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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인의 작가전] 붕괴 #13. 잠입 (8)

그녀는 한 손으로는 이유리의 목에 옭아매진 철사 줄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자신의 배를 퍽퍽 내리치면서 쉴 새 없이 입을 뻐끔거렸다. 말을 하는 게 아니라 물고기가 수면 밖으로 내민 입처럼 그냥 뻐끔거릴 뿐이었지만 그때마다 내 몸은 조금씩 찌그러져 들어갔다. 점점 숨을 쉬기가 힘들어지면서 얼굴이 터져버릴 것처럼 달아올랐다. 곁눈질 범위 안에 들어와 있는 이대백 역시 석고상처럼 굳어져 있었다. 비교적 자유롭게 꿈틀거리던 생각마저도 점점 옥죄어오는 압력에 숨차했다. 그녀의 뻐끔거림은 점점 더 빨라졌고, 내 의지와 몸도 가파르게 죄어졌다. 온 세상이 나를 찌그러뜨려서 소멸시키려고 한다는 생각을 마지막으로 의식마저도 희미해져 가는 순간 귀 옆으로 후끈거리는 열기가 퍼져나갔다. 처음에는 고막이 터져버린 줄만 알았다. 사방에서 의식을 파먹어대던 압력이 차츰 엷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그것이 총소리였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녀의 불룩한 아랫배에 작은 구멍이 뚫려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고 나서도 한참 동안 그녀는 아이를 어르는 자장가 소리를 냈다. 아랫배의 구멍이 점점 커지고, 형광색의 부글거리는 액체가 입에서까지 흘러나오면서 자장가 소리가 줄어들었다. 손으로 연신 입에서 나오는 형광색 액체를 닦아내던 그녀는 옆으로 풀썩 쓰러져 버렸다. 쓰러질 때까지 이유리의 목에 감겨있던 철사 줄을 놓지 않았는지 책상 옆에 쪼그리고 있던 이유리 역시 그녀 쪽으로 기울어져서 책상 옆면에 가볍게 머리를 부닥쳤다. 그녀가 쓰러지고 나서야 몸을 옥죄어오던 압력이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힘이 사라짐과 동시에 균형을 잃은 세 명 모두 팔을 휘두르면서 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첨벙거리는 물소리 너머로 연기가 피어나는 사제 권총을 든 차재경의 모습이 보였다. 저벅저벅 걸어온 차재경은 고개를 떨구고는 나와 눈을 마주쳤다.
 
“괜찮습니까?”
 
그리고는 책상 위에 쓰러져있는 그녀 쪽으로 걸어갔다. 차재경의 뒤로는 김원섭이 바짝 붙어있었다.
 
“어머, 애기 엄마! 괜찮아? 조금만 기다려, 내가 치료해 줄게.”
 
박금옥이 울음 섞인 목소리에 책상에 머리를 기댄 이유리가 희미하게 웃었다. 물을 털고 일어난 나는 다른 사람들 틈에 섞여서 책상 쪽으로 달려갔다. 책상 위에 쓰러진 여인의 몸에서 쏟아져 나온 형광색 액체들은 용암처럼 부글거리며 물속으로 흘러내렸고, 액체가 빠져나간 여인의 몸은 점점 홀쭉해졌다. 나무 십자가를 꺼낸 사제가 라틴어로 기도문을 암송하자 그녀의 입에서 비틀리는 듯한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틈에 포대기에 싸인 아이를 냉큼 집어 든 김승리는 아이의 얼굴을 보고는 비명을 질렀다. 아이를 낚아챈 김원섭 역시 아이의 얼굴을 보고는 오열했다.
 
“대체 왜들 그래?”
 
떨고 있는 김원섭의 어깨너머로 아이의 얼굴을 훔쳐보던 박금봉 역시 파랗게 질린 얼굴을 했다. 김원섭은 아이가 들어있는 포대기를 피를 흘리고 있는 이유리의 팔에 안겼다. 그때까지 잠자코 있던 아이가 나지막하게 울었지만 박금봉이 속삭이는 소리를 들은 사람들은 다들 몸을 떨었다.
 
“애 눈동자가 온통 저런 색이여. 눈동자가 없단 말이야!”
 
“자! 똑바로 봐! 이게 네 몸속에서 죽은 아이야. 겨우 임신에 성공한 이 아이가 죽었다는 사실을 믿고 싶지 않았지. 그래서 이 끔찍한 실험에 나까지 끌어들이면서 뭐라고 그랬어? 이 아이를 살리는 게 신의 섭리라고 했지. 이 아이를 봐. 이 아이는 당신의 고집이 만든 괴물이야. 신의 섭리가 아니라 괴물이라고!”
 
“그만 좀 소리 질러요! 일단 살리고 봐야 할 것 아니에요. 이 철사 줄 좀 어떻게 잘라내야 할 텐데, 누구 칼이나 가위 가진 사람 없어요?”
 
김원섭을 밀쳐버린 박금옥의 외침에 나는 김달수가 건네준 칼을 떠올렸다. 옷 속에 넣어둔 칼을 찾으러 허둥대는 사이 이대백이 가방에서 꺼낸 맥가이버 칼의 가위로 철사를 잘라냈다.
 
“철사가 목에 깊이 파고 들어갔어요. 당장 밖으로 데리고 나가지 않으면...”
 
이유리는 다급하게 외치는 박금옥을 한 손으로 밀쳐버렸다. 그리고는 다른 손으로 잘린 철사의 끄트머리를 잡아서 손목에 감았다.
 
“여보, 미안해. 나 근데 당신을 괴롭히려고 그런 게 아니라 정말 아이를 갖고 싶었다. 아이만 있으면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았어. 내가 잘못했어. 이 아이도 내 곁으로 보내 줄 거지?”
 
이유리의 말에 김원섭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철사 줄을 손목에 감은 이유리가 손을 힘껏 뻗어버리자 서걱거리는 소리가 나면서 그녀의 목이 잘렸다. 동그랗게 뜬 눈에서는 아직도 눈물이 쏟아지는 중이었다. 물속에 텀벙 떨어진 이유리의 목이 천천히 쏟아지는 핏줄기를 피해 몸통 주위를 맴돌았다. 이유리가 자신의 목을 스스로 자르는 광경을 옆에서 지켜본 박금옥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혼절해버렸다. 목이 잘린 아내의 시신 앞에서 몸을 일으킨 김원섭은 뒤에 서 있는 차재경에게 덤벼들었다.
 
“다 네 탓이야! 난 싫다고 했는데, 네가 내 집사람을 꼬드겼잖아. 난 정말 싫었다고, 동의서에 사인하고 싶지 않았단 말이야.”
 
김원섭은 차재경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힘없이 중얼거렸다. 차재경은 양손으로 김원섭을 떼어놓고는 엄격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어린아이처럼 이러지 맙시다. 이유야 어쨌건 두 분은 실험에 동의했고, 실험에 필요한 것들을 제공하는 것에도 합의했습니다.”
 
“난 아니야! 난 아니란 말이야!”
 
주르륵 미끄러져서 물속에 무릎이 잠겨버린 김원섭이 흐느꼈다.
헝클어진 감정들 탓인지 뱃속 깊은 속에서 꾸르륵거리는 소리가 났다. 나는 머리가 사라진 목에서 역류하는 이유리의 붉은 피와 책상 위에 쓰러져있는 여인의 형광색 피가 물속에서 섞여져 기묘한 문양을 이루는 것을 말없이 지켜보았다. 그러다가 여전히 어마어마한 양의 피를 흘리는 이유리에게서 벗어나 책상 위에 쓰러져있는 여인 곁으로 시선을 옮겼다. 몸에서 형광색 피가 빠져나가면서 차츰 쪼그라들던 그녀의 몸은 이제 껍질만 남은 것처럼 보였다.
 
“이 여인은 누굽니까? 입원 중인 환자들 중 하나였습니까?”
 
몇 번이고 여인의 몸을 훑어보던 이대백이 차재경에서 물었다.
 
“피실험체 17번입니다. 보통 임산부라고 부르던 실험체였죠.”
 
“실험체라니요? 멀쩡한 사람인데...”
 
“추출에 성공한 엑토플라즘은 여러 방법으로 배양을 시도해봤습니다만 모두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그래서 시도한 게 엑토플라즘 자체를 증식시키는 것이었죠. 처음에는 역시 실패를 거듭했습니다만 우연찮게도 엑토플라즘 자체에 어떤 자극을 가하면 세포분열 같은 것이 일어나는 걸 발견했습니다. 그 엑토플라즘을 추출해낸 원 생명체 그대로 말입니다.”
 
이대백에게 냉정하게 말하던 차재경은 실험 결과를 말하면서 차츰 흥분했는지 말이 점점 빨라져 갔다.
“그럼 유전자를 복제해서 사람을 만들어냈다는 말인가요?”
 
“아직 모르시겠습니까? 이건 유전자나 세포를 이용해서 배아복제를 하는 것과 차원이 다른 겁니다. 그렇게 복제된 생물체는 겉모습만 비슷할 뿐 별개의 생명체입니다. 원 생물체의 기억이나 지식은 공유하지 못하니까요. 하지만 배양에 성공한 엑토플라즘은 배양에 성공하면 원 생물체의 겉모습뿐 아니라 기억도 고스란히 물려받습니다. 한 마디로 완벽한 부활인 셈이죠.”
 
“맙소사...”
 
만면에 미소를 가득 채운 차재경의 말에 이대백은 낮게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곧장 이정자를 노려보았다.
 
“당신 아들도 뇌사상태에 빠진 게 아니라 죽었던 거군요.”
 
“내 손으로 인공호흡기를 떼었어요. 병원장님께서는 실험이 아직 완전하지 못하다고 했지만 전 기꺼이 동의했어요.”
 
“당신 미쳤어?”
 
이정자의 멱살을 움켜잡은 이대백이 말했다.
 
“당신은 내 심정 이해 못 하겠지. 내 아들은 살려고 마지막까지 발버둥을 쳤어요. 견디지 못 할 짓을 저질러놓고 비명횡사해버린 당신 아들과 다르단 말이에요.”
 
“이런 쌍년이!”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이대백의 주먹에 맞은 이정자가 빙그르르 돌면서 물속에 빠졌다. 사람들을 뿌리친 이대백은 쓰러진 이정자에게 무자비한 발길질을 퍼부었다.
 
“그래서 하나뿐인 자식을 이런 괴물 같은 거로 만들 작정을 한 거야? 네년이 그러고도 애미냐?”
 
말리는 사람들을 뿌리치며 성난 짐승처럼 으르렁거리던 이대백을 말린 것은 김달호였다. 겨드랑이 사이로 양팔을 끼워 넣고 목 뒤로 깍지를 끼우자 이대백은 더 이상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이거 놔! 놓으란 말이야! 이 깡패 새끼야!”
 
“맞아, 나 저질 깡패 양아치야. 그런데 말이야. 저 아줌마 심정은 이해할 것 같아. 그러니까 이제 그만하고 얌전하게 있어. 안 그러면 내 사시미 맛을 톡톡히 보게 해 줄 테니까.”
 
발버둥을 치는 이대백의 다리를 걸어서 물속에 넘어뜨린 김달호는 사시미를 꺼내 들었다.
 
“다들 교양 있는 척, 가족들을 위하는 척 그만들 좀 하지. 다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돈을 받고 가족들을 실험체로 팔아넘겼잖아. 아님 우리들처럼 뭔가 기댈 구석을 찾을 속셈이었거나 말이야. 안 그래? 그러니까 다들 나오지도 않는 눈물 쥐어짜느라 짓들 그만해. 역겨워서 뱃속이 울렁거리니까 말이야.”
 
김달호는 사시미를 능숙하게 휘두르면서 이죽거렸고, 사람들은 그 앞에서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뭔가 마음에 짚이는 게 있던 나는 이제는 껍질조차 녹아내려가는 그녀 앞에 서 있는 차재경의 어깨를 잡아챘다.
 
“그럼 내 아들은? 내 아들도 이미 죽은 겁니까? 지난달에 분명 내 눈으로 무균실에 누워있는 걸 봤는데, 그사이에 죽기라도 했단 말입니까?”
 
“당신은 아직도 눈에 보이는 것만 믿습니까?”
 
나는 혀를 끌끌 차며 내뱉어진 차재경의 말을 피해 뒷걸음질을 쳤다. 머릿속에는 반년 전부터 내가 아들을 보러 가는 걸 어떻게든 막아보려고 하던 아내의 모습이 떠올랐다. 반신반의하긴 했지만 아들이 힘들어하는 걸 보여주고 싶지 않다는 아내의 말에 어느 정도 수긍했기 때문에 무심코 넘겨버리고 말았다. 송골송골 땀이 맺힌 눈썹을 힘껏 닫아버리자 혼돈 대신 어둠이 찾아왔다. 이대로 의식이 소멸해버리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어둠 밖의 혼돈이 또다시 나를 끌고 갔다.

작가 소개    
197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대기업 샐러리맨을 시작으로 커피를 만드는 바리스타를 거쳐 길을 쓰고 있다. 소설과 교양서를 비롯해서 다양한 장르의 글을 쓴다.  
장편소설 『폐쇄구역 서울』 『마의1, 2』 『쓰시마에서 온 소녀』 『김옥균을 죽여라』 『바실라』 『명탐정의 탄생』 등을 썼으며, 『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 시리즈에 〈불의 살인〉을 비롯한 단편추리소설들을 발표했다.
역사 교양서 『연인, the lovers』 『혁명의 여신들』 『조선의 명탐정들』 『조선전쟁 생중계』 『고려전쟁 생중계』 『조선직업실록』 『조선백성실록』 등을 펴냈다.
2013년 제1회 직지소설문학상 최우수상을 수상했으며 2016년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NEW 크리에이터 상을 받았다.
현재 한국미스터리작가모임에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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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석의 Mr. 밀리터리 군사안보연구소

군사안보연구소는 중앙일보의 군사안보분야 전문 연구기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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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 사람들
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은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와 기사를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