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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view &] 호모 이코노미쿠스 박근혜

서경호 경제기획부장

서경호
경제기획부장

호모 이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경제적 인간). 경제학이 이론적 토대로 삼고 있는 전형적인 인간형이다. 정서나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오로지 물질을 끝없이 욕망한다. 욕망을 충족시켜 주는 자원은 한정돼 있으니 자기 이익을 극대화하는 쪽으로 선택하고 행동한다. 그게 경제학이 전제하고 있는 경제 주체의 합리성이다.

퇴진 시기와 2선 후퇴 등을 명시적으로 밝히지 않은 채 국회에 공을 던진 박근혜 대통령의 3차 대국민담화 이후 정치권은 더 어지럽다. ‘선거의 여왕’ 소리를 듣는 대통령의 동물적인 정치감각이 발휘된 걸까. ‘신의 한 수’라는 친박의 자평부터 ‘꼼수의 극치’라는 야권의 비난까지 한데 어우러졌다.

대통령은 3차 담화에서 사익(私益)을 추구하지 않았다고 했다. 작은 사심조차 품지 않았다는 표현도 썼다. 하지만 그 울림은 크지 않다. 검찰 공소장에는 사심 없다는 대통령이 40년지기 최순실씨가 이득을 챙기는 과정에 6차례나 개입한 것으로 적시됐다. 대통령이라는 공공적 가치의 최고 자리에 앉아 비선 측근들의 사익을 알뜰히 챙긴 셈이다.

대통령은 이미 권위와 신뢰를 잃었다. ‘개인자격’으로 대구 서문시장을 방문하는 것마저 편치 않은 실정이다. 하지만 탄핵이든, 질서있는 퇴진이든, 우리는 청와대를 벙커처럼 쓰면서 웅크리고 버티는 대통령을 한동안 지켜볼 수밖에 없다. 최악의 경우 어쩌면 임기를 마치는 내후년 2월까지 이 불편함이 길어질 수도 있다. 공익의 최고 수호자인 대통령이 그 역할을 제대로 못할 때 남는 것은 ‘호모 이코노미쿠스 박근혜’밖에 없다. 그도 보통사람들처럼 자신의 이익과 손실을 따져서 움직이는 경제인일 뿐이다. 아니, 이렇게 생각하고 받아들여야 국민의 분노와 허탈감이 조금이나마 덜해진다고 생각한다.

공인(公人) 중에 공인인 대통령도, 친박 세력도, 호모 이코노미쿠스다. 자신의 이익(손실)이라는 잣대 하나로 현 시국을 보고 있다. 대통령이 그토록 사랑한다는 국가와 국민을 진정 위한다면, 퇴진 시기를 구체적으로 밝혀 이 문제로 인한 여야 정치권의 혼선을 줄여주고 싶을 텐데, 그럴 기미는 도무지 보이지 않는다. 공익을 위한 사회 갈등을 조정하고 해소해야 하는 최고의 컨트롤타워가 스스로 이익집단이 돼 오히려 사회 갈등을 양산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똘똘 뭉쳐 있는 이익집단은 사회 개혁의 걸림돌이 되는 경우가 많다. 머리띠를 두르고 생존권 투쟁이라고 목청을 높이면 여론도 온정적으로 흐른다. 결국 표에 민감한 정치권이 나서고 개혁은 무뎌진다.

이익집단 앞에서 개혁이 좌절되는 건 국민 전체가 누리는 제도 개혁의 효익은 넓고 크지만 개개인에게 돌아가는 이익은 작기 때문이다. 반면, 제도 개혁의 피해는 소수에게 돌아가지만 당사자에겐 큰 손실이다. 제도 개혁으로 소비자가 누리는 작은 이익을 하나하나 모으면 이익단체의 손실을 압도하게 마련이나 소비자(국민)는 개별적으로 작은 이익에 민감하지 않다. 그러니 생존이 달려있는 이익단체의 큰 목소리에 사회 전체의 공익이 휘둘린다.

스스로 ‘경제적 인간’으로 자리매김한 대통령이나 친박 세력도 마찬가지다. 압도적인 국민 다수의 촛불 민심, 언론의 날선 비판은 애써 외면한다. 머리띠 두른 대통령과 친박 세력은 지금 싸움에서 지면 모든 것을 잃는 생존권 투쟁 중이다.

누구처럼 생사가 걸려있지 않아서 조용한 다수의 큰 이익과 시끄러운 소수의 작은 이익이 충돌할 때 해결책은 있을까. 독립적인 싱크탱크 같은 연구기관이나 원로그룹이 넓지만 얇은 다수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방법이 있다. 촛불에 담긴 분노와 좌절의 메시지를 읽어내려 애쓰는 언론도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다. 국민이 주인이라는 큰 이익이 무시되는 걸 조용히 좌시하지 않겠다는 촛불도 있다.

요즘 정국에 웬 크고 작은 이익 타령이냐고 타박하지는 마시라. 똘똘 뭉친 소수의 생존권 투쟁에 국익이 훼손되는 일을 자주 지켜봐야 했던 경제기자의 넋두리쯤으로 여겨도 괜찮다. 내우외환의 시기에 호모 이코노미쿠스의 청와대와 마주하고 있는 건 참으로 답답하고 비극적인 일이다.

서 경 호
경제기획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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