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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New York Times] 미국 여성들은 왜 막장남 트럼프를 뽑았나

멜리사 데크먼 미 워싱턴대 교수

멜리사 데크먼
미 워싱턴대 교수

바람둥이 막장남 도널드 트럼프를 미국 여성 유권자들이 대통령으로 밀어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한 페미니스트들이 많다. 트럼프는 “(나를 비판한) 여성 앵커는 몸 어디선가 피를 흘리고 있어(생리 중) 내게 못되게 굴었다”고 했다. “힐러리 클린턴이 남편 빌을 만족시키지 못해 빌이 바람을 피운 것”이라고도 했다. “난 여성의 은밀한 부위를 움켜잡을 수 있다”고까지 떠벌렸다.

이로 인해 지난해 11월 대선에서 미국 여성 유권자들 가운데 클린턴을 찍은 이가 트럼프를 찍은 이보다는 많았다. 그러나 그 격차는 트럼프의 승리를 뒤집을 만큼 크지 못했다. 특히 백인 여성들은 절반이 넘는 53%가 트럼프를 선택했다. 트럼프의 당선에 이렇게 여성 유권자들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건 페미니즘 진영 입장에서는 입맛이 쓴 사실이다. 여성들이 트럼프를 밀어준 이유는 뭘까? 지난 수년간 이어진 미국 우파의 변화 때문이다.

보수주의자들의 자발적 정치조직 ‘티파티(Tea Party)’가 대표적이다. 이 조직에서 많은 여성이 리더로 두각을 나타냈다. 이들은 ‘모성’ 프레임을 들고나와 “정부의 규모를 줄여야 가정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했다. 미 연방정부의 방만한 지출로 미국인들의 가정이 위협받고 있다고 주장해온 ‘엄마 회색곰(2008년 미 대선 공화당 부통령 후보 세라 페일린이 모성을 강조하려고 만든 신조어)’ 조직도 트럼프를 지지했다. 엄마 회색곰 멤버로 트럼프 선거본부 대변인이 된 카트리나 피어슨은 “클린턴 지지 여성들을 경악에 빠뜨리는 트럼프의 솔직한 언행이 나를 끌어당겼다”고 말했다. 피어슨은 “트럼프는 정치적으로 차별적인 단어를 사용하며 자신이 보고 들은 그대로 말한다”며 “나는 그런 방식이 좋다”고 주장했다. 공화당 주류를 발칵 뒤집은 트럼프의 파괴적 스타일이 특히 존경스러웠다는 것이다.
역시 트럼프를 지지했던 세라 페일린도 “미국 정치를 호도해온 위선적 베일을 찢어버린 트럼프의 의지를 높이 샀다”고 주장했다. 트럼프는 공화당 주류 세력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한데 티파티를 지지하는 여성들도 절반이 공화당 주류의 위선을 싫어한다. 덕분에 트럼프는 티파티 여성 상당수를 원군으로 얻었다.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에 대한 환멸이 여성들로 하여금 트럼프를 찍게 만든 가장 큰 이유가 된 것이다.

보수파 여성들이 트럼프를 찍은 두 번째 이유는 안보에 대한 공포다. 자신과 가족이 테러를 당할 가능성을 걱정하는 여성은 민주당 지지층에선 42%에 그쳤지만 공화당 지지층에선 59%에 달했다. 불법 이민 추방을 주장하고 멕시코 국경에 장성을 쌓겠다는 트럼프에게 보수파 여성들이 열광한 이유다. 게다가 트럼프는 폐렴에 걸려 비틀대는 클린턴의 동영상을 반복해 광고로 내보내며 “미국을 지켜주기엔 너무 허약한 여성”이라고 몰아붙였다. 진보 진영은 ‘저열한 성차별적 공격’이라 반발했지만 많은 여성이 트럼프 편에 서는 걸 막을 수 없었다.

물론 트럼프의 여성 비하 발언들은 보수파 여성들이 듣기에도 불편했을 게 틀림없다. 그러나 보수파 여성들은 총기 보유를 제한하고 전 국민 의료보험을 추진하는 클린턴의 정책에 워낙 반감이 크다. 이 때문에 트럼프의 막장극식 언행에도 불구하고 대선 당일 그를 찍은 것이다. 트럼프가 독실한 기독교도이자 낙태 반대론자인 마이크 펜스 인디애나 주지사를 부통령 후보로 내세운 것도 여심 잡기에 효과를 봤다. 바람둥이 트럼프가 가정의 가치를 중시하는 여성들의 입장을 존중하는 신호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그 밖에도 우파 여성들이 트럼프를 택한 이유는 많다. 이들은 낙태를 강력히 반대하는데 트럼프도 입장이 같다. 또 우파 여성들은 정부가 양성 평등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주장에도 반대한다. 일례로 우파 여성들의 싱크탱크인 ‘독립 여성포럼’은 남녀 간 임금격차는 여성이 유연근무제를 선호한 결과여서 정부가 고용주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데 트럼프도 같은 생각이다.

“여성 유권자는 당연히 클린턴을 뽑아야 한다”는 프레임도 문제였다. 보수파 여성들은 “여자란 이유만으로 클린턴을 찍으라니 말이 되느냐”며 반발했다. 그 결과 지난해 11월 대선에서 미국 유권자들은 늘 그래 온 것처럼 성별이 아니라 지지 정당을 기준으로 표를 던졌다. 공화당 지지 남성의 89%, 여성의 88%가 트럼프를 선택한 반면 민주당 지지 남성의 87%, 여성의 91%는 클린턴을 찍은 것이다.

미국 여성들 가운데 강고한 트럼프 지지층이 존재한다는 게 확인된 셈이다. 대통령이 된 트럼프가 자신의 공약들을 실천에 옮기면 그의 경박한 언행을 눈감고 지지해줄 여성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그러나 백악관 참모진들은 트럼프에 대한 여성 유권자의 열광이 손쉽게 식을 가능성도 내다봐야 할 것이다. 여성들이 트럼프의 좌충우돌을 묵인해주는 데에도 한계가 있는 데다 트럼프는 조만간 또 다른 치명적 실수를 저지를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멜리사 데크먼 미 워싱턴대 교수

◆원문은 중앙일보 전재계약 뉴욕타임스 신디케이트 1월 18일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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