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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써티(Thirty)테크'] ⑩ 청약 떨어지고 동호수 추첨하러 간 무주택 기자의 ‘수상한’ 청약 투자기

⑩ 청약 떨어지고 동호수 추첨하러 간 무주택 기자의
‘수상한’ 청약 투자기
 


한밤에 걸려온 구남친(혹은 구여친)의 전화, 생각만 해도 서늘하신가요?
 

아름다운 단어도 섬찟 하게 만들어 준다는 마력을 가진 글자 ‘구(舊)’.
저는 그 마력의 글자를 붙여야 하는 경제기자입니다.
네, ‘구’ 경제기자 되겠습니다.
경제부 떠난 지 1년이지만, 열혈 경제인입니다.
끓어오르는 창업 욕구를 투자로 승화시켰달까요.
(저는 사업하기엔 너무 작은 간과 유리 멘탈을 가졌...;;)
 

그런 제가 최근 관심을 가지고 있는 투자 분야는 바로 부/동/산.
집주인 복을 타고 나지 못해 공들여 수리한 첫 번째 신혼집에서 2년 만에 쫓겨난 뒤
‘내 집’에 대한 강한 애착을 가지게 된 저희 부부는
한 명(남편)을 쿠웨이트에 보내가며 가계소득을 끌어올린 끝에 부동산 시장에 발을 내디뎠습니다.

어렵게 부동산 시장에 진입하기로 결정했을 때는 집값 상승세가 완연했습니다.
아래 표는 KB국민은행이 발표하는 아파트매매가격 지수인데요,
2013년만해도 기준값인 100을 밑돌던 서울의 아파트값은 꾸준히 올라 올해 104.1까지 왔습니다.
올해만 4%가 올랐죠.


▶KB 아파트매매가격 지수(2015년12월=100)

사실 정부가 집값 오르라고 부채질하긴 했습니다.
내수 경기를 살리겠다며 부동산 규제를 대폭 완화했거든요.
(부동산 규제는 지난해 11월 다시 강화되긴 했습니다.)
여기에 저금리로 투자할 데를 못 찾던 자금이 부동산 시장에 쏠리면서 집값은 쭉쭉 올랐습니다.
 

저금리로 월세 받으려는 집주인이 늘어나 전셋값이 높아진 탓도 있고요.
집 없는 자에게 집값 오르는 건 좋은 뉴스가 아닌데요,
그나마 위안은 부동산 시장이 호황인 덕에 아파트 분양 건수가 늘었다는 거였습니다.
저희 부부도 올 한 해 끊임없이 아파트 청약에 도전했지요.

1년의 기다림 끝에 지난 12월 17일,
마침내 아파트 동호수 추첨 현장에 다녀왔습니다!!
그것도 평균 청약 경쟁률 32:1을 기록한 신촌 그랑자이 아파트..!!

더 놀라운 건,
제가 청약에서 떨어졌다는 사실!!

당첨도 안됐는데 동호수 추첨에 다녀왔다니 뭔 소린가 싶으시죠?
저도...그랬습니다;;
청약 결과가 발표된 지 일주일이 지난 12월 16일 금요일 오후 6시05분,
한 통의 문자가 당도합니다.
 

아니, 청약 떨어진 사람한테 웬 동호수 추첨 안내?
문자가 온 번호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안 받더군요.
다시 문자를 읽어보니 친절히 안내되어 있었네요!
“18시 이후에는 전화 안 받거든!”
 
밑도 끝도 없이 동호수 추첨이라니 이것도 황당한데,
다음날 추첨한다면서 오후 6시 5분에 문자 해서
계약금 3000만원에, 인감증명을 준비해오라니….
은행이고 동사무소고 다 문 닫은 시간에 말이죠.
 

가장 먼저 떠오른 건 반 백년 서울살이 부동산으로 재미도 보고 손해도 봐 본 양가 어머니들.
두 분 다 “문자 잘못 온 거 아녀?” 이런 반응입니다.
“자다 봉창 두드리냐”던 남편이 카톡을 보내왔습니다.
 
“문자, 우리만 받은 게 아닌가봐.”
 
남편이 보낸 링크를 타고 온라인 커뮤니티에 접속했더니,
저랑 같은 문자 받은 사람들이 그새 글을 올렸습니다.
유경험자들이 달아놓은 댓글을 보니
분양은 됐는데 계약은 이뤄지지 않은 일명 미계약 세대를 놓고 추첨을 하는 듯했습니다.
기사를 쓰며 GS건설에 문의했을 때도 같은 답을 내놓습니다.
 

갈 것인가, 말 것인가.
계약금은 급한 대로 양가 부모님께 융통하더라도
인터넷 발급도 안 되는 인감증명은 어디서 구한단 말인가.
게다가 미계약 물량이면 단지 내 위치가 안 좋은 동이거나 저층이거나 하는 식으로 단점이 큰 거 아닐까.
다음날 아침까지 고민하다 일단 가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웬걸...
오전 10시 20분쯤 도착해보니 주차장까지 줄이 늘어서 있더라구요. ㅎㄷㄷ
 

문자로 공지했던 대로 10시 30분이 넘자 줄을 못서게 했어요.
1~2분쯤 늦게 오신 분이 직원에게 “좀 봐달라”며 사정을 하는 장면이 펼쳐지기도 했습니다.
아마 누구라도 그랬을 거에요.
긴가 민가 하는 마음으로 나왔는데 수백 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고 생각해보세요.
“아, 내가 잘못 생각했구나” 하는 마음이 들지 않겠어요?
 

그분은 직원에게 통사정을 하고도 결국 줄을 서지 못하셨는데요,
그 모습을 보니 이상한 안도감 같은 게 들더군요.
40분쯤 뒤 직원 분이 외쳤습니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사무실에 다 못 들어갑니다. 지금 여기(야외 주차장) 계신 분은 여기서 추첨합니다.
사무실 안에서 추첨을 하면 번호를 저희가 무전기로 듣고 불러드릴 거에요.”
잠시 뒤 추첨권도 주더군요.
 

이날 추첨한 집은 전용면적 84㎡(공급면적 112.95㎡)인 세대였는데요,
층마다 가격이 다르긴 하지만 집값은 대략 8억원입니다.(※평당 분양가 2352만원)
8억원짜리 집을 살 수도 있는 권리증이 A4용지에 프린트해 칼로 대충 자른 종이 쪼가리라니...
이 거 한 장 받자고 한겨울에 야외 주차장에서 바들바들 떨며 1시간을 넘게 기다린 거죠.
그런데 저 같은 사람이 700명은 족히 넘어보였어요.
제가 641번이고 제 뒤로도 한 100명은 더 줄을 섰거든요.
 
인터넷으로 차도 사고, 집도 사는 시대에 종이 쪼가리 하나 주고 야외 주차장(한겨울에!!)에서 추첨을 한다는 것도 황당한데,
더 황당한 건 도무지 이 상황을 정확하게 설명해주는 사람이 없었다는 겁니다.
 

대체 추첨의 정체가 뭔지, 정확하게 몇 세대를 추첨하는지,
추첨 대상이 AㆍB형 중 어떤 건지(84㎡ 세대는 2개 구조로 집이 설계되었거든요), 몇 동 몇 층인지, 요구한 서류가 없으면 어떻게 되는 건지 등등...
궁금한 건 많은데 직원들은 “저는 잘 모릅니다”라고 답할 뿐이었어요.
아니 1000원짜리 물건도 상품 설명 꼼꼼히 뜯어보고 구매후기까지 읽어보고 사는 게 대한민국 아닌가요?
 
부동산 시장은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 사이에 정보비대칭이 발생하는 시장입니다.
팔려는 사람은 집에 단점이 있더라도 숨길 겁니다. 비싸게 팔려고요. 그러니 사는 사람은 눈에 보이지 않는 문제는 알기 힘들죠.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이건 너무 심한 거 아닌가요?
8억원짜리 물건을 팔면서 20여 세대를 선착순 추첨한다는 것밖에 안 알려주다니요!
 
그런데도 웃긴 건 뭔지 아세요?

사람들이 자신의 번호가 불리면 로또라도 맞은 것처럼 좋아했다는 거에요.
 

한 번 생각해보세요.
청약에 도전했다 한 번 실패한 이들 수백 명이 모여 오들오들 떨면서 추첨을 기다린다고 말이에요.
기적 같이 패자부활전에서 살아남아 어려운 경기를 치른 끝에 힘겹게 우승한 건데, 소리 안 지르게 생겼나요?
게다가 옆에서 당첨되면 또 얼마나 부러운데요.
청약은 인터넷으로 하니 떨어져도 그런 마음은 안 들잖아요.
이런 걸 노리고 구시대적인 방법으로 미계약 물량을 처리하는구나 싶더라구요.

 

그래도 휴일 그 아침에 거기까지 갔는데 싶어 2시간을 넘게 버텼습니다.
상황을 종료시켜 준 건 다른 추첨 대기자였어요.
그분은 3번째로 번호가 불려 사무실에 들어가 계약을 했는데, 다시 주차장으로 오셨더라구요.
 
“전 2단지 8층 계약했어요. 가니까 계약금 준비했는지 확인하고 남아있는 세대를 보여 주더라구요.
10층 안팎의 물건이 서너 개 있었는데 앞에서 다 가져갔는지 그런 데엔 빨간 딱지가 붙어 있었어요. 대부분이 1~3층이었어요.”

그 모든 게 10분도 안 되는 와중에 벌어졌대요.
그래선지 그분도 계속 “잘 산 거 맞죠?” 하고 사람들한테 물어보더라구요.
8억원짜리 물건을 후다닥 사고 나왔으니 불안한 게 당연하죠.
그분 말씀 듣고 미련 없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제야 “남들이 안 산 데엔 이유가 있겠구나” 싶었거든요.

만약 그 전에 당첨됐다면 어땠을까요?
수백 명이 당첨을 기다리는 상황에서 운 좋게 호명되어 부러움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사무실에 올라가
“빨리 결정해라, 그렇지 않으면 뒷사람한테 기회를 줘야 한다”고 다그치는 직원 앞에서
충분히 고민하지도 못한 채 결국 계약서에 사인을 하지 않았을까요?
 
관련 기사
추첨방식도 문제지만, 분양 경쟁률만 공개하고 정작 계약률을 공개하지 않는 것도 문젭니다.
분양 경쟁률로 부동산 시장의 냉기를 가려보는 건 아닐까요?

여튼 이번 청약 도전기는 실패로 끝났습니다.
그렇지만 다음번 청약 때에는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조금 더 현명해지려고요.
정말 괜찮은 입지의, 괜찮은 조건의, 괜찮은 가격의 분양인지 아닌지,
무엇보다 청약 광풍에 휩쓸리는 건 아닌지....
마지막까지 따져보려고 합니다.

구 경제기자가 내집을 마련할 때까지 부동산 투자기는 계속됩니다~
 


정선언 기자 jung.sunean@joongang.co.kr
구성 및 제작 현예슬 hyeon.yese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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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와 기사를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