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노트북을 열며] 미워도 다시 한번

김영훈 디지털담당

김영훈
디지털담당

바람 잘 날이 없다. 온 나라가 그렇지만, 삼성도 그렇다. 삼성전자는 그제 지주회사 전환을 검토한다고 발표했다. 지주회사 전환은 미국 행동주의 펀드 엘리엇의 압박에 대한 회답이다. 엘리엇은 “건설적 첫걸음”이라고 평가했다.

복잡한 숫자를 빼고 정리하면 밑그림은 이렇다. 삼성전자를 지주회사(A)와 사업회사(B)로 나눈다. 이렇게 하면 A가 B를 지배하는 형태로 지배구조가 단순해진다. 동시에 총수 일가의 지분이 늘면서 지배력도 커진다.

전체 구조를 가능하게 하는 린치핀은 자사주다. 삼성전자가 둘로 쪼개지더라도 기존에 보유한 자사주(13%)는 두 회사 각각에 같은 비율로 존재한다. 두 회사가 이를 맞교환하면 지주회사는 넘겨받은 자사주만큼의 의결권을 확보하게 된다. 원래 자사주는 의결권이 없는데, 의결권이 생기는 마법이다. 늘어나는 의결권만큼 지주회사와 대주주의 지배력은 커진다.

말은 쉬운데 실제로 간단한 일은 아니다. 회사를 나눌 때 어느 쪽을 새로 생기는 회사(신설회사)로 삼느냐에 따라 셈은 확 달라진다. 뭐니뭐니해도 관건은 국회에 발의된 상법과 공정거래법 개정안이다. 개정안의 골자는 자사주의 마법을 활용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박용진·제윤경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미 “편법과 꼼수”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일부에선 삼성이 법 개정 전에 속도전을 하고 있다고 본다. 삼성 측은 “하고 싶다고 빨리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는 입장이다. 그렇다. 설령 속도전이 가능하다 해도, 도둑 장가가듯 할 문제가 결코 아니다. 삼성은 이번 발표처럼 더 공개적으로, 더 적극적으로 사회적 합의 과정을 밟아 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삼성은 지분 리스크를 해결하는 대가로 훨씬 큰 사회적 리스크를 짊어질 수밖에 없다.

자사주 활용을 막아선 쪽에서도 차분해질 필요가 있다. 현실은 무 자르듯 선악을 나누기 어려운 부분이 숱하다. 자본이 부족한 나라에서 순환형 출자를 통한 덩치 키우기는 고육지책인 면이 있다. 지금은 전문화를 외치지만 한때는 정부가, 사회가 사업 다각화를 부추겼다. 거꾸로 시간을 끌수록 병이 더 커지는 부분도 많다. 불투명한 지배구조 때문에 한국 기업은 여전히 증시에서 제값을 못 받고 있다. 삼성전자 같은 기업이 이제야 ‘해외 상장 검토’를 발표하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무엇보다 지주회사 체제가 되면 대기업 지배구조가 지금보다 투명해지고 단순해지는 근원적 효용이 발생하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전쟁에서 이기려면 작은 전투는 내주기도 해야 하는 법이다. 재벌 개혁의 의지가 가장 강했던 2003년 노무현 정부의 공정거래위원회는 재벌을 사실상 해체하는 안까지 고민했다. 그러나 현실화된 정책은 지주회사로 가는 길을 터주는 전환 장려였다. 이번에도 명분이 아닌 실리를 중심에 둔 논의를 기대한다.

다만 분명한 것 하나는 삼성을 향한 ‘미워도 다시 한번’의 유효 기간이 그렇게 길진 않다는 점이다.


김 영 훈
디지털담당
AD

중앙일보 핫 클릭

PHOTO & VIDEO

shpping&life

뉴스레터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