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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호의 사람 풍경] 서울대 외교학과 출신 광대…“반기문은 정통파, 난 가장 샛길로”

정약용의 일생 판소리로 만든 소리꾼 임진택
임진택씨는 사회를 변화시키는 예술을 믿는다. “다산도 조선의 현실을 아파하는 시를 남겼다. 마당극과 창작 판소리 개척자로 기억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의 뒤로 김봉준 화백이 만든 병풍이 보인다. [사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임진택씨는 사회를 변화시키는 예술을 믿는다. “다산도 조선의 현실을 아파하는 시를 남겼다. 마당극과 창작 판소리 개척자로 기억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의 뒤로 김봉준 화백이 만든 병풍이 보인다. [사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얼씨구” “좋다” “잘한다” “아먼” “그렇지”. 2016년을 마감하는 구랍(舊臘) 29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경기문화재단 3층 다산홀. 송재영·이재영 명창이 부르는 ‘판소리 정약용’에 관객들이 흥겨운 추임새를 붙였다.

예술감독을 맡은 소리꾼 임진택(67)씨가 너스레를 떨었다. “판소리는 주로 호남에서 번창했는데 추임새 하나만큼은 경상도가 다 이깁니다. 뭔지 아세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하하, ‘쥑인다’입니다.” 폭소가 터졌다. “판소리는 현장입니다. 호흡이 생명이죠. 창을 하는 광대와 추임새를 넣는 관객이 주고받는 판입니다.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예술이지요.”

이날 무대는 실학자 다산(茶山) 정약용(1762∼1836)의 일생을 우리네 장단에 옮긴 창작 판소리를 처음 공개하는 시연(試演) 자리였다. 다음달 23일 경기도 남양주시 실학박물관 초연을 시작으로 전국 순회공연에 들어간다. 다산의 개혁사상이 집약된 『경세유표』 『목민심서』가 올해와 내년 각각 출간 200주년을 맞는 것을 기리는 의미가 있다. 국가 전반의 새판짜기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는 요즘 한국 사회에 던지는 시사성도 크다. 전통 판소리 보존을 넘어 창작 판소리 12바탕 완성을 ‘필생의 목표’로 세운 임씨의 중간결산쯤 된다. 지난해 두 차례 위암 수술로 이날 소리를 아낀 그는 “몸을 추스르는 올 중반부터 무대에 직접 설 예정”이라고 했다. 서울 정릉동에 있는 임씨의 집을 찾았다.

‘백범 김구’ 등 판소리 여섯 작품 창작
1시간짜리 만드는 데 10개월 걸려
적어도 500번은 불러야 무르익어
 
아직 작품이 미완성이다.
“1시간짜리 판소리를 만들려면 보통 10개월이 걸린다. 사설(辭說·말이나 이야기)을 쓰고, 작창(作唱·소리 짜기)을 붙이고, 또 이를 수련·암기해야 한다. 판소리 정약용은 두 시간 분량이다. 또 작품을 외운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 적어도 500번은 불러야 무르익는다. 올 한 해 갈고 닦을 것이다. 그 다음에도 계속 매만져야 한다. 전통 판소리도 지난 수백 년 숱한 광대들을 거치며 오늘날까지 왔다.”
왜 지금 다산을 주목했나.
“우리 역사에 위대한 인물이 많지만 다산만큼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열망이 큰 사람도 드물다. 10여 년 전부터 다산을 판소리로 만들려고 했다. 그는 생전에 실현하지 못한 이상이 후대엔 반드시 이루어지기를 바랐다. 다산이 살았던 때나 현재나 큰 차이가 없다고 본다. 최근의 국정 농단 사태와 민생을 등진 조선시대의 부패상은 닮은꼴이다.”
너무 넓게 보는 건 아닌가.
“이번에 조선시대 당쟁 타령을 넣어보았다. 잦은모리(자진머리) 빠른 장단에 중도(中道)를 잃어버린, 허송세월에 빠진 조선의 당쟁사를 돌아보았다. 여야 없이 계파 싸움에 몰두하는 작금의 정치판과 뭐가 다른가. 다산이 즐겨 쓴 호는 사암(俟菴), 즉 ‘기다린다’는 뜻이다. 백성이 주인이 되는 세상을 기다렸다. 민초의 희로애락을 담은 판소리와 통한다.”

‘백성이 주인’ 다산의 개혁 열망 담아
조선시대 당쟁과 부패한 사회상
작금의 계파싸움 정치판과 닮은꼴
시인 김지하가 1983년 임진택씨에게 선물한 글과 그림. 부채를 들고 광야를 달리는 소리꾼을 묘사했다. 김 시인은 “광대라면 지구를 움직이는 소리를 내야 한다”고 썼다.

시인 김지하가 1983년 임진택씨에게 선물한 글과 그림. 부채를 들고 광야를 달리는 소리꾼을 묘사했다. 김 시인은 “광대라면 지구를 움직이는 소리를 내야 한다”고 썼다.

다산과 언제 처음 만났나.
“2003년 마당극 ‘다산 선생님과의 하루’를 만든 적이 있다. 남양주 다산 생가 전체가 무대였다. 해설사(배우)가 관객과 함께 유적 곳곳을 돌아다니는 형식이다. 국내 최초로 시도한 이동답사극이다. 판소리로 만든 데는 다산연구소 박석무 이사장의 권유가 컸다. 이번 시연을 보더니 ‘글보다 노래로 들으니 눈물이 더 난다. 200여 년 전의 아픔이 오늘의 아픔으로 전해진다’고 했다.”

1970년대 마당극의 창시자로 유명한 임씨는 자칭 ‘학삐리 광대’다. 서울대 외교학과 69학번이다. 74년 서울 명동 ‘까페 테아뜨르’에서 정권진(1927~86) 명창의 ‘수궁가’를 우연히 듣고 판소리에 푹 빠졌다. 단박에 “세계 최고의 모노 드라마”라고 감탄했다. 피가 뜨거웠던 시절, 김지하의 ‘오적’을 판소리로 만들겠다며 정 명창을 찾아갔다. 그리고 5년간 스승으로부터 ‘심청가’를 배웠다. 압제의 시대에 저항하는 문화운동을 펼치며 ‘똥바다’(1985), ‘오월광주’(1990), ‘오적·소리내력’(1994), ‘백범 김구’(2010), ‘남한산성’(2011) 창작 판소리 다섯 바탕을 빚어 왔다. ‘판소리 정약용’은 그 여섯 번째 작품이다.
 
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구속됐는데.
“지명수배된 선배를 숨겨줬다는 이유에서였다. 교도소에서 김지하의 담시 ‘비어(蜚語)’ 중 한 편인 ‘소리내력’에 즉흥 창을 붙인 적이 있다. 대학 시절 전공에는 흥미가 없었다. 그래서 택한 게 연극이다. 지난해 서울대 개교 70주년 기념작으로 셰익스피어 원작 ‘법대로 합시다(Measure for measure)’를 마당극으로 연출하기도 했다. 서울대 외교학과 출신 중 대표적 정통파가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라면 나는 가장 샛길로 들어선 경우다.(웃음)”
시인 김지하와 뗄 수 없는 관계다.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선배다. 수감 시절, 검찰 조사를 받으러 가는 날 김 시인과 단둘이 호송차를 탄 적이 있다. 그때 김 시인이 간곡하게 말했다. “진택아, 나는 죽는다. 사형선고를 받았으니까. 너한테 꼭 하고 싶은 부탁이 있다. 문화운동에 나서 달라’고. 그 말을 유언처럼 받아들였다. 요즘에는 이런저런 사정으로 연락이 끊긴 상태다. 안타깝다.”

마당극 창시자, 두 차례 위암 수술
판소리는 속에 맺힌 것 확 풀어줘
전봉준·안중근 등 12바탕 만들 것
 
90년대 후반부터 축제 기획자로 뛰었다.
“한동안 판소리를 놓고 있었다. 알아주는 이가 없었다. 97년 과천 세계마당극 큰잔치를 기획하면서 페스티벌에 눈을 떴다. 많은 작품이 한데 어울리는 판(축제)이 이 시대의 마당극이라고 생각했다. 남양주 야외공연축제, 전주세계소리축제, 가야세계문학축전 등을 이끌었다. 그러다 ‘백범 김구’를 계기로 판소리로 되돌아왔다.”
특별한 계기라도 있었나.
“나이 예순이 가까워지니 자괴감이 들었다. 다방면에서 나름 열심히 했지만 나만의 작품이 없었다. 이른바 광대로서 남은 게 적었다. 예술적 완성도도 부족한 것 같았다. 손진책·이윤택 등 한우물을 파온 동료 연출가들이 부럽다는 생각이 처음 들었다. 늦었지만 다시 시작이다. 우리 역사의 주요 인물을 선정해 새로운 판소리 12바탕을 만들자고 결심했다.”
만만찮은 일이다. 호응이 있을까.
“여건이 되면 1년에 1편씩 만들고 싶다. 차근차근 준비하겠다. 전봉준, 안중근, 세종대왕(한글), 전태일 등을 판소리로 엮을 작정이다. 최근 3시간짜리 ‘백범 김구’ 녹음 작업도 마쳤다. 곧 3장짜리 CD로 나온다. 지난해 위 일부 절제수술로 소리가 나오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문제가 없다. 판소리의 미학은 정화(카타르시스)다. 속에 맺힌 것을 확 풀어준다. 요즘에는 치유(힐링) 효과를 주목하고 있다.”
예술의 존재 이유가 그렇다.
“74년 울릉도간첩단 사건이 있었다. 무고한 시민을 중앙정보부가 간첩으로 몰았다. 2015년 말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지난해 봄까지 피해자들에게 1년 반 정도 소리를 가르쳤다. 30~40년간 소리를 한번 질러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다. 심지어 가족들 앞에서 입을 다물었던 그들이 몰라보게 달라졌다. 이제는 시끄러울 정도다. ‘심청가’ 마지막 ‘만좌맹인 눈을 뜬다’ 대목이 떠올랐다. 이런 게 판소리다. 시대의 고통을 품으며 늘 새롭게 태어난다.”
[S BOX] 창작 판소리의 선구자 박동실·박동진 명창
“한국 판소리계의 대들보였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월북한 탓에 제자들마저 스승 이름을 밝히지 못하기도 했지요. 무형문화재 지정 등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죠. 명맥이 끊길 뻔한 그의 작품을 그나마 제자들이 CD로 녹음해놓았으니 다행입니다.”
박동실(1897~1968·사진 왼쪽) 명창에 대한 임진택씨의 평가다. 박동실 명창은 한국 창작판소리의 선구자로 꼽힌다. 1945년 광복 이후 ‘안중근가’ ‘유관순가’ ‘이준 열사가’ 등 이른바 ‘열사가’류를 활발히 만들었다. 각기 20~30분 남짓 짧은 작품임에도 우리네 전통 가락에 시대의 감격을 얹었다.

창작 판소리는 임진택씨 이전에도 시도됐다. 임씨는 박동실 명창과 박동진(1916~2003·사진 오른쪽) 명창의 뒤를 잇고 있다. 창작 판소리 3대 유파로 불린다. ‘제비 몰러 나간다’ ‘우리 것은 소중한 것이여’로 친숙한 박동진 명창은 50대 후반에 ‘성서 판소리’ ‘성웅 이순신’ 등을 만들었다. 그간 사라졌던 옛 판소리 ‘변강쇠 타령’ ‘배비장타령’ ‘옹고집전’ ‘장끼전’ 등을 복원하기도 했다.

“박동진 명창은 정말 대단합니다. 그분이 완창한 판소리는 아마 70~80시간 분량이 될 겁니다. 전통 판소리 다섯 바탕을 다 불러도 20시간이 되지 않거든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10시간이나 될까요. 저도 박 명창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무대에 서지 않을 때도 늘 소리를 외셨던 모습이 기억납니다.”
글= 박정호 문화전문기자·논설위원 jhlogos@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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