 치욕에 맞섰던 저 선량함과 신실함이 결국 세상을 살리는 힘임을 믿고자 한다. 일본의 적반하장이 도를 넘는 것을 속수무책 본다. 이렇게 만만한 나라가 된 것인가.

<김사인·시인·동덕여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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