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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인의 작가전] 붕괴 #2. 균열 (2)

_ 붕괴 2개월 전
 
계란이 동동 띄워진 쌍화차를 앞에 둔 이무생은 손수건으로 눈물을 찍으며 연신 한숨을 내뱉었다. 그런 이무생에게 억지웃음을 던진 은혜는 아까부터 계속 눈길을 주는 읍내 간판집 박 사장에게 가려고 하다가 붙잡히고 말았다.
 
“워매, 우리 은혜를 보니까 또 송자 생각에 눈물이 마르질 않네. 아그야 잠깐 앉거라.”
 
한숨을 푹푹 내쉰 은혜는 마지못해 이무생의 맞은편에 앉았다. 하얀 손수건으로 눈물을 찍어낸 이무생이 팽하고 코를 풀었다.
 
“그러니까, 이제 내를 애비다라고 생각하고 의지하그라. 네 애미도 임종을 맞이하면서 내 손을 꼭 잡고 우리 은혜 으찌합니까라고 그러지 않았느냐.”
 
“그래도 아버지 덕택에 엄니가 고생을 덜 하고 돌아가셨잖아요. 엄니도 저승에서 잊지 못할거에유.”

 
삶의 대부분을 서울의 한 보육원에서 자란 은혜는 이런 식의 억지 사투리에 넌더리를 냈지만 장사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그려, 그려, 네도 형주 애미가 그렇게 죽고 나서 마음이 허했지. 돈이 아무리 많고 사장님 소리를 들으면 뭐혀. 집에서 따쉰 밥 한 끼 해 줄 사람이 없는데...”
 
건너편 테이블에 앉아있던 박 사장이 짜증 난 얼굴로 일어나버리는 걸 본 은혜는 인사라도 하려고 했지만 이무생의 타박에 자리에 못 박히고 말았다.
 
“아따, 아비가 야그를 하는데 어디서 엉덩이를 들썩거리는 것이여. 네 애미는 내가 말을 하면 숨소리도 안 냈어야.”
 
그거야 이 송자다방의 명의가 당신 앞으로 되어있으니까 그렇지라고 속으로 중얼거린 은혜는 이제 쌍화탕 맛으로 옮겨진 이무생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척했다.
 
“그러니까, 내 생각에는 말이야. 쌍화탕의 맛은 다름 아닌 계란이여. 계란....”
 
단단히 각오를 하고 있던 은혜를 구해준 것은 이무생의 휴대폰이었다. 휴대폰을 열어젖힌 이무생이 다리를 꼬고는 휴대폰 너머의 목소리와 얘기를 나눴다. 겨우 한숨을 돌린 은혜는 카운터에 쟁반을 놓고는 바깥으로 나갔다. 혹시나 박 사장이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은 박 사장의 검은색 에쿠스가 길 건너편 신신다방 앞에 세워진 걸 보고는 산산조각 나버렸다.
 
“저런 지조 없는 놈, 콱 뒈져버려라.”
 
껌을 짝짝 씹으며 실실 쪼개고 있을 신신다방의 신애를 떠올린 은혜는 발을 동동 굴렀다. 콘크리트가 부스러진 주차장에 침을 탁 뱉은 은혜는 빨간색 망사 스타킹 사이에 끼워놓은 디스 플러스를 꺼내들고는 다방 뒤쪽 화장실로 갔다.
 
“에이 씨, 오줌이나 찌끄리고 가야지.”
 
원래 수협공판장이었다는 건물은 상가로 바꾸고 난 이후에도 항상 생선 냄새가 가시지 않았다. 이무생도, 서산 변두리에 자리 잡은 송자다방도 다 싫어진 은혜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는 한 모금 시원하게 빨았다.
 
“명의만 넘겨받기만 해 봐. 당장 팔아치우고 멀리 도망갈 거니까...”
 
죽은 어머니한테 명의를 넘겨받으라고 그렇게 닦달했건만 귓등으로 흘려듣다가 그렇게 죽어버리자 장사가 안 되는 다방만 떠안은 꼴이 되고 말았다. 거기다 피도 한 방울 안 섞여있으면서 아버지 노릇을 하려고만 드는 재수 없는 영감탱이랑...
상가 뒤쪽도 원래는 주차장이었지만 서산에서도 변두리에 속하는 무진읍에서는 그렇게 많은 주차장이 필요 없었다. 어느 틈엔가 1층 장판집 사장님이 가져다 놓은 물건들이 쌓이면서 차츰 창고로 변해버린 주차장 한편에는 시멘트 블록으로 지어진 낡은 화장실이 하나 있었다. 낡은 문짝은 애초에 없어져버렸고, 슬레이트로 올린 지붕도 구멍투성이였지만 은혜는 왠지 이곳이 편했다. 가죽 치마 뒷주머니에 꽂혀있던 휴대폰을 꺼낸 은혜는 거추장스러운 망사 스타킹과 짝 달라붙은 짧은 가죽치마를 엉덩이 아래로 미끄러뜨리고 무수히 많이 갈라져 있는 좌변기 위에 쪼그리고 앉았다. 반쯤 타들어간 맛 좋은 담배 연기를 코와 입으로 뿜어낸 은혜는 시원스럽게 일을 보면서 휴대폰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온갖 꽃무늬가 테두리를 장식한 화면에는 얼굴을 바짝 붙인 두 사람이 있었다. 미련스러울 정도로 활짝 웃은 남자를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본 은혜는 마지막 한 모금을 빨아버린 담배를 눈앞에 보이는 서산 앞 바다를 향해 던졌다. 조개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시멘트 제방 너머에는 항상 갈매기가 날아다니는 바다가 자리 잡고 있었다. 지난번 백일 휴가 때 저 넘실거리는 바다가 보이는 제방에 누워서...그 때 입맞춤한 기억을 되살리며 입맛을 다시던 은혜는 바다 색깔이 어제와 달라 보인다는 생각을 하면서 엉거주춤 스타킹과 치마를 입었다.
 
“색깔이 왜 저래? 어? 갈매기도 안 보이네?”
 
호기심에 이끌린 은혜는 무너진 담을 지나 제방 쪽으로 향했다. 좁은 신작로를 지나 좁은 밭고랑을 지나면 바로 시멘트로 만든 제방길이었다. 심상찮은 바다를 보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의 불길한 웅성거림이 은혜의 귀를 간지럽혔다.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제방 끝자락에 도달한 은혜는 허연 배를 드러낸 크고 작은 물고기들이 제방에 조개처럼 들러붙어있는 것을 보고는 기겁을 했다.
 
“어머, 저 물고기들이 다 왜 저래.”
 
“왜긴? 적조 때문이잖아. 어이구, 이제 쪽박 차게 생겼네.”

 
은혜는 혀를 끌끌 찬 무진 횟집 송 사장의 넋두리를 들으며 고개를 삐죽 내밀었다. 눈에 보이는 바다는 죽은 물고기들이 흘린 피 때문인지 온통 붉은색뿐이었다.
 
 
 
_ 붕괴 1개월 전
 
송기수 경위는 기울어진 도로를 따라 고개를 약간 옆으로 기울여보았다.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차들이 흘리고 가는 경적음이 먼지 낀 도로에 흩뿌려졌다. 횡단보도 바로 앞 도로에는 하얀 스프레이 페인트로 뿌려진 사고 흔적이 흐릿하게 남아있었다. 날개가 꺾어진 새처럼 두 팔이 뒤로 꺾인 사람 모양의 페인트는 오래전 화석처럼 보였다. 송 경위는 지구대 순경에서 받아 적었던 사고 경위를 적은 수첩을 펼쳐들었다.
 
“그러니까 작년 7월 21일 오후 네 시 경에 신원기 씨가 여기에서 차에 치여서 사망한 게 맞습니까?”
 
“그렇다니까요. 우린 아무 잘못 없어요. 그냥 지구대에 인계하려고만 했어요. 뺨 한 대 안 때렸고, 그냥 잡아서 데려가려고 하는데 갑자기 성칠 씨 발등을 밟더니 제 손등을 물어뜯어 버렸지 뭡니까. 이게 그때 물어뜯긴 상첩니다.”
 

안경잡이는 희미한 손등의 상처를 들이대면서 분통을 터트렸다.
 
“그놈이 우리 아버지한테 뜯어간 돈이 얼만지나 아십니까? 그놈 때문에 아버지는 뇌출혈로 돌아가시고 전 이혼 당했단 말입니다.”
 
“사고 당시 정황을 다시 말씀해주시겠습니까?”
 
“거참, 그러니까 우릴 뿌리치고 이쪽으로 도망쳤는데 신호가 바뀌었어요. 전 위험하다고 분명히 소리치고 들은 사람도 있단 말입니다. 그걸 무시하고 도망치다가 그 뭐냐? 파란색 209번에 치였어요. 무슨 무술 하는 사람처럼 붕 떠서 여기로 떨어졌는데 골목길에서 나온 짱개집 오토바이가 위를 타 넘었지 뭡니까. 달려가서 살펴봤는데 피를 한 바가지나 쏟아내고는...”
 
“앰뷸런스에 동행하셨죠?”

 
송 경위는 안경잡이의 말이 길어질 것 같자 냉큼 잘라버렸다.
 
“누가 119를 불렀나본데 보호자를 찾더라고요. 성칠 씨는 언제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고, 사람들이 다들 저를 손가락질해서 뭐 타게 된 겁니다.”
 

어깨를 으쓱거린 안경잡이가 입맛을 다시며 대꾸했다. 송 경위는 형사수첩 사이에 끼워져 있던 신원기의 낡은 증명사진을 꺼내서 안경잡이에게 보여주었다.
 
“이 사람이 그 사람 맞습니까?”
 
“어휴, 몇 번째 대답해드려야 합니까? 이 사기꾼 놈이랑 악수도 하고 사진도 몇 번이나 찍었는데 설마 얼굴을 못 알아보겠습니까?”
 
“병원으로 이송된 다음에는 어떤 절차를 밟으신 겁니까?”
 
“절차고 나발이고, 앰뷸런스 안에서 이미 사망 판정이 나왔습니다. 세화병원에 내린 다음에는 응급실에서 의사 선생님이 눈에서 플래시 들이대고 심전도 체크하더니 사망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는 뭐 영안실인가 어디로 실려 갔어요. 그게 답니다. 전 피해자라고요. 그 놈 때문에 직장에서도 짤리고 마누라는 자기 몫 챙겨서 친정으로 돌아가 버리고 정말 미치겠다니까요.”
 
“이 사진 한번 보시죠.”

 
송 경위는 안경잡이에게 다른 사진을 보여주었다. 좀 더 큰 칼라 사진의 한켠을 차지한 현수막에는 축! 생명의 물 시음회라는 글씨가 큼지막하게 박혀있었다.

“가운데 검은 양복 입은 사람이요. 이 사람도 신원기 맞습니까?”
 
“맞는데요.”
 
“사진 찍힌 날짜를 보세요. 바로 지난달 17일이잖아요.”
 

순간 쉴 새 없이 떠들던 안경잡이가 처음으로 침묵에 빠져들었다. 당혹스러움이 번진 안경잡이의 얼굴이 붉어졌다.
 
“에이, 설마 그럴 리가요. 피범벅이 된 시체를 제 눈으로 똑똑히 봤는걸요.”
 
“그럼 둘 중 하나는 거짓말을 한 셈이군요. 죽었다고 한 쪽과 살아있는 그를 봤다고 한 쪽 중에서요.”
 
“이것 보세요. 왜 저를 죄인 취급하십니까? 전 엄연히 사기 피해자라고요.”
 
“어제 김성칠 씨가 사망한 건 알고 계시나요?”
 
“네?”
 
“부천에 있는 모텔에서 어제 새벽에 시체로 발견됐습니다. 철사로 자기 목을 조르고 욕조에 머리를 파묻은 채 죽어있는 걸 종업원이 신고했습니다. 김성칠 씨까지 해서 서해안 유전 사기 피해자 대책 모임에 참여하던 스물두 명 중에 여덟 명이 죽거나 실종되었습니다. 죽었다고 한 피의자는 멀쩡히 살아서 또 다른 사람들에게 사기를 치고 다니고 있고, 피해자들은 하나씩 죽어가고 있는 중이란 말입니다.”
 
“난 아무것도 몰라요. 왜 자꾸 절 괴롭히시는 겁니까?”
 
“괴롭히는 게 아니라 사실을 털어놓으라는 겁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죠?”

 
안경잡이는 대답 대신 홱 몸을 돌려 사람들 틈으로 사라져버렸다. 안경잡이의 옷자락을 놓친 송 경위는 재빨리 그를 뒤쫓았다. 손만 뻗으면 잡을만한 거리였지만 토요일 늦은 오후의 신촌 사거리는 사람이라는 장애물이 가득 차 있었다. 우스꽝스러운 추격은 안경잡이가 번화한 도로 옆 길가를 빠져나가 모텔들이 자리 잡은 뒷길로 빠져나가면서 빨라졌다. 상대적으로 인적이 드문 뒷골목으로 뛰어든 안경잡이는 뒤쫓아 오는 송 경위를 흘끔거리며 교회와 꽃가게 사이로 사라졌다. 안경잡이가 사라진 곳으로 뛰어든 송 경위는 절벽 같은 계단을 허겁지겁 내려가던 안경잡이에게 소리쳤다.
 
“이봐요. 왜 도망치는 거예요.”
 
“난 싫다고 했단 말입니다. 정말 그래선 안 된다고 만류했다고요.”
 

뜻 모를 말을 내뱉은 안경잡이는 비 오듯 흐르는 땀 때문인지 연신 눈을 깜빡거렸다.
 
“그게 무슨 소립니까? 만류했다니요.”
 
“다들 그 사람 말에 혹해서 순순히 사인을 해버렸어요. 난 안 하려고 했는데, 정말 안 하려고 했는데...”
 
안경을 벗고 눈물을 닦던 안경잡이는 발이 꼬였는지 비틀거렸다.
 
“신원기 씨는 죽은 게 아니라 당신들의 도움으로 죽은 척 위장을 한 게 맞죠.”
 
“이건 그런 차원이 아닙니다. 당신이 상상하는 그 이상...”
안경을 쓰던 안경잡이는 안경다리에 눈을 찔렸는지 한쪽 눈을 가득 찡그리며 정신없이 눈을 비벼대다가 다시 헛디뎠다. 비틀거리던 안경잡이는 옆에 붙은 난간을 붙잡았지만 낡은 쇠난간은 휘청거리며 그의 손길을 뿌리쳤다. 균형을 잃은 안경잡이는 그대로 계단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놀란 송 경위가 헐레벌떡 뛰어 내려갔을 때는 이미 안경잡이는 숨을 쉬고 있지 않았다. 피의자도 아닌 참고인의 어이없는 죽음에 망연자실해 하던 송 경위는 등 뒤에서 느껴지는 이상한 기운에 퍼뜩 고개를 돌렸다. 방금 뛰어 내려온 계단 위에 어린 여자 아이가 서 있었다. 하얀 원피스에 갈색 곰 인형을 안고 있는 어린 여자아이를 본 송 경위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오싹 돋았다. 여자아이는 웅성대며 몰려드는 구경꾼들에게 물러나라고 소리치는 사이에 사라져버렸지만 아이의 잔상은 그 자리에 그대로 못 박혀있는 것 같았다. 안경잡이처럼 비 오듯 흐르는 이마의 땀을 손등으로 훔쳐낸 송 경위가 중얼거렸다.
 
“이제 아홉 번째인가?”
 
 
 
_ 붕괴 하루 전
 
- 빌어먹을 또 그때야?
 
김승리는 중얼거렸다. 매번 꿈의 시작은 달랐지만 그때 일이 남겨놓은 감정의 비틀림은 똑같았다. 항상 질주는 그날의 사고 속으로 그녀를 밀어 넣었다. 폭풍우 가득한 바다 한복판이건, 도시 한복판을 관통하는 도로 위에서건 상관없이...
그건 사고였다고 승리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날 바다는 잔잔했고, 안전요원들도 낙산 해수욕장 곳곳에 배치되어 있어서 사고가 나도 즉각 조치가 가능했다. 아니 그렇다고 믿었다. 1.5킬로미터의 로열 코스 수영은 물론 4킬로미터에 가까운 킹 코스의 수영도 너끈히 해내던 그가 발에 난 쥐 때문에 익사할 것이라고 그 누가 상상이나 했었을까? 쓴웃음이 흐르는 땀에 묻어 나왔다. 사망사고의 파장은 어마어마했다. 잘 모르는 언론은 주최 측의 안전소홀을 물고 늘어졌다가 죽은 희우 씨가 잘 생긴 것에 착안, 비운의 운동선수로 몰고 갔다. 가난했지만 나름 화목했던 희우 씨의 집안은 졸지에 아들의 앞길을 가로막는 무능한 아버지와 보상금에 눈이 어두운 어머니로 낙인찍혀버렸다. 사고 당시 가장 가까이 있었던 그녀는 그 무수히 많은 이야기들 속에서 진실과 가까운 것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라면서도 안심했다.
 
“난 꼭 우승하고 싶었단 말이야. 너도 잘 알잖아.”
 
박희우, 연인이면서 경쟁자. 사랑하면서도 넘을 수 없었던 벽 같은 존재. 맨살을 맞대며 사랑한다고 속삭이는 밤이 끝나면 원나잇 스탠드를 끝낸 것처럼 운동복을 챙겨 입고, 운동을 하러 나가던 사람, 백일, 생일, 1년 같은 기념일을 잊지 않고 챙겨주면서 정작 사람들 앞에서 둘 사이를 공개하기를 꺼려하던 사람, 모순과 긍정이라는 두 종류의 거울을 번갈아 비춰대면서 그녀를 가지고 노는 것 같은 알 수 없는 사내. 승리는 가장 원초적인 잠자리에서조차 냉정함을 잃지 않는 그의 모습에 경외심과 함께 두려움을 느꼈다. 그런 그가 단 한번 그녀에게 날 것 그대로의 감정을 드러냈었다. 죽기 직전에...
 
“승리야! 나 좀 잡아줘. 다리에 쥐가 난 것 같아.”
 
시작부터 치고 나가 나란히 선두에 나섰던 둘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바다를 갈랐다. 무수히 많은 존경과 상처를 가슴에 안고 있던 승리는 어떻게 해서든 희우를 이기고 싶었다. 그리고 그 대회는 절호의 찬스였다. 다들 모르고 있었지만 희우가 사이클 훈련 중 넘어지면서 오른쪽 허벅지에 타박상을 입었다. 상처 입은 다리 근육은 일정한 피로가 쌓이면 급격히 무거워져서 후반부에 스퍼트를 낼 수가 없었다. 걱정하는 승리의 눈길을 무시한 희우는 상처를 숨기고 출전했고, 그런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승리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간발의 차이로 앞서가던 희우를 천천히 앞지를 때 만 해도 승리는 행복했다. 이제 사이클에서 간격만 벌려놓으면 마라톤에서 추격을 당한다고 해도 충분히 승산이 있어 보였다. 그리고 그 순간 절박한 희우의 목소리가 첨벙대는 물소리 사이로 들렸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부르짖었다.
 
“내가 왜?”
 
잠자리에서 다정했던 만큼 희우는 훈련장에서는 매몰찼다. 남들이 보기에 매몰차다고 할 정도로 심하게 몰아붙이는 희우에게 쌓여있던 감정들이 그녀를 곧장 앞으로 나가게 만들었다.
어차피 안전요원들도 많이 있고, 다리에 쥐가 났다고 해도 희우 정도면 알아서 바닷가로 나올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경기 도중 사망사고가 발생했다는 발표와 함께 경기가 취소되면서 불길함으로 돌아왔다. 타고 있던 사이클을 돌려서 돌아온 바닷가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해변가까지 들어온 앰뷸런스의 시끄러운 사이렌소리에 쫓겨난 갈매기들이 불만 섞인 날갯짓을 하며 낙산사 쪽으로 사라지는 모습 아래로는 우왕좌왕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하얀 천이 덮인 들것 바깥쪽으로는 희우가 항상 신던 파란색 아쿠아 셀러가 튀어나와있었다.
 
“아이고, 경기를 하다가 이상하면 곧장 신호하고 포기하지 왜 미련스럽게 계속 헤엄을 친 거야?”
 
“그러게, 세 번이나 우승했으면서 또 무슨 욕심을 내서는...”

 
혀를 끌끌 차며 돌아서는 협회 임원과 심판의 대화를 들으며 승리는 그대로 주저앉았다. 둘 사이를 어렴풋이나마 짐작하던 누군가가 위로를 한답시고 그녀의 어깨를 쓰다듬어주었지만 승리는 무덤덤한 오열을 터트렸다. 분명 희우는 자신을 무시한 승리에 대한 분노에 못 이겨 경기를 포기하지 못하고 무리를 하다가 사고를 당한 것이다. 자신의 싸늘함이 불러온 하나의 죽음 앞에서 부들거리던 승리는 누군가 또 어깨를 건드리자 왈칵 화를 냈다.
 
“건드리지 마. 저 사람이랑 나 아무 상관도 없단 말이야.”
 
“너 때문이야. 네가 도와주지 않아서 내가 죽은 거야.”

 
무미건조한 희우의 목소리에 놀란 승리는 고개를 돌리려고 했지만 앞쪽으로 못 박혀있는 시선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승리는 겨우 입을 열었다.
 
“그게 왜 내 탓이야? 단 한 번도 날 도와주지 않았으면서 왜 내가 거절한 걸 가지고 그러는 거야.”
 
“물에 빠져 죽는 건 끔찍한 일이야. 공기가 있어야 할 폐에 차가운 물이 들어가면 어떤지 알아? 온몸에 피 대신 소금이 도는 기분이지.”
 
“난 잘못한 거 없어. 이기고 싶었을 뿐이야 내가 얼마나 우승하고 싶은지 자기도 잘 알잖아.”
 
“죽은 다음에도 한동안 영혼은 몸속에 머문다는 거 알아? 자신의 죽음을 곁에서 지켜봐야 하는 건 죽는 순간만큼이나 끔찍해.”
 
“나한테 이러지 마. 넌 항상 혼자서 결정하고 판단했잖아. 경기만 포기했어도 넌 살 수 있었어. 왜 나한테 자꾸만 이러는 거야. 나도 힘들어. 나도 힘들단 말이야!”

 
어느덧 낙산 해수욕장에서 알 수 없는 공간으로 바뀌어버린 곳에서 승리는 절규했다. 눈물과 콧물 범벅이 된 얼굴을 손으로 감싸 안고 있던 그녀의 귀에 희우가 속삭였다.
 
“우린 곧 다시 만나게 될 거야. 차가운 물속에서, 아니 삶과 죽음이 담겨있는 곳에서 말이야.”
 
날름거리는 끈적한 혀끝이 귓불에 닿는 것 같은 기분에 승리는 몸서리를 쳤다.
 
“넌 희우 씨가 아니야. 진짜 희우 씨라면 날 이렇게 괴롭힐 리가 없어.”
 
“날 잊지 마. 다시 만날 그 순간까지... 베이비.”

 
항상 잠자리에서 희우가 이름 대신 불러주었던 베이비라는 단어를 끝으로 꿈은 종결지어졌다. 땀이 전염된 이불을 움켜잡은 채 꿈에서 빠져나온 승리는 야트막한 조명이 켜진 원룸 안 구석구석을 눈길로 더듬었다. 굴곡진 어둠 어디에선가 베이비라는 외침이 메아리처럼 울려 퍼지는 것 만 같았다. 침대 옆 탁자에 놓인 디지털시계는 이제 막 새벽 4시를 가리켰다. 사고가 난 지 1년이 넘었지만 꿈은 그녀를 항상 사고의 순간으로 가져다놓았다. 바로 어제 벌어진 일처럼...약국에서 받아온 수면제를 몇 알 털어 넣고 생수를 마신 승리는 꿈의 파편이 남아있는 머리를 털어냈다.
 
“승리야, 제발 정신 차려! 이건 그냥 꿈이야. 언제까지 이러고 살래.”
 
이불을 다시 당겨서 침대에 누운 채 수면제가 다시 이끌어줄 새로운 잠을 기다리던 승리는 건너편에 있는 컴퓨터의 모니터에서 환한 빛이 나오는 걸 보고는 다시 몸을 일으켰다. 그냥 켜 놔도 상관없겠지만 사고 이후 작은 일에 집착하는 새로운 성격 덕분에 조금의 빈틈도 그냥 지나갈 수 없었다. 비틀거리며 의자에 앉은 승리는 컴퓨터를 끄기 직전 네이버 메인 화면 한쪽에 자리 잡은 메일 칸에 떠있는 1이라는 숫자에 눈이 갔다. 무심코 마우스를 당겨 클릭하자 이미 열어보았던 다른 메일들 위로 새 메일이 한 통 와 있는 것이 보였다.
 
“안내문?”
 
흔하디흔한 스팸메일일지 모른다는 걱정은 호기심을 이기지 못했다. 딸깍거리는 마우스 클릭 소리와 함께 열린 안내문은 짧고 간결했다.
 
세화병원 이사장 차재경입니다.
존경하는 가족 여러분께 머리를 조아리고 아뢸 말씀이 있습니다.
8월 19일 오후 4시경 세화병원은 붕괴됩니다.
이는 엑토컬쳐 실험이 실패로 돌아갔다는 것을 의미하며 
모든 책임을 저 차재경과 실험에 동의한 여러분이 져야 할 짐이라 여깁니다. 
이에 입원 환자 및 의료진은 8월 18일 자정을 기점으로 퇴원과 휴가 조치를 내릴 예정입니다.
가족 여러분께서는 8월 19일 오후 네 시까지 세화병원 후문 한샘 가구 근처에 모여 계셨다가 붕괴 직후 탐험대를 조직해 잠입하고자 합니다.
한때 우리의 소중한 혈육이었으며 친구와 애인이었던 그들이
사회의 악이 되지 않도록 한 분도 빠짐없이 참석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탐험에 필요한 기본 장비는 제가 준비하겠으나 기호에 따라 식음료 및 무기를 소지하실 수 있습니다.
어린아이는 동행할 수 없으며 지병이 있거나 신체허약자는 참가하지 말아 주십시오.
부득이한 사정으로 참가가 어려우신 분은 미리 연락을 주시면 엑토컬쳐 살해동의서를 보내드리겠습니다.
날인하지 않은 서류는 무효처리 되오니 이점 양해해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대체 무슨...”
 
영문을 몰라 하던 승리는 사고 직후에만 뭉쳐져있던 기억의 끄트머리를 떠올렸다. 알 수 없는 말을 하면서 뭔가를 내밀던 병원장이라는 의사의 목에 걸려있던 청진기의 창백한 반짝임을 바라보던 물기 어린 자신의 시선... 지치고 나약해져있던 승리는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고 서명을 해 버렸다. 아마 서명을 해 주면 무료로 장례를 치러준다는 말에 서둘러 서명을 했던 것 같았다. 이제 막 치밀어 오르는 수면제 약기운을 애써 참으며 다시 한번 안내장을 읽던 승리의 귓가에 축축하게 젖은 목소리가 들렸다.

“날 잊지 마, 다시 만날 그날까지... 베이비.”
 
오싹한 목소리에 놀란 승리는 등 뒤쪽을 쳐다보았다. 반쯤 말려진 이불이 올려진 침대와 침대 머리맡에서 약하디 약한 조명을 토해내는 취침등 만이 덩그러니 보였다. 고개를 갸웃거리던 승리는 귀밑머리를 살짝 흔들고 지나가는 작은 바람을 느꼈다. 에어컨을 켜놓고는 있지만 그쪽 방향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미약한 바람 속에서는 짠 바다 내음도 함께 느껴졌다. 승리는 바람에 끌려 천천히 창문 쪽으로 다가갔다. 창문을 덮고 있던 블라인드는 그녀가 다가가자 나지막하게 들썩거렸다.
 
- 여긴 14층이야. 저긴 열리지 않는 창문인데?
 
떨리는 손으로 블라인드를 끌어올린 승리는 창밖에서 명멸하는 불빛들과 그 안에 갇혀있는 자신을 보았다. 나약함과 애처로움이 가득 담긴 자신의 눈길을 쓰다듬은 승리는 눈물을 글썽거렸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되돌아갈 수 없는 후회에 진저리를 친 승리는 침대로 돌아가기 위해 몸을 돌렸다. 첫 번째 발걸음을 내딛는 순간 발바닥에 축축함이 묻어 나왔다. 무심코 바닥을 내려다본 승리는 바닥의 나무 무늬 장판 위에 찍혀있는 물 묻은 발자국이 어둠 속에서도 선명하게 드러나 있는 것을 보고는 비명을 삼켰다. 거실 등을 켜자 그 발자국이 침대 머리맡에서 창가까지 이어져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믿고 싶지 않았지만 바닥에 찍힌 발자국은 희우가 사고가 난 대회 때 신던 파란색 아디다스였다. 모래사장을 힘겹게 달리면서 앞서가는 그가 남긴 발자국과 똑같은 모양이 원룸에 남아있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없던 승리는 창가를 똑똑 두드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블라인드가 걷혀진 유리 너머에 두 개의 시선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잘게 쿵쿵거리는 심장이 역류시킨 피가 몸속 구석구석 두려움도 함께 퍼트렸다. 두려움에 갇혀버린 승리의 시선을 비웃듯 창밖의 시선은 날갯짓을 하며 사라져버렸다.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은 승리는 남은 눈물을 두려움과 함께 쏟아냈다.

작가 소개    
197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대기업 샐러리맨을 시작으로 커피를 만드는 바리스타를 거쳐 길을 쓰고 있다. 소설과 교양서를 비롯해서 다양한 장르의 글을 쓴다.  
장편소설 『폐쇄구역 서울』 『마의1, 2』 『쓰시마에서 온 소녀』 『김옥균을 죽여라』 『바실라』 『명탐정의 탄생』 등을 썼으며, 『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 시리즈에 〈불의 살인〉을 비롯한 단편추리소설들을 발표했다.
역사 교양서 『연인, the lovers』 『혁명의 여신들』 『조선의 명탐정들』 『조선전쟁 생중계』 『고려전쟁 생중계』 『조선직업실록』 『조선백성실록』 등을 펴냈다.
2013년 제1회 직지소설문학상 최우수상을 수상했으며 2016년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NEW 크리에이터 상을 받았다.
현재 한국미스터리작가모임에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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