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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이 주인? 거듭해 배신당한 주권…150만개 촛불은 ‘정치적 우울’

‘마음의 사회학’ 김홍중 교수
촛불집회의 숨은 의미 분석
‘마음의 사회학’을 개척한 김홍중 서울대 사회학과교수는 “촛불집회는 국민의 정치적 우울감이 축적 된 결과”라고 분석했다. [사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마음의 사회학’을 개척한 김홍중 서울대 사회학과교수는 “촛불집회는 국민의 정치적 우울감이 축적 된 결과”라고 분석했다. [사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요즘처럼 역사적 한 장면을 관통하고 있다는 점을 ‘의식’하며 살았던 적도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우리는 대부분 먹고 자고, 개인의 소망이나 주위 기대에 맞춰 공부하거나 일하는 인간이었다. 주말마다 참가 인원 기록을 경신하는 촛불집회 얘기다. 사람들은 왜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걸까. 무능한 정권에 대한 분노 때문이라는 간단한 설명으로 집회 군중의 다양한 세대·이념적 스펙트럼을 섬세하게 담아내기는 어려운 것 같다. 서울에서만 150만이라는 자발적 동원 규모의 거대함 앞에, 왜소한 분석이다. 폭력 사건 하나 없이 청소까지 하고 돌아가는 집회의 성격은 또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마음의 사회학’이라는 독특한 연구방법론이 도움이 될지 모른다. 김홍중(45)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가 인간 이성만을 강조하는 기존 사회학에서 사람의 마음·감정의 동요와 흐름을 중시하는 쪽으로 방향 전환한 1970년대 감정사회학에, 파리사회과학고등연구원 박사 유학 경험을 더해 개발한 방법론이다. 한마디로 마음은 인간의 모든 행동의 원천, 시발점이자 종착역인 만큼 마음의 여러 능력 중 하나인 이성·인지력만 들여다볼 게 아니라 감정과 욕망까지 포괄적으로 봐야 온전한 인간 파악, 사회 현상의 이해에 이를 수 있다는 주장이다.

2009년 그런 생각을 구체화한 연구서 『마음의 사회학』을 펴낸 김 교수가 논의를 심화시킨 『사회학적 파상력』(이상 문학동네)을 최근 펴냈다. 지난달 29일 서울대 연구실로 김 교수를 찾아갔다.

김 교수는 “1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무슨 생각으로 거리로 나왔을까, 라고 물으면 질문 자체가 틀린 것”이라고 말을 꺼냈다. 목적 달성을 위한 가장 빠른 수단을 찾고자 하는, 주로 경제학에 기댄 합리적 사회학 이론으로는 압도적인 촛불 현상에 대한 설명이 잘 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김 교수는 “아직 우리가 그것을 설명할 정확한 언어를 갖고 있지는 않지만 마음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어떤 거대한 심리적 역동이 집합적으로 존재하고, 그 역동을 통해 설명할 때 훨씬 설득력 있게 현 사태가 이해된다”고 했다.

김 교수는 구체적으로 ‘주권적 우울’이라는 표현으로 촛불 민심의 배후를 설명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우울은 어떻게 해도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없다는 무기력감이 반복을 통해 학습될 때 찾아오는 인간 감정이다. 이런 맥락에서 ‘주권적 우울’은 헌법이 보장하는 민주 시민의 기본 권리, 나라의 주인이 바로 국민이라는 양보할 수 없는 가치가 지속적으로 훼손되고 부정되는 과정에서 생긴 마음의 부서짐, 정치적 우울감이다.

김 교수는 “한국의 현대사는 나라를 빼앗겼다는 상실의 체험으로부터 시작됐다. 해방과 정부 수립 이후에도 민주주의라는 관념 자체가 아예 존재하지 않거나 내용 없이 형식적으로만 존재하던 시기, 잃어버린 게 정확히 무엇인지도 잘 모르는 채 무언가 커다란 상실과 그 상실이 야기한 정치·사회적 혼란과 고통의 흐름에 사람들의 삶이 휩쓸렸다”고 진단했다. 여러 역사적 경험을 거쳐 특히 “보수 정권이 들어선 2008년 이후 많은 사람이 민주시민의 권리를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고 느끼는 주권적 우울이 상당히 축적됐다가 이번에 국가가 망가졌다는 위기 인식과 결합해 쏟아져나온, ‘뜨거운 광장’이 아닌 ‘조금 차갑고 자제하는 광장’”이라고 분석했다. 20세기 한국사 전체를 관통하는 주권적 감정들의 동학(動學)에 대한 이해 없이는 150만, 200만이라는 대중 동원 현상을 설명하기 어렵다는 진단이다.

김 교수는 “한국 사회는 지난 50년간 꾸어 왔던 집합적 꿈들이 모두 깨져 있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새로운 꿈의 언어를 욕망하지만 아직 나타나지 않은 상태”라고 진단했다. 과거의 꿈들은 크게 산업화·민주화·세계화다. 산업화는 환경 재앙 등의 형태로 부메랑이 돼 돌아오고 있고, 민주화는 여러 문제를 끌어안은 채 여전히 진화 중이며, 세계화는 신자유주의 악몽으로 나타났다는 얘기다.

사회학의 역할은 현실 진단이지 해법 제시는 아니다. 김 교수는 “결국 정치인들과 정치학이 답을 제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치가 민생을 챙기는 건 기본이고 근본적으로 좋은 꿈, 도덕적으로 정당하고 많은 사람이 동의해 그것을 향해 움직여 갈 수 있는 꿈의 언어를 제공할 책임이 있다”며 “정권 교체가 아니라 앞으로 20년을 먹고살 새로운 집합적 꿈을 누군가 제시해줘야 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글=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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