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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류 아니었지만 아름다운 삼류였던 그 시절 기리고 싶었죠

얼마전 찾은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의 작업실. 한쪽 벽면에 1970~80년대 국산 아날로그 TV 20여 대가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혹시나 하고 스위치를 돌려보니 실제로 화면이 켜졌다. 마치 미디어 아티스트 고(故) 백남준씨의 작품들을 보는 듯했다.

이 작업실 주인인 정치호(36)씨는 옛것을 현대의 시각으로 재해석한 ‘리벌스(REBIRTH·재생)’ 작품을 제작하는 예술가다. 그의 최근작 ‘월넛TV장’은 72년 국내에 출시된 아날로그 TV에 최첨단 LED 화면을 장착한 일종의 재생(再生) 예술품으로 실제로도 사용 가능하다. “버려진 옛 물건도 관점에 따라 명품이 될 수 있어요. 그게 바로 예술의 순기능 아닐까요?”
옛것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아트디렉터 정치호씨가 자신이 만든 ‘월넛TV장’ 앞에 서 있다. 이 작품은 1972년 나온 국산 중고TV에 LED 화면을 장착한 것으로 실생활에서 사용 가능하다. [사진 정치호]

옛것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아트디렉터 정치호씨가 자신이 만든 ‘월넛TV장’ 앞에 서 있다. 이 작품은 1972년 나온 국산 중고TV에 LED 화면을 장착한 것으로 실생활에서 사용 가능하다. [사진 정치호]

과거 산업화 시대를 재해석한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가 최근 안방극장에서 인기를 모았듯, 비슷한 취지로 제작된 그의 작품도 호평받고 있다. 지난달 서울 논현동 윤현상재 스페이스 B-E갤러리에서 열린 그의 전시회 ‘리벌스’에서 작품 상당수가 판매됐다. 해외에서도 관심이 높다. 한국을 방문한 슈뢰더 전 독일 총리가 그의 전시회를 찾아 ‘월넛TV장’ 등 작품 2점을 구입하기도 했다.

정씨는 한 언론사의 사진기자였다. 6년간 근무하며 ‘이달의 보도사진상’을 8차례 수상했다. 그러나 2011년 10월 만 서른 살 생일을 앞두고 마음에 품었던 일에 뛰어들기 위해 돌연 사직서를 냈다.

사진기자라는 직업상 평소 사물을 들여다보는 습관이 있던 정씨는 벼룩시장을 구경하는 일이 취미였다. 그곳에서 골동품이나 다름없는 중고TV를 발견한 뒤 뜻밖의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한국의 TV는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최첨단 제품이잖아요. 그러나 지금의 이 영광도 과거 미국·일본 제품을 모방했던 우리 아버지 세대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걸 불현듯 깨달았죠.”

“일류는 아니었지만 아름다운 삼류였던 우리의 과거를 기리고 싶었다”는 그는 회사를 그만둔 뒤 중고TV를 적극적으로 수집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수집하지 않으면 다음 세대는 국내산 아날로그 TV의 존재를 모를 수도 있다는 일종의 책임감도 들었다. 그렇게 보유하게 된 1970년대 아날로그 TV가 30여 대. 이 중 실제로 작동되는 제품은 20여 대에 이른다.

정씨는 올해 초 디자인그룹 ‘엇모스트(UTMOST)’를 설립해 아트디렉터로도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단기간 내 예술가로 성공한 노하우를 현재 어려움을 겪고 있는 20~30대 청년작가들에게 전수하기 위해서다. ‘쓸데없다 생각되는 것을 예술을 통해 쓸데있게 만들자’는 그의 모토에 따라 이곳에선 다양한 재생예술품이 제작됐다. 1950년대 전통 반닫이의 틀을 살려 만든 테이블, 버려진 동물 모형 장난감으로 제작한 조명대 등이 대표적이다. 그는 “우리의 지난 삶의 모습을 예술 작업을 통해 의미있게 기록하고 전달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포그니 기자 pogn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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