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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대형병원들, 서둘러 호스피스법 대비해야

윤영호 서울대병원 공공보건의료사업단장

윤영호
서울대병원
공공보건의료사업단장

지난 1월 8일 국회 본회의에서 ‘호스피스·완화 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 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안’(이하 호스피스법)이 의결됐다. 재석의원 203명 중 202명 찬성이라는 압도적 지지를 받아 다음달 3일 법안이 공포됐다. 이에 따라 2017년 8월 호스피스 제도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2018년 2월에는 스스로 의사결정을 할 수 없을 때를 대비해 인공호흡기, 심폐소생술, 투석, 항암제 등 연명의료에 대한 자신의 의사를 밝히는 연명의료 중단제도가 시작된다. 보건복지부는 법률 시행에 대비해 민관협의체를 구성해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그런데 중병 말기에 있는 환자들이 “인생이 얼마 남지 않았으므로 준비하셔야 합니다”라는 말을 듣게 되는 곳은 대부분 대형병원이다. 이들은 과연 어떤 준비들을 하고 있을까? 최근 서울대 의대가 대한병원협회와 공동으로 43개 대형병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대부분의 병원들이 법의 내용을 인지하고 있으나 이를 실행하기 위한 준비는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조사 대상의 절반가량이 응답조차 하지 않는 무관심까지 드러냈다.

현재 호스피스 입원서비스를 제공하는 상급종합병원은 16개(37%)이며 호스피스·완화의료를 계획 중인 기관은 5개에 불과하다. 호스피스는 우리 국민의 95%가 찬성할 만큼 여론의 지지와 사회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도입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형병원들은 이에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게 현실이다. 최고·최신의 치료와 진단을 가장 먼저 도입하기 때문에 많은 환자들이 선호하는 의료기관이 이래선 곤란하다.
호스피스는 완화의료의 하나다. 완화의료는 심폐소생술 같은 치료를 하지 않고 최대한 환자가 편안하도록 돕는 제도다. 조기에 완화의료를 제공할 경우 환자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뿐만 아니라 생존기간 연장 효과도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우리 국민들의 삶의 마지막은 결코 존엄하지 못하다. 최근 5년간 전체 사망자의 21.7%, 암사망자의 31.3%가 상급병원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있는 현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말기암환자 14%, 전체 사망자의 5%만이 호스피스를 이용할 만큼 병상과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국민들이 필요로 하고 의학적으로 효과가 큰 호스피스가 대형병원에서마저 외면당하고 있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환자에게 “더 이상 해 줄 것이 없다”며 무성의한 태도를 보이거나 끝까지 연명의료에 매달리게 함으로써 비참한 죽음으로 내몰아서는 안 된다. 이는 대형병원들이 말기환자의 ‘최선의 이익 보장’을 포기하는 것과 다름없다. 대형병원의 역할 중 하나가 말기환자의 삶과 죽음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연구와 전문인력 훈련, 학생교육이다. 이런 게 안 돼 있고, 말기환자 돌봄 프로그램도 없다. 검사 잘하고 약을 적절히 처방하는 것 못지않게 환자의 편안한 마지막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게 중요하다. 이런 역할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대형병원들은 더 이상 말기환자들의 현실을 외면하지 말고 그동안의 관행을 바꿔 국민을 위한 완화의료를 제공하기 위한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 이와 아울러 연명의료계획 수립을 위한 서식과 진료지침을 만들고 이를 담당할 의료진을 교육해야 한다. 응급실을 방문하거나 병실에 입원하는 말기환자에게는 반드시 사전연명의료의향서와 연명의료계획서를 확인하고, 작성의 필요성을 설명하는 시스템과 전담조직을 갖춰야 한다. 내년 8월에 서비스를 시작하려면 지금도 이른 게 아니다.

‘말기’라는 충격적인 상황에서 통증 등 증상을 조절하고, 인생의 마지막 ‘수개월’ 동안 잘 정리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모습을 남기고 떠나는 게 바로 ‘웰다잉’이다. 이러한 품위 있는 마무리는 모든 국민의 기본 권리다. 삶의 마무리에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꼭 임종이 임박한 상황이 아니더라도 말기 상태로 진입할 가능성이 있는 시점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다. 의료진은 전문적인 지식과 인간애를 토대로 말기환자와 가족을 대해야 한다. 이게 컴퓨터단층촬영(CT)이나 자기공명영상촬영(MRI) 검사보다 더 중요하다. 환자와 가족들의 사회경제적 어려움도 살펴보아야 한다.

일부 대형병원들은 정부의 지원이 있으면 병동을 신축하거나 리모델링을 할 의향이 있다고 한다. 또 적지 않은 병원들이 장례식장을 호스피스센터로 전환할 의사가 있다고 한다. 정부는 건강증진기금이나 건강보험재정으로 호스피스센터 신축·증축에 선제적으로 투자해야 한다. 대형병원 내 응급실과 중환자실, 감염관리실이 필수인 것처럼 호스피스 또한 필수 의료의 공공성 실현이다.

국회도 중앙호스피스센터에 1억원, 권역호스피스센터에 6억원의 예산을 배정한 듯한데, 이걸로는 조사비용이나 두 명 정도 인건비밖에 충당할 수 없다. 병동 만들고 연구 홍보사업을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지금이라도 ‘호스피스 쪽지 예산’을 넣어 국민의 의료권을 보장하면 좋겠다.

윤 영 호
서울대병원
공공보건의료사업단장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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