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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접두사와 접미사의 정치학

김환영 논설위원

김환영
논설위원

접두사·접미사를 쓰면 기존 명사를 바탕으로 새로운 말을 쉽게 만들 수 있다. 우리말도 그렇고 영어도 그렇다.

아마도 사회과학 연구자가 가장 애용하는 접미사·접두사는 화(化·-ization)와 탈(脫·post-)이다. 우리 표준국어대사전(이하 우리 사전)을 찾아보면 화(化)는 “‘그렇게 만들거나 됨’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다. 탈(脫)은 “‘그것을 벗어남’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다. 우리 사전은 탈공해·탈냉전·탈대중화, 기계화·대중화·도시화·자동화·전문화를 탈과 화의 용례로 제시한다.

동서양, 전 세계에서 수백 년 동안 화두는 근대(近代)였다. 근대에 화(化)를 뒤에 붙이면 근대화(近代化·modernization), 탈(脫)를 앞에 붙이면 탈근대·포스트모던이다. 앞뒤로 붙이면 ‘탈근대화’다.

우리와 영미 문화권의 언어 생활에서 탈근대·포스트모던은 상대적으로 많이 써도 아직 탈근대화·포스트모던화는 그렇지 않다. 왜일까. 두 가지 가설을 설정할 수 있다. 첫째, 영미권과 우리나라 사이에 어떤 격차가 있는지 모른다. 어떤 특정 ‘언어·문화권’의 사전을 보고 어떤 단어의 등재 여부를 살피면 그 권역의 ‘의미 세계’를 알 수 있다. 포스트모던(postmodern)은 모든 영어사전에 등재돼 있다. 우리 사전에는 포스트모던도 탈근대도 없다. 아직은 식자층만의 용어인지 모른다.

둘째, 탈근대·포스트모던은 아직 실체가 좀 불명확하다. 실체에 대한 합의가 있어야 접미사 화(化)를 붙일 수 있다. 한데 탈(脫)·포스트는 왠지 불안하다. 화(化)·아이제이션은 불안하지 않다. 화(化) 앞에 붙은 알맹이가 있는 실체를 향해 그저 열심히 좇아가면 된다. 근대·산업·민주라는 말에는 실체가 있다. 그래서 근대화·산업화·민주화는 물론 지난하고 고통스러운 과정이었지만 갈 길이 확정된 길이기도 했다.
[일러스트=김회룡]

[일러스트=김회룡]

우리나라 정치는 ‘포스트 박정희·박근혜 대통령 시대’에 접어들었다. 수년 동안 수많은 접두사가 박(朴) 앞에 붙었다. 그 많던 무슨 무슨 박(박)들···. 가박(가짜 친박)·멀박(멀어진 친박)·범박(범친박)·복박(돌아온 친박)·신박(신친박)·옹박(박근혜 대통령 옹위 부대)·용박(박 대통령을 이용하는 사람들)·원박(원조 친박)·진박(진짜 친박)·짤박(잘린 친박)·홀박(홀대받는 친박)은 이제 다 정리되고 친박과 비박, 그리고 촛불이 상징하는 반박(反朴)만 남았다. 박근혜 대통령 시대의 시작과 끝은 ‘접두사의 정치’가 장악했다. 물론 ‘통합진보당 불법화’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등장하는 접미사 화(化)도 출연했었다.

앞으로의 정국 또한 서로 긴밀하게 연결된 접두사·접미사가 좌우할 것이다. 당장 뜨거운 접사는, 국정 운영 정상화, 포괄적인 의미의 경제민주화에 붙은 접미사 화(化)다. 급한 불을 끄는 가운데 대선 정국에 등장할 접사는 ‘성질’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성(性)이다. 확장성(擴張性)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야권의 경우 확장성은 ‘포스트·탈(脫)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에 달렸다. 어느 사회나 보수가 진보보다 많다. 우리나라와 미국의 보수는 대체적으로 인구의 3분의 1, 진보는 4분의 1이다. 중도와 보수 중 일부를 끌어오려면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에게 덧씌워진 이미지를 탈(脫)해야 한다. 지지자들은 상당히 억울할 것이다. 하지만 정치는 현실이다. 탈(脫)은 저절로 되는 게 아니라 ‘새로운’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 신(新)을 통해 달성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14대 대선에 나서면서 ‘뉴DJ플랜’을 제시했다. 여권 주자의 확장성 또한 ‘탈새누리당화’에 달린 문제다.

여야와 국민이 인지할 필요가 있는 ‘탈(脫)’의 원리가 있다. ‘탈(脫)’의 역사에는 흥미로운 점이 발견된다. 포스트모던·탈근대에도 근대가 계속 남아 있다. 완전히 사라지는 게 아니다. 탈중세(postmedieval) 시대로 볼 수 있는 14~16세기 르네상스 시대에도 중세적인 특성들이 살아 있었다. ‘탈가톨릭’ 과정인 16세기 종교개혁이나 서구의 근대화 과정에서도 ‘재가톨릭화’가 발견된다. 가톨릭 교회 역사상 교황이 오늘만큼 센 경우가 있었을까. 탈유교(脫儒敎)의 과정을 겪은 우리나라에서도 유교는 살아 있다. 구한말과는 달리 대한민국은 국민의 100%가 양반의 후손인 나라다. 탈유교의 시대에도 유교화는 계속됐다. 세계주의의 시대에도 민족주의는 계속 중요하다. 새로운 민족주의가 필요하다. 탈(脫)은 ‘다시 하는’ 또는 ‘두 번째’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 재(再)와 신(新)을 동반한다.

‘박정희 패러다임은 죽었다’는 말도 있지만, ‘포스트 박정희 패러다임’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박정희 대통령의 유산은 계속되지 않을까. 만약 그렇다면 이는 촛불에 반대하는 분들에게는 큰 위로가 될 것이다. 언젠가는 신신친박(新新親朴·neo-neo-pro-Park)이 등장할 수도 있다.

차기 최고지도자에게 부여된 과제는 ‘탈제왕적 대통령제화’와 ‘신성장동력의 재점화’만 있는 게 아니다. 탈근대를 말하는 시대인데도 민족 분단 때문에 근대성마저 온전히 확보하지 못했다. 민족의 재통일이라는 숙제를 언제까지 미룰 수 있을지 모른다. 게다가 인공지능(AI)의 도전으로 탈인간(post-human·포스트휴먼) 시대에 대비해야 한다. 우리는 접두사·접미사의 정치를 헤쳐 나갈 지도자가 필요하다.

김 환 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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