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피겨 불모지에서 김연아·차준환을 만든 오서 코치

척박한 한국 피겨스케이팅에서 두 별이 떠올랐다. '피겨여왕' 김연아(27)와 그의 뒤를 쫓아 '피겨황제'를 꿈꾸는 차준환(16·휘문중). 두 별을 쏘아올린 건 1980년대 전설적인 스케이트 선수, 브라이언 오서(56·캐나다)였다.

지난 8일 제71회 전국남녀 피겨스케이팅 종합선수권대회 남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이 열린 강릉 아이스아레나. 빙판 밖에 있는 오서 코치는 초조하게 두 손을 비볐다. 차분한 차준환과는 달리 오서의 얼굴은 경직돼 있었다. 차준환이 첫 트리플 점프을 완벽하게 성공하고 나서야 얼굴에 미소가 감돌았다. 차준환이 경쾌하게 스텝을 밟을 때는 오서 코치도 같이 어깨를 흔들었다. 점프 착지에서 넘어졌을 때는 격려의 박수를 보냈다. 그리고 은반 위에서 홀로 4분10초를 연기하고 나온 차준환을 따뜻하게 안아줬다.
차준환은 엉덩방아를 찧었지만 156.24점으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고, 쇼트프로그램 점수(81.83점)를 합쳐 총점 238.07점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차준환은 "실수를 저질러서 100점 만점에 60점을 주고 싶다"며 "그래도 4회점 점프인 쿼드러플 살코를 잘 수행해서 만족한다. 다음 대회부터는 프리스케이팅에서 4회전 점프를 두 번 넣으려고 한다. 완성도를 높여 풍성한 연기를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차준환은 오는 3월 대만에서 열리는 세계 주니어 피겨선수권 대회에 출전한다.

오서 코치는 경기 뒤 차준환을 둘러싼 스무 명 남짓한 취재진을 보고 흐뭇해 했다. 그는 "준은 한국의 새 스케이팅 스타"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오서는 차준환을 '준'이라고 부른다. 차준환이 가는 길이 곧 한국 남자 피겨의 역사다. 이번 쇼트프로그램에서 한국 남자 피겨 사상 최초로 80점대 점수를 기록했다. 차준환은 지난해 10월 전국남녀 피겨스케이팅 회장배 랭킹대회(242.44점)에서 국내 남자 최고 기록을 썼다. 지난달 10일 프랑스 마르세유에서 열린 2016~2017 국제빙상경기연연맹(ISU) 피겨 그랑프리 파이널 주니어 남자 싱글에서 한국 남자 선수로는 처음으로 동메달을 땄다.
차준환은 2015년 3월부터 김연아를 가르쳤던 오서 코치의 집중 조련을 받으면서 실력이 수직 상승했다. 약점으로 꼽혔던 트리플 악셀 점프를 1년 만에 습득했고, 남자 싱글 선수들의 필살기인 4회전 점프 중 하나인 쿼드러플 살코를 완성했다. 오서는 첫 제자였던 김연아를 2010년 밴쿠버 겨울올림픽 여자 싱글 금메달리스트로 키워냈다. 이어 하뉴 유즈루(23·일본)를 2014년 소치 겨울올림픽 남자 싱글 금메달리스트로 만들었다. 하뉴의 경쟁자로 떠오른 2015년과 2016년 세계선수권대회 우승자인 하비에르 페르난데스(26·스페인)도 가르치고 있다. 그런 오서가 차준환을 선택했다. "2년 전에 유튜브 동영상으로 준의 경기를 처음 봤다. 그는 무엇이라 설명할 수 없는 특별함이 있었다. 어떤 스타일도 자신만의 것으로 흡수할 수 있는 재능이 있었다. 거기다 엄청난 스피드는 김연아를 떠올리게 했다."
오서 코치는 1984년 사라예보 올림픽과 1988년 캘거리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따며 피겨 스타로 발돋움했다. 2009년 3월에는 세계 스케이팅 명예의 전당에 헌정되기도 했다. 김연아를 가르치면서 오서는 '피겨계의 거스 히딩크'로 불리며 한국인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지난 2010년 서울 명예시민으로 위촉되기도 했다. 그런데 그해 8월 김연아와 결별할 때, 감정싸움으로 번지면서 오서 코치는 한국 팬들로부터 비난을 받았다. 그렇게 한국과의 인연은 뚝 잘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서는 "한국은 아주 특별한 나라다. 난 매운 김치도 잘 먹을 정도로 반한국인이다. 이번에 둘러본 서울 봉은사는 아름다웠고, 강릉 바다는 시원했다"며 "2006년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을 때, 김연아를 첫 제자로 맡은 것은 큰 행운이었다. 준도 마찬가지다. 그를 보고 바로 가르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차준환은 예닐곱명을 구성된 '오서의 드림팀'을 만나고 깜짝 놀랐다. 그는 "점프·스핀·스텝·안무 등 각 기술 코치가 따로 있다. 부족한 부분은 해당 코치님과 훈련하고 오서 코치님은 전체적인 프로그램을 봐준다"고 했다. 오서는 "우리 팀 코치들은 김연아를 지도했을 때와 거의 같다. 수 십번의 미팅을 통해 선수의 성향을 파악해서 훈련 계획을 짠다"며 "지도 철학은 하나다. '경청'. 세계 각국에서 온 선수들과의 의사소통에서 오해가 있을 수 있다. 또 슬럼프에 빠진 선수들은 잘 다독여 줘야 한다. 그럴 때마다 일일이 들어주고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오서 코치가 차준환에게 중점을 두고 가르치는 부분은 표현력이다. 오서는 "1980년대 선수생활을 할 때 나는 기술만 있는 선수로 알려졌다. 그러나 요즘은 예술성이 중요하다. 부끄러움을 타는 준은 표정없이 기계적으로 점프를 뛰었는데 이제 아니다"라고 했다. 차준환은 스스로 어떤 표정을 짓는지 수시로 거울을 본다. 배경음악의 외국어 가사도 직접 번역해서 따라 불어본다. 경기 전에는 헤드폰을 끼고 배경음악을 수 십 번 듣는다. 차준환은 "하도 연기 음악만 듣다보니 아이돌 노래는 전혀 모른다. 표현력은 내가 집중하면 충분히 잘 살릴 수 있다"고 했다.

차준환은 내년 2월에 열리는 평창 겨울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다. 차준환은 "다음 시즌에 시니어에 데뷔해 올림픽 출전권을 따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오서는 "자국에서 열리는 올림픽에서 뛴다면 한국 팬들의 기대가 엄청 클 것이다. 차준환이 빠른 성과를 내기 위해 급하게 점프 기술을 올린다면 오히려 부상의 위험이 있다"며 "차근차근 실력을 쌓게 하겠다"고 강조했다.
한국은 피겨 불모지다. 전체 선수는 700여명. 그 중 남자 선수는 약 50명이다. 이런 척박한 현실에서 오서 코치는 차준환의 앞날을 긍정적으로 내다봤다. "하나의 다이아몬드를 만들기 위해서는 시간을 가지고 인내해야 한다. 한국은 김연아라는 성공작을 내놨다. 특별한 다이아몬드를 만들었기 때문에 다시 한 번 만들 수 있다."

강릉=박소영 기자 psy0914@joongang.co.kr
AD

중앙일보 핫 클릭

PHOTO & VIDEO

shpping&life

뉴스레터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