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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속엔 인텔, 최신 패션 속엔 효성이 있다

당신이 언더아머를 입고 있다면, 당신은 효성을 입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나이키나 아디다스를 입더라도 마찬가지다. 효성은 패션 브랜드는 없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는 효성이 만들어낸 것을 입고, 신고, 착용한다.
스판덱스는 스타킹·아웃도어·스포츠 의류는 물론 양복과 청바지에도 사용되고 있다.

스판덱스는 스타킹·아웃도어·스포츠 의류는 물론 양복과 청바지에도 사용되고 있다.
 

50~60년 전 외국 기술을 빌려서 한국의 섬유산업을 일군 효성은 이제는 글로벌 트렌드를 이끌고 있다. ‘섬유의 반도체’라 불리는 스판덱스 세계 시장에서 32%로 점유율 1위다.

스판덱스는 폴리우레탄의 섬유 형태로 원래 길이의 5~8배나 늘어나면서도 일반 고무실보다 강도는 3배다. 훨씬 더 가늘게 뽑아낼 수 있으며, 땀이나 화장품에도 쉽게 더러워지지 않는다. 고도의 기술이 집적돼 있어 화학 섬유 중 가장 부가가치가 높다.
스판덱스를 생산하는 베트남의 효성 공장. 효성은 베트남·중국·터키·브라질 등에서 스판덱스를 생산하고 있다.

스판덱스를 생산하는 베트남의 효성 공장. 효성은 베트남·중국·터키·브라질 등에서 스판덱스를 생산하고 있다.

효성은 조석래 회장의 지시로 1989년 스판덱스 개발에 착수했다. 사양산업으로 치부됐던 섬유 산업에서 새로운 젖줄을 찾기 위해서다. 3년 만인 1992년 세계에서 네 번째, 국내에서 처음으로 스판덱스를 만들었다. 1959년 스판덱스를 처음 개발한 미국 뒤퐁보다 33년이나 뒤졌다. 그러나 효성은 20년 만에 한 세대의 격차를 따라잡았다. 1992년 세계 시장 점유율 1위에 올랐고, 15년 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대역전해 여전히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원동력은 기술과 뚝심이다.
크레오라는 효성이 만든 스판덱스의 브랜드다. 크레오라의 인기에 힘입어 효성은 스판덱스 시장에서 세계 1위다.

크레오라는 효성이 만든 스판덱스의 브랜드다. 크레오라의 인기에 힘입어 효성은 스판덱스 시장에서 세계 1위다.

손 팀장은 “개발에 성공한 뒤에도 6~7년 동안은 원가보다 낮더라도 팔 수밖에 없었다. 기존 제품을 따라가려면 지속적인 투자가 필요했다. 이 제품은 분명히 시장성이 있다는 판단과 ‘기술로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철학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말했다. 쓰디쓴 적자를 감수하고 기술향상에 매진한 결실은 달콤했다. 중국 업체가 난립과 물량 공세를 퍼붓던 2000년대 중반 국내 스판덱스 업체가 줄줄이 도산했다. 하지만 효성은 고객이 원하는 고부가가치 제품의 판매를 늘리며 위기를 헤쳐나갔다. 시장의 지배적 공급자로 위상을 굳혔다.
효성의 스판덱스는 종류를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제품 종류가 다양하다. (표 참조) 시장의 요구에 맞춰 적극적으로 반응한 결과다. 덕분에 기능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향상됐다.
1950년대 각광받던 나이론은 1970년대와 80년이 지나며 저렴한 서민용 소재가 됐다. 합성섬유보다는 순면 등 천연 소재가 각광받는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젠 다르다. 손 팀장은 “이젠 운동을 할 때 프로선수는 물론 아마추어도 기능성 소재로 만든 이너웨어를 착용하는 게 흔한 일이 됐다”며 “영국에 본사를 둔 수영복 브랜드 스피도는 효성의 스판덱스 브랜드 크레오라의 마크를 수영복에 함께 보여준다”고 말했다. 노트북 제조사가 CPU 생산자인 인텔 인사이드 스티커를 제품에 다는 것과 비슷한 경우다.

손 팀장은 “주로 아웃도어 의류·수영복·내복 등에 사용된다. 최근에는 고급 양복, 청바지 등으로 쓰임새가 확장되고 있다”며 “신축성이 좋은 스판덱스를 한 번 입어보면 또 찾게 된다. 인도와 중국은 아직 스판덱스 비중이 작아 앞으로 계속 시장이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근 스판덱스 시장은 연간 7~8%씩 성장한다. 세계 시장 점유율 40%를 넘는 게 효성의 목표다.
 
☞섬유산업으로 출발한 효성
50년전 창업한 효성의 첫번째 사업 아이템은 섬유였다. 질기고 가볍고 오래 입을 수 있는 나일론은 한국 전쟁 이후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개량형 참외를 ‘나이론 참외’로 부를 만큼 나이론은 혁신의 아이템이었다. 양말은 물론 여성용 브라우스와 속옷에 두루 사용됐다. 효성의 출발점인 동양나이론은 이 같은 시대적 배경에서 탄생했다. 1968년 4월 25일 동양나이론 중합탑에서 새하얀 나이론 실이 쏟아지는 순간은 한국 산업사의 결정적 장면 중 하나다.

이해준 기자 Lee.hayju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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