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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국 칼럼] 계승이냐, 청산이냐

김진국  대기자

김진국
대기자

그럴 줄 알았다. 최순실씨는 첫 재판에서 모든 혐의를 부인했다. 박근혜 대통령도 모두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 국회가 탄핵소추를 의결하며 헌법을 다섯 가지, 법률을 여덟 가지 위배했다고 했지만 모두 사실이 아니란 것이다.

 최씨나 박 대통령이나 재판에 대비하고, 반론을 펴는 것을 나무랄 수는 없다. 누구나 재판에서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 최씨는 검찰에 출두할 때 “죽을죄를 지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론을 무마해 보려는 립서비스였다. 그걸로 법적 권리까지 포기했다고 간주할 수는 없다. 박 대통령이 최순실을 ‘키친 캐비닛’이라고 하건, ‘국정에 관여한 건 1% 미만이니 잘못한 것이 없다’고 하건 당연한 권리 행사다.

 최씨라면 그것으로 족하다. 송사(訟事)를 할 때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아무런 공직도 맡지 않은 최씨가 방어권을 행사하는 것을 누가 시비하겠는가. 하지만 박 대통령은 다르다. 그는 정치 지도자다. 국민이 선택한 대통령이다. 개인의 안위를 지키는 것이 끝이라고 할 수가 없다. 나라의 미래를 먼저 염려해야 하는 사람이다. 그럴 것이라고 기대하는 국민이 있다. 나만 살면 되는 게 아니라 나라를 살리고, 보수세력도 살려야 한다. 지지자들의 자긍심도 염려해야 한다.
 주말마다 집회가 이어지고 있다. 촛불집회는 탄핵소추 이후 조금씩 줄어들었다. 그런데 이에 맞서는 ‘맞불집회’는 점점 늘고 있다. 지난주에는 경찰 추산으로도 3만3000명이다. 최순실씨의 국정 농단 진실은 묻혀 버렸다. 세 대결의 함성 속에 진실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친박(친박근혜)계도 다시 결집했다. 폐족(廢族)이니, 2선 후퇴니 하는 말은 잊어버렸다. 단합이라는 명분 속에 과거의 책임을 모두 덮어버렸다. 원내대표 경선에서 이기자 그 기세를 모아 당직을 장악하고, 비상대책위원장까지 좌지우지하려 한다.

 비상대책위원회라면 비상한 일이 있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그 ‘비상한 일’에 대한 인식부터 다르다. 친박들은 ‘아무 잘못도 없는 대통령을 힘들게 만드는 세력들과의 전쟁’으로 보는 것 같다. 내년 상반기를 넘기지 않을 것 같은 차기 대통령 선거에서 참패해 정권을 넘겨줄 수 있다는 것이 위기라는 인식이다.

 최순실씨의 국정 농단에 책임이 있는 집권당으로서 국민의 외면을 받게 됐다는 위기감과는 거리가 멀다. 책임을 인정한다면 사과하고, 책임질 사람은 책임지고, 당을 완전히 바꾸어야 한다는 게 정해진 수순이다. 그러나 친박계 중심의 당 구조조차 바꾸기를 거부하고 있다. 단합이라는 명분으로 당권을 놓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박 대통령을 보호할 수 있을까. 그동안 최순실씨가 벌인 일들이 없는 일이 될까. 미르재단·K스포츠재단에 끌어모은 대기업의 기부금이 자발적인 순수 기부가 되고, 전두환 전 대통령의 일해재단과 다르다고 인정받을 수 있을까.

 재판에서는 검찰이 유죄를 증명해야 한다. 피고 측은 방어만 하면 된다. 그러나 정치적으로는 그렇지 않다. 방어만 한다고 없는 일이 될 수 없다. 법적으로 인정되지 않는 정황만으로도 정치적으론 파멸할 수 있다. 선거에서는 반성하지 않는 뻔뻔함이 유죄보다 더 참혹한 결과를 가져다 줄 수 있다.

 결국 최순실 스캔들 책임을 전체 보수세력이 짊어져야 한다. 새누리당이야 애당초 책임을 피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왜 보수세력 전체가 그 책임을 떠안아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최순실이란 이름조차 모르던 사람들까지 그 빚을 갚아야 한다. 친박 세력이 진영 싸움으로 몰아가면서 최씨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마저 보수세력의 배신자라고 몰아세우는 판이다.

 대한민국의 보수가 박근혜만 있는 게 아니다. 박정희 이전에도 있었다. 근대화 세력뿐 아니라 민주화 세력에도 보수가 있다. 왜 그 많은 세력을 쫓아내고 박 대통령 세력 주위로 보수의 울타리를 치려 하나. 김종필 전 국무총리는 박 대통령이 “박정희 전 대통령, 육영수 여사의 나쁜 점만 물려받았다”고 말했다. 그것은 성격뿐만이 아니다. 보수세력조차 편협하고, 극단적인 성향만 편가르기했다. 거기에 최순실 스캔들의 부채까지 더했다.

 역사는 발전한다. 과거가 없이 오늘이 없고, 오늘 없이 내일도 없다. 한 걸음이라도 앞으로 나아가려면 좋은 점만 유산으로 받아야 한다. 나쁜 점은 정리하고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과거의 잘못을 똑같이 되풀이하는 것은 바보다.

 박근혜를 보호하기 위해 보수 전체를 죽일 수는 없다. 보수가 최순실의 빚까지 떠안을 수는 없다. 사태의 진실을 냉정하게 바라봐야 한다. 박근혜 정권을 계승할 것이냐, 청산할 것이냐. 보수가 다시 일어서는 것은 거기에 달려 있다.

김진국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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