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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공일의 글로벌 인사이트] 국정 리더십 공백 최소화해야

사공일 중앙일보 고문·전 재무부 장관

사공일
중앙일보 고문·전 재무부 장관

우리의 민주주의 역사는 적어도 수세기에 걸쳐 발전해 온 서양 주요국에 비해 일천(日淺)하다. ‘압축 성장’을 통한 기적적인 경제 발전을 토대로 1987년에 서둘러 마련된 헌정 체제하에서 우리 민주주의 또한 놀랍게 빠른 ‘압축 발전’을 거듭해 왔다. 그 결과 우리나라는 불과 한 세대(世代) 만에 외면상 동양에서 가장 앞선 민주주의 국가로 부상해 있다. 그러나 놀라운 외면적 성공은 그동안 축적돼 온 내면의 구조적 문제를 가려온 것 또한 사실이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국정 난맥상은 박근혜 대통령의 비(秘)선 의존적 국정 운영 스타일에서 비롯된 국정 리더십의 문제지만 이를 가능하게 한 기존 헌정 체제의 구조적 문제의 산물로도 볼 수 있다. 따라서 당면한 국정 혼란은 국정 리더십 공백을 최소화할 수 있는 수습책과 함께 새로운 헌정 체제 마련을 위한 ‘정치 개혁’의 필요성을 잘 말해주고 있다고 봐야 한다.

먼저 현 국정 혼란 사태를 연(軟)착륙시키기 위한 국정 리더십 공백을 최소화하는 방안부터 생각해보자.

현재 우리나라는 국가 안보와 경제 양 측면에서 단 하루의 국정 공백도 허용할 수 없는 비상시국적 상황에 있다. 우리 경제는 각종 산업과 기업 구조조정, 가계부채 문제와 경기침체, 제4차 산업혁명 시대를 위한 제도적 인프라 정비와 교육 개혁 등 어느 것 하나 미룰 수 없는 정책적 도전에 직면해 있다. 대외적으로는 보호무역주의의 확산과 국제 금융시장의 불안에 대한 대비책도 마련해야 한다.

게다가 나날이 악화되는 북한 관련 지정학적 리스크 속에서 곧 출범하게 될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가까운 시일(불과 수주 내지 수개월) 내 우리의 안보와 경제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게 될 새로운 한·미 동맹 관계와 상호 경제협력 패러다임을 결정할 기초를 마련하게 될 것이다.
[일러스트=박용석]

[일러스트=박용석]

이미 트럼프 정부의 정책 결정에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될 인사들의 하마평이 무성한 가운데 정권 인수위원회가 출범했다. 이들 주요 인사 및 자문그룹과의 공식·비공식 접촉이 정부 차원의 기획하에 민관 합동으로 하루속히 체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도널드 트럼프는 힐러리 클린턴과는 달리 국정 경험이 전혀 없기 때문에 대통령 취임 후 상당 기간 이들 전문가의 의견에 크게 영향을 받게 될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한·미 양국 안보와 경제 관계의 중요성을 사실과 정제된 논리로 이들을 설득하는 일이 시급한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심지어 국가 간의 안보와 경제 문제도 기업 간의 거래(deal)처럼 다룰 가능성이 높다. 한·미 방위비 분담금 증액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변경에 관한 문제도 선거 과정에서 구체적 상황 파악과 대안 준비 없이 쏟아낸 인기 영합적 정치 수사 차원의 것이지만, 머지않아 협상 대상이 될 것으로 봐야 한다. 또한 트럼프는 우리를 배제한 채 ‘김정은과도 햄버거를 먹으며 얘기하겠다’고 나설 수 있다. 국정 공백 최소화가 시급한 것임을 잘 말해주고 있는 대목이다.

그럼 현 상황하에서 국정 리더십 공백 최소화를 위해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은 무엇인가. 물론 헌법 절차에 따른 대통령 탄핵을 제외한 방안은 더 이상의 국정 혼란과 국가적 불행을 막기 위해 “제2선 완전 후퇴”라는 대승적 차원의 대통령의 결단이 있어야 한다. 물론 현재 다수 국회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야당이 수권 가능 정당의 모습으로 성숙된 리더십을 발휘해줘야 실현 가능하다.

이러한 전제하에서 이제 1년3개월 정도 남은 대통령 잔여 임기와 새 대통령 선거에 수반될 또 다른 차원의 국정 혼란을 줄여 국내외 경제·안보 정책 대응의 ‘황금 시간(golden time)’을 잃지 않게 한다는 면을 고려할 때, 사실상의 대통령 권한대행인 국무총리를 여야 합의로 국회가 선출하는 방안을 생각할 수 있다고 본다. 소위 ‘책임총리제’의 구체적 내용은 기존 헌법정신을 훼손하지 않는 큰 틀 안에서 대통령과 여야 지도자가 합의하고 국민과 국제사회에 널리 공표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앞으로 1년3개월을 기존 헌정 체제하의 국가 권력 구조, 대통령 5년 단임제, 국회의원 선거방식과 선거구 조정, 대통령과 국회의원 선거 및 기타 선거의 선거 사이클 동시화 문제 등을 포함하는 포괄적 ‘정치 개혁’의 계기로 활용해야 한다.

1990년대 말의 외환위기 때는 ‘금 모으기 운동’으로 표출된 바 있는 범국민적 참여와 지지 그리고 구제금융에 따른 국제통화기금(IMF)의 압력을 최대한 활용해 위기를 잘 극복했다. 평소 하기 힘들고 고통스러운 금융기관과 기업의 구조조정도 해냈다. 전화위복이 된 것이다.

금번의 국정 리더십 위기는 대통령과 국회 그리고 여야 지도자들이 솔선해서 구국의 정신으로 함께 협력할 때 극복 가능하다. 지난 주말 평화롭게 치러진 대규모 광화문 시위를 통해 우리는 국정 리더십에 대한 좌절과 분노와 함께 성숙된 시민의식을 봤다. 이제 우리 정치 지도자들과 정치권이 화답할 차례다. ‘위기를 낭비하지 말자’는 경구를 우리 모두 다시금 명심하자.

사공일
본사 고문·전 재무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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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와 기사를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