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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찬 칼럼] 이승만과 박근혜 그리고 경제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

1960년 4월 26일. 그날은 이승만 대통령이 ‘국민이 원한다면 물러나겠다’며 자진 사퇴한 날이다. 4·19 혁명 후 꼭 일주일 만이었다. 나는 그때 어렸다. 세상물정이라곤 아무것도 모르던 때였다. 그러나 서울 시내 곳곳에서 학생들이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하고 정부는 이들을 총으로 막으려다 많은 사상자를 냈다는 신문 보도에 어린 마음도 무엇인가 정부의 잘못이 있었을 것이라는 느낌을 안 가질 수 없었다.

 자진 사퇴하던 날 오후 이 대통령이 경무대(景武臺·지금의 청와대)에서 이화장으로 이사한다는 소문에 사람들이 이화장에 구름처럼 모였다. 나도 어른들을 따라 그곳에 가보았다. 이 대통령이 손을 흔들자 많은 사람이 환호하고 눈물을 흘렸다. 노(老) 대통령의 눈시울도 뜨거워지는 것처럼 보였다. 현장에 있던 많은 사람은 이승만 대통령이 국민을 사랑하지 않았다면 시위대를 향한 발포를 멈추었겠느냐, 또 자진 사퇴했겠느냐며 이 대통령을 두둔하는 듯했다. 무엇보다도 이 대통령의 후회하는 모습에 사람들은 연민의 정을 느끼는 듯했다.

 이승만 대통령 이야기를 길게 한 것은 박근혜 대통령 때문이다. 나는 박 대통령이 하루빨리 자진 사퇴했으면 좋겠다. 그렇지 않으면 계속되는 각종 폭로에 국가의 품격은 점점 떨어지고 대통령 개인도 견디기 힘들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더 걱정되는 것은 위기에 처한 한국 경제와 서민 가계다.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저성장과 양극화를 극복하는 일은 누가 해도 쉽지 않다. 더구나 식물대통령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어렵다.

 돌이켜보면 한국 현대사에 한 시대를 마감하고 새로운 시대로의 변곡점을 가져온 사건에는 언제나 경제 문제가 있었다.
 
 4·19 혁명의 배경에는 한국전쟁 후 피폐해진 경제로 고통 받는 국민이 있었다. 당시 한국은 1인당 국민소득이 100달러 미만으로 미국에 의존하는 원조경제였다. 원조물자는 정경유착으로 주로 기득권층이 챙겼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은 야당의 ‘못살겠다, 갈아보자’에 환호했다. 그럼에도 이승만 정권은 경제부흥 대신 부정선거로 정권 연장을 꾀하다 4·19 혁명을 초래한 것이다.

 79년 부마민주항쟁의 시작은 김영삼 당시 신민당 총재의 국회 제명이다. 그러나 유신독재의 붕괴로 이어질 정도의 대규모 시민이 참여한 배경에는 77년에 도입한 부가가치세가 있다. 부가가치세는 국민적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도입됐다. 또 이 세의 도입 후 소비자물가가 크게 상승했다. 당연히 국민의 거부감은 거셌다. 이러한 민심은 78년 여당인 공화당의 패배, 그리고 유신 철폐, 부가가치세 철폐 구호로 나타났다. 부가가치세라는 경제 이슈가 강고한 유신독재에 구멍을 내는 핵심적인 원인이 된 것이다.

 97년의 수평적 정권 교체에는 외환위기가 역할을 했다. 외환위기의 배경에는 과잉투자로 인한 과잉시설로 시설 유지 비용이 제품판매액보다 많아져 발생한 현금의 순유출이 있다. 이뿐만 아니라 급진적인 시장 개방과 자본자유화를 가져온 96년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으로 그해 국제수지 적자가 229억 달러에 달했다. 이것은 국내총생산(GDP)의 거의 5%에 달하는 수치였다. 일반적으로 한 나라 경제의 국제수지 적자가 GDP의 3%를 넘으면 위험하다고 한다.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구제금융을 받는 사태가 발생하자 국민은 새로운 정치세력을 선택해 외환위기를 수습하게 했다. 해방 이후 최초로 야당에 의한 정권교체가 이뤄졌다.

 이처럼 역사의 전환을 이룬 사건에는 경제 문제가 깔려 있다. 문제 해법은 그때마다 다르다. 97년처럼 정치적으로 수렴되면 평화적으로 해결된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면 4·19 혁명과 부마민주항쟁처럼 시민을 거리로 불러내고 국가적으로 큰 상처를 남긴다.

 지금 우리는 현직 대통령이 법질서를 유린해 피의자로 전락한 ‘박근혜 게이트’ 앞에 있다. 그런데도 검찰 조사와 사퇴를 거부하고 국회에서 탄핵을 하려면 해보라고 한다. 분명 법률에 따른 탄핵이 수순이다. 그러나 현재 한국 경제는 총체적 위기 상황이다. 탄핵은 국정 공백의 장기화를 가져와 IMF 구제금융에 버금가는 경제위기를 초래할 것이다. 대통령은 대통령 개인 위기를 5000만의 침몰로 몰아가고 있다.

 박 대통령은 이승만 대통령의 자진 사퇴를 기억하기 바란다. 대통령이 이제라도 진정으로 국가와 국민을 생각한다면 즉시 자진 사퇴해야 한다. 그리고 정치권은 국정 공백으로 경제가 흔들리지 않도록 경제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서민 경제를 살펴야 한다. 서민의 삶이 파탄 나면 밑으로부터의 국가 변혁 상황으로 간다. 대통령과 정치권이 역사에서 배움을 얻는 현명함을 기대한다.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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