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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의 시시각각] ‘4월 위기설’이 고맙다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또 위기설이다. 이번엔 4월이다. 이런저런 이유가 붙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이 시작된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 배치에 따른 남남, 한·중 갈등이 본격화한다. 대우조선해양이 파산 위기에 몰린다. 이런 악재들이 모조리 ‘4월 위기설’에 녹아들었다. 여기에 ‘10년 주기 위기설’까지 가세했다.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위기는 10년마다 반복되는데 2017년인 올해는 트럼프발 경제 위기 차례라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금융시장 호사가들 얘기 수준이다.

위기설의 근거로 그나마 그럴듯한 건 두 가지다. 하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4월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한다는 것이다. 이는 위안화 급락→원화에 직격탄→달러의 중국 및 한국 탈출→무역과 금융 시장, 한국 경제 두 축의 붕괴로 이어진다는 시나리오다. 심할 경우, 한국 증시는 반 토막 날 수 있다. 실현 가능성은 반반이다. 트럼프는 “시장 예상보다 더 빨리 중국을 압박하는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큰소리쳤다. 하지만 곧이곧대로 믿기는 어렵다. ‘두 개의 중국’ 카드로 중국을 압박했던 트럼프지만 한 달여 만에 ‘하나의 중국’으로 물러섰다. 환율 조작국 카드는 핵무기급이다. 아무리 트럼프인들 중국에 대고 쓰기는 쉽지 않다.

다른 하나는 트럼프가 중국의 대타를 찾는 것이다. 중국보다 환율 개입이 심하고 국내총생산(GDP) 대비 무역 흑자 비율도 높은 나라가 타깃이 될 수 있다. 이때 한국은 유력한 후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한국과 대만의 환율조작이 의심된다”고 보도했다. “지속적으로 자국통화의 평가절하를 추진한 아시아 국가는 한국과 대만”이라는 미국 외교관계자 발언도 실었다. 중국·일본보다는 한국·대만을 때려야 한다는 취지로 읽힌다.

가능성은 훨씬 작지만 충격은 더 큰 가설도 있다. 트럼프가 북한에 대해 4월께 선제공격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설마 하던 일, 나타나지 않을 것으로 믿었던 ‘블랙스완’이 등장하면 시장은 쑥대밭이 될 수밖에 없다. 일부 금융회사에선 이런 이유로 강남 큰손들에게 달러·금 투자를 권하고 있다고 한다.

시장이 수군거리자 정부도 진화에 나섰다. 유일호 경제부총리는 “우리가 상상 못할 위기는 없다. 4월 위기설은 근거가 없다”고 잘랐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간부회의에서 “4월 위기설과 관련한 금융시장 불안을 잠재울 것”을 주문했다. 금융위는 ▶대우조선 리스크 ▶탄핵 정국에 따른 금융시장 불안 ▶미국발 위기 등에 대해 정밀 검토에 들어갔다.

막상 금융 전문가들은 ‘4월 위기설’에 시큰둥하다. 서명석 동양증권 사장은 “한국 경제가 언제 위기 아닌 때가 있었느냐”며 “위기설은 늘 설로 끝났다”고 일축했다. 김군호 에프앤가이드 대표는 “위기설이 실현되려면 달러의 향방이 관건인데, 사실 그건 트럼프도 모르는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트럼프는 약달러를 원하지만 그의 정책대로 미국 경제가 살아나면 강달러가 불가피하다. ‘트럼프와 달러의 딜레마’다. 조재민 KB자산운용대표는 “그나마 미·중 갈등에 따른 위기설이 그럴듯하지만 실현 가능성은 작다”고 봤다.

금융 CEO들은 그러나 다른 것을 걱정했다. ‘불확실성’이다. 경제엔 ‘불확실성=위기’다. 그 점에선 ‘4월 위기설’이 실현될 수도 있다. 4월은 대통령 탄핵 여부가 결정난 후다. 모든 것이 불확실하다. 촛불과 맞불로 갈라진 갈등이 어디까지 커져 있을지 알 수 없다. 정치 일정도 안갯속일 것이다. 실종된 국가 리더십은 작은 위기에도 경제를 나락으로 굴러 떨어뜨릴 수 있다.

사실을 말하자면 나는 위기설이 되레 고맙다. 비상벨이 요란하게 울려야 대피라도 할 수 있다. 몇 해 전 골드만삭스는 한국 경제를 ‘끓는 물 속의 개구리’에 비유했다. 개구리는 물이 뜨거워지는 줄도 모르고 죽어간다. 위기설은 개구리를 “아, 뜨거” 솥에서 탈출하게 하는 자극이 될 수 있다. 위기설이나마 살아있다는 것, 슬프지만 그게 지금 대한민국 경제의 유일한 희망이다.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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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와 기사를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