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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고영태는 의인인가 파렴치범인가

이철호 논설주간

이철호
논설주간

고영태는 최순실 사태의 핵심 인물이다. 그는 “최순실에게 모욕당하고 2년 전부터 자료를 모았다”고 했다. 의상실에서 CCTV를 찍고 전화녹취도 했다. K스포츠재단의 노승일 부장은 독일에서 인터넷, 난방, 음식까지 끊긴 상태에서 국정 농단 자료를 모았다고 했다. 이들은 검찰 수사와 국회 청문회에서 ‘내부 폭로자’로 박수를 받았다. 야당은 그를 “의인”이라고 치켜세웠다. 그런 고영태가 지금 잠적 중이다. 지난 6일 서울중앙지법에서 ‘고영태 녹음파일’이 공개된 이후 자취를 감췄다. 헌법재판소 증인으로도 안 나온다.

녹취록에서 고영태는 “틀을 딱딱 몇 개 짜놓은 다음에 빵 터져서 날아가면 이게 다 우리 거니까. 난 그 그림을 짜고 있는 거지”라고 말했다. 최씨의 국정 농단을 폭로한 뒤 K스포츠를 장악하려는 의도가 묻어난다. 그는 또 “내가 재단에 부사무총장으로 들어가야 될 것 같다… 이사장과 사무총장은 존나 쓰레기 새끼 같아. 쳐내는 수밖에 없어. 거기는 우리가 다 장악하는 거지”라고 말했다. 녹취록에는 최순실의 영향력을 이용해 정부의 36억원짜리 사업을 따내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전화 상대방은 "저번에 말씀하신 러닝 찢고 노는 거 기대하고 있을게요”라고 했다. 한탕 크게 해서 질펀하게 놀아보자는 것이다.

이에 대해 고영태는 "친구와 농담으로 한 것”이라고 변명했다. "절대 사실이 아니며 검찰에 다 설명했다”고 부인했다. 하지만 과연 농담으로 한 말을 언론들이 죽자고 달려드는 걸까. 그리고 재단 장악 음모는 기껏 미수에 그친 것일까. 이미 그의 의도대로 최순실 사태는 빵 터져 최순실이 날아갔다. 그리고 지금 K스포츠재단을 보면 소름이 끼친다. 고영태 녹취록의 스토리가 중단된 채 미수에 그친 게 아니라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라는 느낌이 든다. K스포츠가 고영태 주변 인물들에 의해 장악돼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K스포츠에는 두 번의 고비가 있었다. 첫째, 전경련이 두 재단을 해산해 통합재단을 만들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하지만 물 건너갔다. 전경련은 "K스포츠 이사회가 거부하면 아무리 자금을 댔더라도 직접 해산을 결정할 권한이 없다”고 물러섰다. 두 번째 위기는 경실련 때문이다. 올해 1월 "민법 제38조에 따라 법인이 공익을 해칠 경우 주무관청이 설립 허가를 취소할 수 있다”며 "조속히 해산시키고 출연금 전액을 국고로 환수하라”고 주장한 것이다. 하지만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는 "사실상 강제 해산 방법이 없다”며 소극적인 입장이다. “특검 조사가 끝나지 않는 한 법적 근거가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지금 미르와 K스포츠는 무주공산이나 마찬가지다. 주무부처는 손을 놓았고 전경련이나 재단 이사회는 사실상 붕괴된 상태다. 그나마 미르는 조용한 반면 K스포츠는 자리 다툼의 내분까지 겹쳐 시끄럽다. 이런 와중에도 K스포츠는 매달 8000만원 이상이 지출되고 있다. 이사는 1000만원, 직원들도 평균 600만원의 월급을 꼬박꼬박 챙기고 있다. K스포츠의 직원은 모두 7명. 그 가운데 노승일·이철용·박헌영·강치곤·박재호 등 압도적 다수가 고영태 사단이다. 특히 노승일·강치곤은 고영태와 한국체대 동기며 박헌영의 대학 후배다. 이뿐이 아니다. 이번 사건에 등장하는 류상영 부장도 한체대 출신이다. 진짜 대통령과 최순실이 ‘빵 날아가면’ K스포츠는 고영태 사단의 전리품이 될지 모른다.

문체부 관계자는 “두 재단이 자진 해산할 의사는 전혀 없다”고 혀를 찼다. 더구나 두 재단에 들어온 돈 774억원 가운데 80%인 620억원이 운영재산이다. 주무관청의 관리·감독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어 언제든 빼먹을 수 있다. 남은 돈에 눈독을 들이는 건 당연하다. K스포츠는 “이제 최순실과 분리됐으니 재단이 정상화되면 당초 취지대로 체육계에 큰 기여를 하겠다”고 주장한다. 지난해 11월에는 5억원 규모의 ‘체육인재 양성 기획안’까지 내놓았다. 설사 문체부가 해산을 명령해도 순순히 물러날 분위기가 아니다. K스포츠는 지난해 언론조정 신청을 위해 변호사 착수금 880만원을 쓴 것으로 나온다. 앞으로 행정재판-대법원으로 이어지는 복잡한 소송이 끝날 때까지 재단 돈을 재판 비용으로 탕진하며 버틸 게 분명하다.

이번 사태는 박근혜 대통령이 대기업들에게 돈을 긁어냈고, 최순실은 그 돈을 개인 재산처럼 굴렸으며, 고영태는 최순실에게 공사를 쳐 등쳐먹은 것이나 다름없다. 그것도 어둠 속에 덫을 놓고 몰래 녹음·녹화하는 지저분한 인물들과 함께…. K스포츠는 이미 사형선고를 받았고, 국민의 뜻은 재단 해산이다. 그럼에도 지금 수백억원의 K스포츠는 청산될지, 계속 운영될지, 그렇다면 누가 운영할 것인지 불분명하다. 혹 고영태 녹음파일의 예언대로 “빵 날아가면 이게 다 우리 거니까” “(고영태 사단끼리) 러닝 찢고 노는” 일이 벌어지는 것은 아닐까 불길하다. 고영태가 의인인지 파렴치범인지도 좀 더 두고 볼 일이다.

이철호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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