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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view &] 마누라·자식 바꾸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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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영구
은행연합회 회장

오늘의 삼성을 만든 것은 1993년 이건희 회장의 프랑크푸르트 신경영선언이다.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는 말과 함께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 전환한 결과다.

이제 다시 삼성에 새로운 변화가 시작되었다. 삼성은 화학과 방산 부문의 매각을 완료했다. 여기에 광고업계 부동의 1위인 제일기획의 매각을 시도하고 한때 삼성물산의 주택사업, 삼성카드와 삼성증권 등 금융사 매각설까지 돌았다. 문어발식 확장을 접고 선택과 집중을 통해 첨단미래산업을 육성하겠다는 의지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삼성전자의 백혈병 문제도 일정한 책임인정과 사과 및 배상을 통해 해묵은 문제를 털어내고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엘리엇 사태로 민낯을 드러냈던 지배구조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계열사 상장이 지속하고 지주사 설립도 거론되고 있다. 여기에 호칭 변경과 인사체계 개편을 통한 조직문화의 혁신을 발표했다. 다소 뜬금없이 들린다. 하지만 최근 삼성이 추진하고 있는 변화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조직문화의 혁신이고 이것은 마누라와 자식을 바꾸는 것보다 더 힘든 일이라고 생각한다. 잘못된 조직문화가 기업의 명운을 가르는 사례를 수없이 봐 왔기 때문이다.

워크맨으로 전 세계 젊은이들의 사랑을 받던 소니는 기술지상주의 문화에 묻혀 디지털로 전환되는 시장수요 변화를 못 읽고 주저앉았다. 노키아는 혁신자의 딜레마 (Innovator’s dilemma)에 빠져 스스로를 파괴하지 못하고 애플의 아이폰에 밀려나 마이크로소프트에 팔리는 신세가 됐다.

기업문화의 타성 때문에 명멸하는 사례는 금융업도 예외는 아니다. 금융은 업종 간 결합에 따른 문화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엄청난 홍역을 치렀다. 미국의 글래스-스티걸 법 폐지로 은행·증권·보험이 한 울타리 안에 들어오면서 글로벌 금융사들의 기업문화는 크게 바뀌었다. 과거 상업은행은 고객과의 장기적 거래 관계를 중요시하며 거래 경험을 토대로 리스크를 관리하고 긴 호흡으로 비즈니스를 관리하는 농경 문화적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유니버설 뱅킹(Universal Banking)의 도입 이후 거대 글로벌 금융사는 트레이더나 투자은행 출신 CEO가 보편화하면서 고객과의 거래 관계보다는 고위험 고수익을 중요시하는 단기 수익 지상주의 문화가 팽배해졌다. 이러한 조직문화가 글로벌 금융위기를 초래한 원인이라는 비난이 이어졌다.

씨티그룹은 씨티은행과 트래블러스 그룹의 합병을 통해 금융의 새로운 시대를 예고하며 전 세계에서 가장 크고 글로벌한 금융백화점으로 화려하게 출발했다. 합병을 주도했던 존 리드는 씨티은행에 입행해 45세에 세계 최대 은행의 최연소 회장이 된 전설적인 은행가였다. 트래블러스의 샌디 웨일은 베어스턴스증권에서 출발한 후 인수합병의 귀재로 소형 파이낸스사를 700만 달러에 인수한 지 12년 만에 씨티그룹을 탄생 시킨 월가의 전설이었다. 그러나 두 공동회장의 경력은 농사꾼과 사냥꾼만큼이나 달랐다. 두 조직의 문화 또한 상이해 합병 후 씨티그룹은 문화적 충돌로 몸살을 겪었다. 결국 합병 9년 만에 ‘Too big to manage(너무 커서 관리할 수 없다)‘라는 용어를 금융계에 남기며 250억 달러에 이르는 정부지원금을 받는 위기를 겪었다. 조직문화의 중요성을 엿볼 수 있는 사례다.

뉴노멀시대엔 승자 독식이 가속화된다. 변화에 뒤처지면 한방에 훅 가는 냉혹한 환경 속에서는 시대가 요구하는 내부 문화의 지속적 혁신 없이는 기업의 존립 자체도 보장하기 힘들다. ‘관리의 삼성’이라는 조직 문화는 관료화되어 그 시대적 사명을 다한 것 같다. 이제는 4차 산업혁명시대에 맞는 수평적 문화, 개방적 창업 문화, 글로벌 조직 문화가 필요한 때이다. 이러한 경영 환경 속에서 갤럭시노트7의 단종이라는 어려움에 처한 지금이 바로 삼성의 자기파괴적 조직 문화 혁신이 반드시 필요한 시기다. 새로운 조직문화를 통해 삼성이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를 넘어서 게임 체인저(Game changer)로 도약하고, 삼성공화국이라는 이미지를 불식시키고 열린 삼성으로, 좋은 기업에서 위대한 기업으로 나아가기를 기대한다.

하영구 은행연합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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