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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탁기에 미친 고졸 청년, 40년 뒤 부회장 됐다

조성진

조성진

1976년 9월 용산공고를 갓 졸업한 약관의 청년이 금성사 정식직원이 됐다. 청년은 견습과정을 거쳐 우수장학생 자격으로 입사에 성공했다.

당시 가전업체 내부에선 선풍기 사업부가 최고 인기 부서였다. 그러나 청년은 세탁기 사업부를 자원했다. 세탁기 보급률이 0.1%도 안 되던 시절이었다. 세탁기 개발 기술은 ‘걸음마를 못 뗀 수준’에 불과했다. 청년은 빨래라는 인간의 노동을 기계가 대신하는 시대가 곧 올 것으로 확신했다. 이후 36년간 세탁기 개발 외길. 대학을 졸업한 선후배들 틈바구니에서 그는 ‘세탁기 박사’라는 칭호를 받으며 전문성을 인정받았고 승진 가도를 달렸다.

이 청년이 1일 발표된 LG전자 인사에서 부회장 자리에 올랐다. LG전자는 ‘고졸 신화’ 조성진(60) 홈어플라이언스&에어솔루션(H&A) 사업본부장(사장)을 부회장으로 승진시키는 내용을 포함한 정기 인사를 실시했다. LG 관계자는 “내부적으로는 세탁기 1등의 DNA를 모바일·에너지·자동차 부품 사업 등 전 부문으로 확산하라는 의미가 있고, 외부적으로는 젊은이들에게 열심히 노력하면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성공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지는 인사”라고 설명했다.
조 부회장은 LG 세탁기가 새로운 도전에 나설 때마다 그 한가운데 있었다. 입사 후 10년가량 지나도록 세탁기 개발 기술이 일본 의존을 벗어나지 못하자 90년대 초 과감한 시도를 감행했다. 당시 세탁기는 세탁통과 모터가 벨트로 연결된 구조였지만 조 부회장은 세탁통과 모터가 한 몸처럼 움직이는 ‘다이렉트 드라이브(DD) 모터’를 적용한 세탁기를 세계 최초로 만들었다. 세탁 성능, 에너지 효율, 소음 등이 기존 방식에 비해 뛰어난 제품이 탄생한 것이다. 조 부회장은 “세상에 없던 세탁기를 만들어내야 일본을 한번에 앞지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 제품을 개발하는 동안 사무실에 침대와 주방 시설까지 마련해 놓고 회사를 떠나지 않고 개발에 매진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조 부회장은 이어 2005년 세계 최초 듀얼분사 스팀 드럼세탁기, 2009년 6가지 손빨래 동작을 구현한 ‘6모션’ 세탁기, 2015년 세계 최초로 상단 드럼세탁기와 하단 미니워시를 결합한 ‘트윈워시’ 등 세상을 놀라게 한 제품들을 잇따라 내놨다.

항상 새 옷처럼 관리해주는 의류관리기 ‘스타일러’도 그의 아이디어에서 개발이 시작됐다. 모터와 컴프레서 등 LG가 가진 부품 경쟁력을 앞세워 얼음정수기냉장고, 휘센 듀얼 에어컨, 퓨리케어 360도 공기청정기 등 융·복합 가전을 만드는 일도 주도했다. 무선청소기를 개발하는 동안에는 자택에 시제품 6~7대를 놓고 직접 사용하면서 편의성을 높이는 아이디어를 냈다. 청소기를 쉽게 밀고 당길 수 있도록 손가락 거는 장치를 만든 것도 조 부회장의 ‘실전 경험’에서 비롯됐다.
왼쪽부터 송대현, 정철동, 송치호.

왼쪽부터 송대현, 정철동, 송치호.

조 부회장이 승진하면서 LG전자의 지휘 체계도 재편됐다. LG전자는 지난해 연말 인사에서 조성진 사장, 조준호 모바일커뮤니케이션(MC) 사업본부장 사장, 정도현 경영지원총괄 사장의 3인 대표이사 체제를 구축했으나 이번 인사로 1인 최고경영자(CEO) 체제로 전환했다.

LG전자 관계자는 “급변하는 시장 환경에 대응하고 위기 상황을 돌파하려면 신속한 의사결정과 강한 추진력 발휘가 필수”라며 “조 부회장이 CEO로 전반을 챙기고 각자 대표들이 부문을 맡는 형태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인사에서 정도현·조준호 사장 외에 이우종 자동차부품(VC) 사업본부장 사장, 권봉석 홈엔터테인먼트(HE) 사업본부장 부사장, 최상규 한국영업본부장 사장은 유임됐다.

지주사인 ㈜LG에서는 구본무 회장의 동생인 구본준 부회장의 역할이 확대된다. LG그룹은 구본무 회장이 그룹경영을 총괄하는 체제는 변동 없이 유지하지만 구 회장이 주관하던 전략보고회 등 경영회의를 구본준 부회장이 맡기로 했다. 신성장사업단장을 맡고 있는 구 부회장은 주력사업의 경쟁력 제고와 신사업 발굴 등 경영을 사실상 총괄하게 된다. 구본무 회장의 아들인 구광모 ㈜LG 상무는 이번 인사에서는 승진과 자리 이동 없이 현직을 유지한다.

LG그룹 관계자는 “충분히 경영수업을 받게 하는 LG 고유의 기업문화가 반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LG전자 H&A사업본부장엔 송대현 사장이 선임됐고, 주요 계열사 가운데는 LG화학에 정철동 사장이, LG상사에 송치호 사장이 임명됐다.

박태희 기자 adonis55@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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