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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 전 벚나무 스키 메고 산길 올라 ‘올림픽 눈길’ 냈죠

경기도 광주 곤지암리조트에서 지난 시절을 회고하는 임경순 선생. [광주=김경록 기자]

경기도 광주 곤지암리조트에서 지난 시절을 회고하는 임경순 선생. [광주=김경록 기자]

1960년 2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스쿼밸리에서 열린 제8회 겨울올림픽. 대한민국은 스키 알파인과 크로스컨트리에 선수 1명씩을 파견했다. 스키 종목 첫 올림픽 출전이었다.

임경순 선생(87·단국대 명예교수)은 당시 30세 나이로 알파인 3종목(활강·회전·대회전)에 나섰다. 한국전쟁이 끝난 뒤라 시설도, 장비도 열악한 상태에서 그는 눈물겹게 분투했다. 리프트도 없는 스키장에서 훈련을 하고, 현지에서 남의 스키를 얻어서 겨우 경기에 나갔다. 영화 ‘쿨러닝’(자메이카 선수들의 겨울올림픽 썰매 도전기)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그는 대한민국 스키 역사에 새 길을 연다는 책임감으로 최선을 다했다.
경기도 광주 곤지암리조트에서 지난 시절을 회고하는 임경순 선생. [광주=김경록 기자]

경기도 광주 곤지암리조트에서 지난 시절을 회고하는 임경순 선생. [광주=김경록 기자]

지난 12일 경기도 광주 곤지암리조트에서 임경순 선생을 만났다. 스키장 입구 로비에는 임 선생의 올림픽 출전 스토리와 사진 등을 전시한 스키 역사관이 있다. ‘곤지암스키학교’의 명예교장인 그는 틈날 때마다 스키 꿈나무들을 지도한다. 임 선생은 “내년 평창 올림픽에서 우리 선수들이 혼신의 노력을 다해 0.01초라도 기록을 단축해주길 바랍니다. 기술과 경험도 필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용기”라고 말했다.
 
남의 스키로 올림픽에 나가셨다면서요.
“경유지인 일본에서 스키와 장비를 사려고 했죠. 근데 당시 일본과는 수교 전이라 국제올림픽위원회(IOC) AD 카드로도 입국이 안 되는 거라. 아무 것도 못 사고 쫓겨났죠. 스쿼밸리 현지에서 딱한 사정을 들은 미국 대표팀 총감독이 자기가 쓰던 걸 빌려줬어요. 리틀 박사님이라고, 의사분이셨죠.”
1950년대 대관령에서 스키를 타려면 눈 없는 산길을 올라가야 했다. [광주=김경록 기자]

1950년대 대관령에서 스키를 타려면 눈 없는 산길을 올라가야 했다. [광주=김경록 기자]

국내서 타던 스키로는 출전이 어려웠나요.
“당시 우리는 일본 사람들이 쓰던 벚나무 스키를 탔어요. 그건 에지(플레이트에 금속을 덧대 브레이크 역할을 하는 것)가 없어요. 나무를 자른 모서리 부분이 에지 역할을 하는데 그것도 오래 타다 보니 둥글둥글해졌죠. 방향을 바꾸려고 속도를 줄여도 1-2m씩 쭉쭉 미끄러져요.”
빌린 스키는 어땠나요.
“에지가 칼날처럼 날카로워서 제동을 걸면 팍 서 버리고 반동 때문에 몸이 튕겨나갔어요. 점프 연습을 하다 다쳐서 의무실에 누워 있는데 신업재 당시 대한스키협회장이 오셔서 ‘누워 있으면 어떡하나. 스키를 타야지. 그래야 다음 올림픽에 우리 선수들이 올 것 아니냐’며 호통을 치셨어요. 정신이 번쩍 들어 다시 스키장으로 나갔죠.”
당시 스키화. [광주=김경록 기자]

당시 스키화. [광주=김경록 기자]

활강은 70명 중 61위, 회전은 40위를 했네요.
“새 스키로 사흘 훈련하고 경기에 나섰어요. 활강 땐 에지 조절에 애를 먹었고, 몇 번이나 넘어질 뻔 했죠. 결승점 200m를 남기고 넘어졌는데 다행히 코스를 이탈하지 않았어요. 회전은 실격자가 많아 순위가 올라갔고, 대회전은 제가 실격 당했어요.”(가파른 경사면을 내려오는 활강은 최고 시속 150㎞를 넘는다. 회전과 대회전은 속도가 빠르지는 않지만 급회전이 많아 실격률이 높다. 지난 16일 용평에서 열린 극동컵에서도 회전·대회전의 완주율은 18.5%에 그쳤다.)
미국 스포츠 잡지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가 ‘올림픽 영웅’이라고 극찬을 했죠.
“‘Courage and Hope(용기와 희망)’라는 제목의 기사였습니다. ‘눈도 잘 오지 않는 곳에서, 실전 기술이나 지도자도 없이, 엄청난 높이의 올림픽 코스에 도전한 임경순이 진정한 올림피언이다’는 내용이었죠.”
점프훈련 모습. [광주=김경록 기자]

점프훈련 모습. [광주=김경록 기자]

황해도 사리원에서 태어난 임 선생은 7세 때 부모를 따라 만주로 이주했다. 그 곳에서 일본인들이 타는 스키를 접했고, 해방 이후 서울에 정착해 독학으로 스키를 익혔다.
 
당시는 스키장 시설이 열악했을 텐데요.
“강원도에는 겨울에 북서 계절풍이 불어 눈이 대관령 동쪽에만 쌓였어요. 산길을 걸어 스키장에 도착한 뒤 일렬횡대로 슬로프를 걸어 내려오면서 눈을 다졌어요. 마가린과 김치를 넣은 밥으로 점심을 때운 뒤 몇 번 슬로프를 타는 게 훈련의 전부였죠. 리프트가 없으니 올라가는데 힘이 다 빠져 속도를 내기도 힘들었어요.”
스키화나 폴(스틱)은 제대로 갖췄나요.
“경찰들이 신던 부츠 같은 걸 구해다가 밑창을 손질해 스키에 끼워 사용했죠. 폴은 대나무를 깎고 끝에는 쇠를 덧댔어요.”
겨울올림픽 AD 카드. [광주=김경록 기자]

겨울올림픽 AD 카드. [광주=김경록 기자]

임 선생은 지금도 용평리조트 최상급 코스(레인보우)를 안방처럼 누빈다고 한다. 평창 올림픽에 출전하는 후배들에게 그는 “옛날과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시설·장비·지원이 좋아졌어요.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한다면 순위에 연연할 이유는 없겠죠. 지혜롭게 용기있게 도전해 보세요”라고 격려의 메시지를 보냈다.
 
임경순 선생은…
● 1930년 황해도 사리원 출생
● 1960년 스쿼밸리 겨울올림픽 출전(활강 61위, 회전 40위)
● 1964년 인스부르크 겨울올림픽 스키 감독
● 단국대 명예교수. 곤지암스키학교 명예교장

글=정영재 스포츠선임기자 jerry@joongang.co.kr
사진=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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