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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오디세이 2016 참가자 릴레이 기고 <16> 러시아 극동에서 한국을 돌아보다

신범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신범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지난 8월 대한민국 탐험대가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했다. 정계·재계·관계·언론계·학계 인사를 망라한 탐험대원들은 크라스키노부터 하바롭스크까지 답사했다. 크라스키노 전망대에 올라 발해의 염주성 터를 휘두르고 있는 동해, 북한 산하를 배경으로 흐르는 두만강, 그리고 북·중·러 접경지대를 바라보며 러시아 극동이 한국에는 무엇인가를 물었다. 그런데 안중근 의사의 단지동맹비와 블라디보스토크-우수리스크로 이어지는 안 의사의 하얼빈행 여정을 추적하면서, 그리고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 기념비와 우수리스크의 이상설 유허비 및 연해주 독립운동의 대부 최재형 고택을 방문하면서 한민족 디아스포라와 독립운동의 터전이었던 극동을 다시 발견하게 되었다.

1990년 수교 이후 한·러 관계를 연구해 온 입장에서 탐험대의 질문에 대해 나름의 답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러시아 극동은 탈냉전 이후 미·중 경쟁시대에 한국이 한반도를 관통하는 네트워크 전략을 실현해 가는 전략적 협력 파트너로서 러시아가 한반도와 만나는 지점인 동시에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향하는 러시아의 거점이라는 식의 생각이다.

사실 이런 답이 틀린 것만은 아니다. 세계 경제는 유럽·미주·아시아 3대 광역 성장축을 중심으로 발전해 왔지만 최근 유럽-아시아를 잇는 ‘유라시아’와 미주-아시아를 연결하는 ‘아태지역’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미국의 재균형화와 아태지역에 대한 관심이나 중국의 유라시아 신실크로드 구축 노력은 대안적 지리경제적 대립구조의 무게감을 더해가고 있다. 따라서 동아시아는 유라시아와 아태지역 양대 거대 경제발전권역의 교집합으로서 21세기의 핵심 지역으로 부상했으며, 미국과 중국은 지역 주도권을 두고 양보할 수 없는 대결을 펼치고 있다. 한반도를 핵으로 하는 대칭적 세력구도가 중층으로 형성되었으며, 이로써 냉전기보다 훨씬 복잡한 힘의 대립과 균형이 진행되고 있다. 이런 지역정치 구도의 변화 와중에 한·러 양국은 미래지향적 ‘전략적 파트너’로서 서로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
블라디보스토크 항만에 쌓인 화물. 부동항으로 북극항로가 열림에 따라 동북아 물류 거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사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블라디보스토크 항만에 쌓인 화물. 부동항으로 북극항로가 열림에 따라 동북아 물류 거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사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기대가 큰 것은 양국이 상호보완적 경제협력 파트너로서 자리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중·일과 달리 한국은 동북아를 통해 아태지역으로 진출하려는 러시아 신동방정책의 성패를 가름하게 될 극동 개발의 파트너가 될 수 있다. 또 가능하면 러시아는 한반도 세력 균형의 전략적 행위자가 되고 싶어 한다. 직선거리 20㎞도 안 되는 북·러 접경은 어쩌면 러시아의 동아시아에 대한 최고의 “알박기”였으며, 이로써 중국의 출해(出海) 통로가 차단되고 있는 상황은 한반도를 둘러싼 절묘한 세력균형의 가능성을 러시아가 쥐고 있다는 점을 웅변하고 있다. 그래서 러시아는 북한 철도를 자비로 개·보수하면서까지 나진항 개발에 공을 들였고, 북핵 제재 국면에서도 한국과 나진-하산 프로젝트를 성공시키려고 애써 왔다.

하지만 한국 정부가 이 기대에 부응할 수 있는 여지는 아주 제한적이다. 러시아의 가능성과 자산은 북한이라는 장애물 앞에 희석되곤 했다. 최근 유라시아의 변화와 관련해 한국의 대륙 진출 및 북극항로 상업화의 파트너십에 대한 기대도 커지고 있지만 서방의 러시아 제재, 북한의 핵실험, 남중국해 갈등 같은 안보 경쟁이 가열되면서 양국 간 나진-하산 프로젝트는 개성공단 폐쇄와 운명을 같이했다. 가스관·전력망 등 각종 망 사업은 정체되고 있으며, 북극항로 상업화는 우리에게 먼 미래의 일로 간주되고 있다.

이런 문제들을 토론하고 답사해 가면서 대원들은 일정한 공감대를 가지게 되었다. 우리가 러시아 극동을 너무 몰랐으며, 그래서 그 가능성을 너무 추상적으로 파악해 축소해 왔다는 점이다. 그리고 북한이라는 장벽 때문에 대륙에서 분리된 섬처럼 지내며 잊혀진 러시아 극동이 우리의 심리적 거리감만큼은 멀지 않다는 점도 확인했다. 러시아 극동이 지닌 가능성을 있는 그대로 보게 됨으로써 러시아가 한국과의 전략적 협력을 통해 한반도 안정과 공영에 기여할 다양한 자산을 가지고 있다는 점도 인정하게 되었다.

이런 담론을 나누는 동안 대원들은 하바롭스크 아무르 강변에 도달했고, 여정으로 지쳤던 무릎을 펴고 지식인의 실천을 다짐하게 되었다. 돌이켜 보니 지난여름 탐험대가 던진 질문의 대상은 러시아가 아니라 어쩌면 미증유의 21세기 변화를 두려움으로 살아내고 있는 대한민국과 우리 자신에 대한 것이었다. 그만큼 한국이 많이 아프다는 얘기다. 속히 병과 상처를 치료해야 한다. 하지만 이 순간에도 세계는 야속하게 또 다른 변화의 바퀴를 돌리고 있다. 신년 초 출범하는 트럼프 행정부는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에 나설 것이며, 일본과 중국도 발 빠르게 대처해 나갈 것이다. 우리도 치료의 아픔을 견뎌내는 동시에 밖의 변화에도 주의를 쏟아야 할 때다.

글=신범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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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와 기사를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