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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구 칼럼] 전쟁과 평화에 동시 대처한 시몬 페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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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구
전 국무총리·본사 고문

9월 말 93세로 세상을 뜬 시몬 페레스의 부음은 우리에게 긴 여운을 남기고 있다. 파란만장한 역사의 굴곡 속에서 그가 이끌었던 이스라엘은 우리 한국과는 지리적으로 먼 곳이며 역사와 문화도 맥을 달리하고 있다. 그럼에도 평화를 꾸준히 추구하면서 국가의 안전을 위한 전쟁 대비에 심혈을 기울였던 시몬 페레스의 일생은 바로 전쟁과 평화가 지닌 이중성을 확연히 보여준 표상이라 생각하게 된다. 평화를 위해서는 철저한 전쟁 준비가 필요하지만 외곬로 밀어붙이는 전쟁 준비는 평화보다 오히려 전쟁의 가능성을 고조시킨다는 일견 모순된 논리를 유대인 특유의 지혜로 소화한 그의 한평생은 오늘의 한국인에게도 깊이 생각해봄직한 숙제를 남겨주고 있다.

폴란드 출생의 이주민으로 별다른 학벌이나 문벌 없이 농민운동을 거쳐 정치와 정부에 들어선 시몬 페레스의 경력은 길고도 화려하다. 1948년 이스라엘 독립과 함께 국방부의 실무인 군수경리담당으로부터 총리는 물론 국가 운영의 고위직을 두루 거쳤고 정계 은퇴 후 말년에는 상징적 대통령직까지 수행했다. 그는 무엇보다도 과학과 기술의 고도화를 통한 국가 발전과 국방력 강화를 추진하는 데 앞장섰으며 특히 항공·우주산업과 핵의 군사·평화적 활용에 그의 외교력과 정치력을 쏟아부었다.

그의 긴 정치 여정에서 꾸준히 추구했던 중동 평화의 실현이 실마리를 찾은 듯 보였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간의 오슬로평화협정은 아마도 페레스 스스로가 뽑을 수 있는 성공의 정점이었다. 93년 워싱턴 백악관에서 클린턴 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노벨평화상을 공동 수상하게 된 이스라엘의 이츠하크 라빈 총리, 시몬 페레스 외상,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의 아라파트 의장의 악수는 평화로 향한 극적인 약속이었다. 지정학적 한계와 역사의 굴레를 뛰어넘는 중동 평화를 향한 도약으로 보였던 그 한 편의 드라마는 1차 북한 핵 위기에 당면한 한국인들에게도 긍정적 신호가 될 수 있었다.

중동 평화나 한반도의 평화가 낙관도 비관도 할 수 없는 어정쩡한 상태에 머물렀던 95년 10월 서울을 방문해 김영삼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고 귀국한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총리가 한 유대인의 총에 맞아 암살된 것은 11월 4일이었다. 서둘러 출발한 나는 6일 해가 저무는 오후 예루살렘에서 거행된 장례식에 겨우 참석할 수 있었다. 이튿날 아침 만난 시몬 페레스 총리는 가장 먼 곳에서 조문을 와준 데 대해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난 2003년 가을, 80세 생일을 지낸 페레스를 노동당 총재실로 방문할 기회를 가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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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보다는 전쟁과 테러의 어두운 그림자가 중동과 아시아에서 짙어지는 국제 정세를 논하며 시몬 페레스는 이스라엘과 한국이 직면한 역사적 시련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에 대한 그 나름의 지혜를 풀어놓았다. 첫째, 미국이 적어도 앞으로 한 세대는 세계 최강국으로 건재할 것이며 미국과의 동맹 관계는 절대로 필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과학기술 차원에서 미국의 우월성은 확고부동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둘째, 이스라엘과 한국은 무엇보다도 국가적 투자의 최우선 순위를 과학기술 발전에 두는 것이 최상의 안보정책이라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개발한 드론의 우수성을 자랑하며 만족한 웃음을 짓던 그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시몬 페레스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내리기엔 아직 이르다. 다만 이스라엘과 페레스에게 우호적이던 뉴욕타임스에 실린 3편의 추모 논평이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PLO 의 집행위원인 하난 아슈라위(Hanan Ashrawi)는 많은 사람이 시몬 페레스를 과감한 평화주의자로 찬양하지만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는 말로만 평화를 외쳤던 지도자로 기억되고 있으며 오슬로평화협정의 체결 과정이나 그 결과는 결국 강자이며 점령자인 이스라엘의 이익을 약자인 팔레스타인의 희생으로 도모했다는 것이다. 역사학자 톰 세게브(Tom Segev)는 페레스 자신은 평화를 만든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원하겠지만 그의 최대 공헌은 이스라엘 군비 강화와 군사적 승리로 역사는 기록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또한 이스라엘의 전 외교장관인 치피 리브니(Tzipi Livni)는 페레스가 평화 속에서 안보를 찾을 수 있다는 몽상가였는지도 모르지만 역사는 회의주의자보다는 꿈을 두려워하지 않는 현실주의자에 의해 전진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우리 마음에도 와 닿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페레스의 중동 평화의 꿈과, 독립운동기의 우리 선열들로부터 이어받은 동양 평화의 꿈은 일맥상통하는 것일까.

이홍구 
전 국무총리·본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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