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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칼럼] 다른 건 다른 거다

김현빈 경희대 국어국문학과 4학년

김현빈
경희대 국어국문학과 4학년

탑골공원에 갔다. 전공수업 과제인 옛이야기 채록을 위함이었다. 어르신들에게 부탁드리니 말벗이 필요하셨는지 흔쾌히 응해주셨다. 얼른 과제를 해치우고 근처 냉면집에서 낮술 몇 잔 할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우리에겐 전설·신화·민담이 필요했지만 어르신들은 6·25 때 피란 얘기나 산업화 시기 구슬땀을 흘리던 사연들을 열심히 말씀하셨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에…’로 얘기를 시작하는 어르신은 찾을 수 없었다. 질화로의 겻불을 쬐며 나눌 법한 정겨운 옛이야기 대신 전쟁의 처참한 포성과 경부고속도로를 만들기 위해 산을 뚫은 요란한 드릴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적잖이 당황했고 실망했다. 낮술은 진즉에 공쳤다. 땅거미가 질 때까지 우리는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했다. 결국 변변찮은 과제물을 냈고, 학점은 기대에 못 미쳤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그분들은 왜 그 시절의 이야기만을 해주었을까. 까닭은 간단하다. 들려주고 싶으니까 들려준 것이다. 왜 우리의 노고를 알아주지 않느냐고, 이만큼 사는 것이 누구의 덕인지 아느냐고. 정반대로 우리는 듣고 싶은 것을 원했다. 지겹도록 거론되는 세대 갈등의 본질은 아마 여기에 있을 것이다. 서로 말하고 듣고 싶은 것이 엇나가니 대화가 단절된다. 단절된 대화는 섣불리 상대방을 괴물로 오해하게 한다. 그래서 이제 노인은 젊은이를 일컬어 ‘요즘 것’이라는 적개심이 다분한 낱말로 부르고, 젊은이는 노인을 ‘틀딱충(틀니를 딱딱거리는 노인을 비하하는 말)’으로 일컫는 지경에 이르렀다. 단절된 세대 사이에 남은 것은 오해와 비난뿐이다.

빠른 성장이 미덕이 돼버린 사회이니 세대 갈등은 필연이다. 빨리 자란 나무는 나이테의 간격이 넓은 법이다. 그 간극을 억지 노력으로 메울 필요는 없다. 젊은이가 노인복지센터에 가서 트로트를 부른들, 노인이 아이돌 콘서트에 가서 야광봉을 흔든들 무슨 대단한 효험을 기대하겠는가. 당최 이해가 안 된다고 가로젓는 고개만 아플 뿐이다.

다른 건 다른 거다. 살아온 경험과 환경이 다르니 자연히 그럴 수밖에 없다. 차이를 인정해야 극복할 길이 보인다. 그래야 서로를 제멋대로 빨갛고 파랗게 양념해서 씹고 뜯지 않을 수 있다. 필요한 건 인내다. 탑골공원에서 낮술 생각이 간절했던 우리는 6·25의 ‘이응’만 나와도 권태로운 표정을 지으며 서둘러 대화를 마무리했다. 그러고는 다른 어르신을 승냥이처럼 찾아다녔다. 이랬다면 어땠을까. 말씀하시고 싶은 것은 인내로써 경청하고, 듣고 싶은 것을 정중하게 요청했다면 말이다. 성질 급한 ‘요즘 것들’이라 쉽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못할 것은 또 없다.

김현빈 경희대 국어국문학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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