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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퇴장 오바마, "예스 위 캔, 예스 위 디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10일(현지시간) 들어서자 행사장은 박수와 환호로 가득찼다. 8년 전 ‘담대한 희망’을 내걸어 첫 흑인 대통령에 당선되는 역사를 만들었던 오바마 대통령. 그가 마지막으로 행하는 고별 연설이 시작되는 시카고의 컨벤션센터 매코믹 플레이스에선 “4년 더! 4년 더!”라는 연호가 터져 나왔다. 환호 때문에 연설을 진행할 수 없던 오바마 대통령은 “아무도 제 말은 따르지 않으니 레임덕이네요”라며 농담으로 장내를 진정시켰다.

열흘 후면 백악관을 떠나는 오바마 대통령의 마지막 메시지는 미국의 화합과 희망이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우리 중 누가 다른 이들보다 더 미국인이라고 여기면 단합은 약화된다”고 말했다. 흑인 대통령은 인종간 상호 이해를 꺼냈다.

그는 “이 나라의 역사 만큼이나 오래된 민주주의의 위협이 있다”며 “인종 문제는 이 사회에 갈등을 야기하는 힘으로 남아 있다”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호소한 해법은 “이 문제를 개선하려면 차별금지법만으로는 안 되며 마음이 바뀌어야 한다”였다. 소설『앵무새 죽이기』의 주인공 애티커스 핀치의 대사를 인용해 “사람을 이해하려면 피부 속으로 들어가 그 속에서 걸어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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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변함없이 자신을 지지했던 흑인들에게 삶이 어려워진 백인들과의 사회적 연대를 촉구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흑인과 소수집단에게 (상호 이해는) 이 나라의 많은 이들이 직면한 도전을 해결하기 위해 정의를 추구하는 것”이라며 “바깥에서 보기엔 특혜를 누리고 있는 듯 해도 경제ㆍ문화ㆍ기술적 변화로 세상에 뒤쳐진 중년층 백인들도 있다”고 강조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백인들에겐 “노예제의 유산과 차별이 1960년대 갑자기 사라진 게 아님을 이해해야 한다”며 어렵게 얻어진 흑인 인권의 가치를 되새겼다.

오바마의 화합 메시지는 후임자인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에 대한 경고이기도 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오바마는 트럼프에게 에둘러 말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원칙을 지켰다. 오바마가 대통령직 승계를 거론하던 순간 장내엔 갑자기 청중들의 야유가 시작됐다. 트럼프 당선인에 대한 거부 반응이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곧바로 “안 됩니다. 안 됩니다(No, No, No, No)”라며 이를 저지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나는 부시 전 대통령이 가장 원활하게 정권을 인계해 준 것처럼 트럼프 당선인에게도 이를 보장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8년 전 오바마 대통령이 내건 “우리는 할 수 있다”는 정치에 무관심했던 젊은 층과 소수 인종들, 백인 지식인 유권자들의 가슴에 불을 당겼다. 지금도 워싱턴 시내에선 과거 대선 때 오바마 지지자들이 사용했던 ‘오바마 스티커’를 붙인 차들이 눈에 띈다. 오바마 대통령의 마지막 메시지엔 다시 희망이 담겼다. “때론 우리가 두 걸음을 전진하면 한 걸음 후퇴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미국의 긴 역사는 항상 전진이었다”고 말했다.

퀴니팩대가 지난 5∼9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오바마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은 55%였다. 트럼프 당선인에 대한 호감도는 37%에 불과했다. 나가는 대통령이 새롭게 취임하는 대통령보다 더 인기가 높은 기현상이 막판까지 이어졌다.

오바마 대통령은 50분간의 연설을 지난 8년간 자신을 대통령직에 있게 해준 지지자들과 국민에 대한 헌사로 마무리했다. 그는 “최고의 지지자들이었던 여러분께 나는 영원히 감사할 것”이라며 “여러분들이 세상을 바꿨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국민 여러분께 봉사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다”며 “이제 남은 생애를 시민으로 어려분 곁에 있겠다”고 밝혔다. 함성이 쏟아졌다.

오바마 대통령은 아내 미셸에 대한 감사도 잊지 않았다. “지난 25년간 당신은 내 아내이자 두 아이의 어머니이자 최고의 친구였다”고 했다. 이때 오바마 대통령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훔치는 장면도 나왔다. 두 딸 말리아와 사샤를 놓고도 “숙녀가 됐다”며 흐뭇해 했다.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작은 딸 사샤는 다음날 시험 때문에 연설 행사에 오지 못했다. 백악관에서 속내를 터놓고 지냈던 조 바이든 부통령에겐 “형제”라고 고마워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마지막 연설 문구는 8년 전의 뜨거웠던 바로 그 구호였다.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Yes, We can).” 열광한 청중들에게 그는 다시 말했다. “우리는 했습니다(Yes, We did).” 오바마 대통령의 아름다운 퇴장은 이렇게 마무리됐다.

워싱턴=채병건 특파원 mfem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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